— 느린 부와 빠른 삶 사이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천천히 부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가장 부자가 되기 어려운 선택을 반복한다.
이 문장은 늘 듣던 교훈처럼 들릴 수 있다. 사람들은 조급하고, 그래서 큰 실수를 저지른다는 식의 익숙한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평면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빠른 부를 원하는 이유는 단지 탐욕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오히려 꽤 정확한 감각적 지식이 내재돼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다. 같은 돈이라도, 언제 손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젊을 때의 돈은 늙어서의 돈보다 훨씬 더 큰 효용을 가진다. 같은 10억이라도 스물여덟의 10억과 예순여덟의 10억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젊은 시절의 돈은 단순한 소비 여력이 아니다. 그것은 선택권이고, 시간이고, 실험할 자유다. 하기 싫은 일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힘이고, 더 나은 기회를 기다릴 수 있는 여유이며,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완충재다. 무엇보다도 젊은 시절의 돈은 내 삶이 바뀔 수 있다는 감각이 된다. 원한다면 다른 경로를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 더 늦기 전에 내 시간을 내 뜻대로 배치할 수 있다는 감각은 늦은 나이에 얻는 부와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능한 한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이것은 생각보다 합리적인 욕망이다. 인간은 단지 돈의 현재가치만 계산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생의 현재가치도 계산한다. 지금의 1은 미래의 1보다 무겁다. 특히 젊을 때는 더 그렇다. 나이와 시간의 속도는 비례한다는 '자넷의 법칙'. 그것이 엄밀한 법칙이든 아니든,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흐른다고 느낀다는 사실 자체는 낯설지 않다. 스물다섯의 1년과 쉰다섯의 1년은 달력상으로는 같은 길이지만, 체감상으로는 결코 같은 시간이 아니다. 젊은 시절의 1년은 더 길고, 더 무겁고, 더 결정적이다. 그 안에는 방향 수정의 가능성, 관계의 확장, 실패 후 회복, 새로운 세계와 부딪칠 기회가 훨씬 더 많이 압축되어 있다.
그래서 젊은 사람에게 "천천히 부자가 되라"는 말은 그저 재무 조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때로는 이렇게 들린다. 지금 가장 값비싼 시기를 참고 견디라는 말, 가장 선명한 시간들을 나중을 위해 유예하라는 말. 사람들은 이 불편함을 정확히 느낀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조급함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조급함은 완전히 어리석은 것도, 단순히 탐욕적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는 현실을 정확히 읽은 결과다. 문제는 그 정확한 감각이 자주 잘못된 행동으로 연결된다는 데 있다.
젊은 부의 가치가 크다는 사실은 맞다. 그러나 그 사실이 곧 조급한 베팅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빠른 부를 원하는 욕망은 대개 시간을 건너뛰고 싶다는 욕망과 연결된다. 남들보다 빠른 정보, 더 공격적인 레버리지, 이번 한 번이면 된다는 확신, 복리의 지루한 경로를 단숨에 뛰어넘게 해줄 것 같은 기회. 사람들은 부를 원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보다 더 원하는 것은 짧은 시간 안에 인생이 달라졌다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부 자체보다도, 부가 상징하는 급격한 서사의 전환을 원하는 것이다.
여기에 비교의 압력까지 더해지면 문제는 더 깊어진다. 사람은 혼자 늙지 않고, 혼자 돈을 벌지 않는다. 늘 또래와 함께 간다. 누군가는 창업으로 크게 벌었고, 누군가는 스톡옵션으로 인생이 달라졌고, 누군가는 어떤 자산의 급등 위에 올라탔다. 나는 아직 천천히 쌓고 있는데, 남은 이미 도착한 것처럼 보이는 순간 사람은 쉽게 흔들린다. 그때부터 복리는 수익률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가 된다. 느리게 가는 길은 틀린 길이 아니라도, 패배한 길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멈추고 생각해볼 필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