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숭이 구경하기
제1장.
우진에게 기억은 감각으로 분류된다. 다섯 살의 기억과 열다섯 살의 기억. 장소는 동일했다. 동물원이었다.
다섯 살의 우진은 울음을 터뜨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시야를 가득 채운 붉은 엉덩이들이 덩어리져 꿈틀거리고 있었다. 꽥꽥거리는 비명이 고막을 찔렀다. 짐승들이 철망을 움켜쥐고 흔들 때마다, 쇳소리와 함께 세상이 요동쳤다. 훅 끼쳐오는 짐승의 누린내, 사방으로 튀는 침, 붉은 살덩이들의 아우성. 엄마의 손을 놓친 우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혼란스러운 색채와 소음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어지러웠다.
십 년이 지나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우진의 손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친구들의 등에 떠밀려 원숭이 사육장 앞에 섰을 때,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철창 너머의 붉은 잔상이 명치끝을 찔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철창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고, 원숭이들은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이를 잡거나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야, 이거 먹여봐."
친구가 건넨 땅콩을 철망 사이로 던져 넣었다. 원숭이 한 마리가 재빠르게 달려와 땅콩을 낚아챘다. 껍질을 까서 입에 넣고는, 다시 우진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우진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긴장이 탁 풀리면서 등줄기를 타고 기묘한 쾌감이 흘렀다. 그건 아주 시원한 물을 들이켠 듯한 상쾌함이었다. 우진은 주머니에 있던 과자를 꺼내 하나씩 던져주었다. 녀석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과자를 받아먹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고, 또 귀여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우진은 유독 말이 많았다. 기분이 붕 뜬 것처럼 좋았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재미있었다.
그 막연한 '좋은 기분'은 우진의 삶 곳곳에서 반복되었다.
군대에서 어리숙한 후임에게 총기 손질법을 가르쳐줄 때, 복잡하게 얽힌 미적분 문제를 풀이 과정 하나 틀리지 않고 깔끔하게 풀어냈을 때.
우진은 그 감각을 사랑했다. 엉켜있던 실타래가 가지런히 풀리는 듯한 명료함. 세상이 자신의 손끝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한 안정감. 그는 그 느낌이 무엇에서 기인하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무언가를 잘 해내고 있다는, 막연하고도 충만한 확신 속에 살았다.
그 믿음이 흔들린 것은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구립 주민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제2장.
주민센터는 예상보다 훨씬 정적인 공간이었다. 낡았지만 관리가 잘 된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 민원인의 낮은 대화 소리, 그리고 천장형 에어컨의 기계적인 소음이 백색소음처럼 깔려 있었다. 격무에 시달리는 공무원들의 타자 소리는 일정한 리듬을 만들었다. 우진에게 배정된 총무과 보조석은 그 리듬에서 한 발짝 비켜난, 구석진 자리였다.
일은 단순했다. 서류를 분류하거나, 엑셀 파일의 오타를 점검하는 것. 우진은 특유의 꼼꼼함으로 업무를 빠르게 처리했다. 그러고 나면 긴 대기 시간이 주어졌다. 누구도 우진에게 훈수를 두거나, 굳이 일을 만들어 시키지 않았다. 그 적당한 무관심과 서늘한 공기가 우진은 꽤 마음에 들었다.
남는 시간에 우진은 책을 읽었다. 최근 SNS 타임라인을 점령하다시피 한 S 작가의 신작 소설이었다.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어떤 이들은 "한국 문학의 기괴한 성취", "올해 가장 충격적인 문제작"이라며 찬사를 보냈고, 어떤 이들은 "이게 왜 베스트셀러인지 모르겠다", "난해하기만 하고 불쾌하다", "중반부터 덮었다"며 혹평을 쏟아냈다. 서점 매대에는 '화제의 논란작'이라는 띠지가 둘러져 있었다.
우진은 책을 펼쳤다. 문장은 불친절했고, 서사는 파편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우진의 눈빛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남들이 '난해하다'고 욕하는 지점은 작가가 의도한 서술 트릭이었고, '불쾌하다'고 느끼는 장면은 현대 사회의 병폐를 비꼬는 블랙 코미디였다. 우진에게 이 소설은 복잡하게 얽힌 미적분 문제와 같았다. 어렵지만, 명확한 해답이 존재하는 세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우진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완벽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포털 사이트의 서평란과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