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6 정말 빠르게 가는 사람도 있겠죠. 그러니까 동물로 치면 빠른 동물도 있고 느린 동물도 있어요.
근데 느린 동물이 빠른 동물을 보고 갑자기 현타가 와서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 내가 왜 이렇게 밖에 못 사나'라고 현타를 느낀다면, 거북이는 살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저는 어떤 사람도 어떤 동물도 그런 상대성으로 인해서 불행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그냥 다양한 것뿐이니까요.
이와 비슷한 말은 많다. 비교는 불행의 시작이다. 비교를 하면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질 뿐이다.
저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북이가 토끼를 보면서 '토끼는 달리기가 빠르네. 부럽다.'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만,
더 빠른 거북이를 보며 '저 거북이는 나보다 훨신 빠르네. 부럽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나와는 너무 먼 연예인보다는 주변 사람에게 더 부러움을 느끼듯이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북이는 빨리 걷고 싶어할까?'
애초에 빨리 걷고 싶지 않다면, 빠른 거북이를 보고 부러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Grok 은 이렇게 답했다.
"거북이는 느리게 걷는 게 자신의 생존 방식(에너지 절약, 안전)에 최적화되어 있고, 토끼는 빠르게 달리는 게 생존 전략(도망, 사냥)입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삶을 최적화하며, 다른 개체의 속도를 보고 "내가 저렇게 되고 싶다"고 고민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거북이는 거북이로서의 삶을 최적화해나가나보다.
토끼가 되려하지 않고, 온전한 거북이가 되려고 하나보다.
응? 뭔가 어색하다.
거북이는 거북이로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나?
그저 거북이로서, 거북이의 본능대로 살아가는거 아닐까?
거북이다움과 인간다움, 나다움
이렇게 쓰다보니, 암묵적으로 거북이의 삶을 좋게 보는 느낌이 없지않아 있다.
낭만적 투영: 거북이를 부러움 없는 존재로 묘사하는 것은 인간의 낭만적 투영일 수 있습니다. 실제 거북이의 삶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