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과 AI 혁명은 겉보기엔 전혀 다른 기술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나는 증기기관과 방직기, 다른 하나는 알고리즘과 데이터와 반도체다. 그런데 두 혁명을 같은 프레임으로 겹쳐보면, 놀랄 만큼 비슷한 질문으로 수렴한다. 생산성은 폭발하는데(디플레이션), 왜 원자재는 귀해지고(인플레이션), 시장과 패권 경쟁은 더 거칠어지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는 언제, 어떤 조건에서 ‘결실’을 얻는가?
1) 생산성의 폭발은 본질적으로 디플레이션적이다
산업혁명은 특히 면직물 같은 분야에서 생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전근대의 대다수는 낮은 생산성 때문에 “부족”을 기본 조건으로 살았고, 옷·신발·위생·의료의 결핍은 곧 생존의 위협이었다.
그러나 기계와 공장이 도입되며 물건은 쌓이기 시작했다. 재화의 공급이 늘면 가격은 내려간다. 생필품이 채워지고,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요(심지어 재고를 폐기하는 풍요)”가 열린다. 이 점에서 산업혁명은 장기적으로 다수의 생활수준을 끌어올리는 힘을 갖는다.
AI 혁명도 같은 성격을 띤다. 지식노동·사무노동·설계·콘텐츠·코딩·고객응대 같은 영역에서 생산성이 크게 오르면, 그 결과물의 단가(혹은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품질/양)는 내려가는 압력을 받는다. 즉, AI는 구조적으로 디플레이션의 엔진이 될 수 있다.
2) 단, 통화체제가 다르다: 금본위제의 디플레 vs 신용화폐의 “상쇄”
차이는 여기서 생긴다. 산업혁명기의 주요 국면은 금본위(또는 금·은 중심) 질서에 가까웠고, 통화량 증가는 “새로 채굴되는 금/은”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강하게 받았다. 반면 생산량은 기계화로 빠르게 뛰었다. 공급은 폭발하는데 통화는 경직되니, 디플레이션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 쉽다.
현대는 다르다. 신용화폐 체제에서는 정부·민간의 신용이 통화량을 훨씬 유연하게 늘릴 수 있다. 그래서 AI가 만드는 디플레이션 압력이 있더라도, 재정·통화·신용팽창이 이를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 실제로 금본위제 하의 “성장과 함께하는 디플레이션(일부 시기 ‘좋은 디플레이션’)”을 다룬 연구들도, 통화제도와 가격수준의 관계를 중요한 변수로 본다.
즉, AI 시대에는 “기술이 디플레를 만든다”는 단선적 결론보다, 기술 디플레 ↔ 신용 인플레 ↔ 자원 인플레가 충돌하는 더 복잡한 구도가 나타날 가능성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