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브레이션
우리는 어쨌든 길을 걸어간다.
여기에 대해서 제각각 나름의 결론은 많을 것이다.
나름의 정답으로 행동하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이거 내가 잘 걸어가고 있는 게 맞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약하기도 한 존재다.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존재다.
흔들리기 때문에 강한 것이겠지만.
자신의 길에 대한 기준은 너무나 많아 우리는 기준의 홍수를 떠다니는 신세다.
다양한 환경 속에서 혼돈, 파괴, 망각은 이어진다. 우리는 길을 헤메인다.
돈 혹은 경제적 자유, 가치관, 학업, 학위, 명예, 가정, 커리어, 역할, 성, 종교, 윤리, 행복감, 자존감, 책임, 구분 짓기, 명품, 아비투스, 사회적 지위....
투사로 점철된 것들이라는 표현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끝도 없다.
우리는 그 지점을 도달하기 위해, 지점을 벗어나기 위해, 지점을 비교하기 위해 허우적대고 있다.
강남에서 거주하는 한 가정의 아버지에게 물어봐도, 물질하는 제주도의 할머니에게 물어봐도, 부산의 깨발랄한 대학생에게 물어봐도 대부분 마주하는 것들이 아닐까.
어디서부터 뭐가 옳은 것인지, 내가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누군가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다.
부모님이 알려줄 수 있는 것인가? 스승과 멘토가 답을 해줄 수 있는 것일까?
구루를 찾아 나서야 하나. 신이 의도한 바인가? 사람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가?
우리는 길을 잃고 혼란스럽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고민은 몇 천 년전의 인간과 현재의 인간이 똑같이 고민했다라는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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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괴상한 말들은 나중에 이어서 찬찬히 돌아보기로 하고
오늘의 주제는 흔들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잡는 것에 대해서다.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그것을 어떻게 얻을 것이냐 보다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까의 방법이다.
이것이 가장 첫 걸음이 아닐까.
나의 길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한 발을 내딛는 법을 다시 배우기 위해서다.
아니 다시 발을 내딛기 위해서다.
내가 스스로 내딛기 위해서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기준을 조정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길로 되돌아갈 수 있다.
마치, 메트로놈의 기준선을 돌리는 것처럼. 모니터의 화면의 색을 바꾸는 것처럼.
총기의 영점 조절을 하듯이,
나의 기준을 돌아보고 자기 평가를 되돌리는 것이다.
캘리브레이션(calibration)
저울로 무게를 측정하기 전에 바늘이 0을 가르키도록 조정하거나, 시간의 추진 속도를 조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테스터의 0 조정이나 발진기를 기준 주파수에 맞추는 것을 말하고, 이와 같이 기준이 되는 점이나 정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