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재] 1편 예측에서 구조로





머릿속에 '모형'이 있어야 합니다. — 찰리 멍거
좋은 투자 성과는 대개 훌륭한 예측에서 나온다고들 생각합니다. 투자란 본질적으로 미래와 관련된 행위이니, 이런 믿음은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저 역시 주식 투자를 시작한 뒤 몇 년 동안은 그렇게 믿었습니다.
주식 시장은 신세계였습니다. 살면서 제 삶과 실제로 연결되어 있는 무언가에서 이 정도의 변동성을 목격하게 된 건 처음이었습니다. 가격은 계속 움직였고, 그 움직임은 제 생각과 감정 그리고 돈에 직접 연결되었습니다. 마치 비디오 게임의 보상이 실제 화폐로 주어지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만큼 시장은 강렬했고, 동시에 매혹적이었습니다. 예측만 잘할 수 있다면 아이디어가 어렵지 않게 돈으로 바뀔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더 많이 알고, 더 정확하게 예측하고, 더 빨리 움직이는 사람에게 시장은 그만큼 보상해주는 곳처럼 보였습니다.
초기의 제 사고는 자연스럽게 예측력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산업의 방향을 미리 읽고, 기업의 미래를 잘 그려내고서, 결국은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 그 방향을 예측하는 것이 곧 투자 실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부의 방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많은 기업과 산업에 대해 알아가고, 금리와 유동성과 시장 심리를 살피는 모든 노력들은 궁극적으로는 예측을 더 잘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투자란 결국 미래에 대한 판단을 현재의 자본 배치로 옮기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정 자체를 의심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 세계 안에 있었습니다. 매일 더 많이 보고, 더 정확하게 맞히려 애쓰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더 좋은 투자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예측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혼란스러웠던 것은, 어떤 예측은 맞는 것처럼 보였지만 충분한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고, 어떤 판단은 틀린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단순하게 평가하기 어려웠습니다. 처음에는 경험과 지식의 부족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이, 더 열심히 공부하면 나아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분석의 양을 늘렸습니다. 더 많은 기업을 보고, 산업 자료를 읽고, 재무제표를 검토하고, 가치평가 방법을 익히려 했습니다. 판단이 부정확하다면 정보가 부족한 것이고, 예측이 빗나간다면 분석이 충분히 정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는 단순히 정보량이나 분석 기술의 부족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경험과 지식은 중요합니다. 분석의 정교함도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업의 미래는 계속 변했고, 산업의 방향은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으며, 시장은 제가 기대한 시점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판단은 방향은 맞았지만 시점이 틀렸습니다. 어떤 판단은 시점은 맞았지만 크기가 틀렸습니다. 어떤 아이디어는 초기에 틀린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 유효해졌고, 어떤 아이디어는 맞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수익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경험이 반복되면서, 제가 하고 있는 투자 행위의 성격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저는 소위 '가치투자'를 지향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치투자는 단기 가격 움직임을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기업의 본질적 가치와 시장 가격 사이의 괴리를 판단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가치투자가 일반적인 예측 게임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단기 투자자가 가격의 방향을 맞히려 한다면, 가치투자자는 기업의 가치를 꿰뚫어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가치투자 과정에서 수행하는 활동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판단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기업을 분석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는 이 기업이 앞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는지 판단하는 일입니다. 산업을 분석한다는 것은 해당 시장이 앞으로 얼마나 커질 수 있을지, 경쟁 구도가 어떻게 변할지, 수요가 얼마나 유지될지 등을 판단하는 일입니다. 재무제표 분석도 과거 숫자의 확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과거의 이익, 마진, 현금흐름이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가치평가는 더 직접적으로 예측을 포함합니다. 매출 성장률, 영업이익률, 투자 규모, 현금흐름, 할인율, 멀티플, 재평가 가능성은 모두 미래에 대한 가정입니다. 리스크 분석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발생했을 때 손상이 얼마나 클지를 판단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보면 가치투자는 예측을 하지 않는 투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치투자는 수많은 예측 위에 구성됩니다.
다만 그 예측의 대상이 단기 주가 방향이 아닐 뿐입니다. 가치투자자는 당장 내일의 주가를 맞히는데 관심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업의 경쟁우위가 유지될지, 산업의 성장성이 지속될지, 경영진이 최선의 자본배분 결정을 내릴지, 고객이 계속 남아 있을지, 이익률이 방어될지, 시장이 언젠가 가치를 반영할지에 대해서는 판단해야 합니다. 이 판단들은 모두 예측의 성격을 가집니다.
예측은 필요하지만, 반드시 어느 지점에선가는 틀립니다.
이는 투자자라면 누구나 받아들여야 할 필연입니다. 기업의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산업 구조는 변하고, 경쟁자는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며, 원가와 금리는 변동합니다. 소비자의 행태도 바뀌고, 경영진의 판단도 항상 일관되지는 않습니다. 시장의 반응 역시 예측한 순서와 속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분석을 정교하게 하더라도, 투자 판단에 포함된 예측 중 일부는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장기 가치투자에서는 이 문제가 더 크게 나타납니다.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검토해야 할 변수는 많아지고, 예측의 오차가 누적될 가능성도 커집니다.
문제는 예측 실패 이후의 대응입니다.
예측이 틀릴 때마다 손절한다면 장기 가치투자는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나쁘다는 이유로, 성장률이 가정과 다르다는 이유로, 시장의 재평가가 지연된다는 이유로 매번 매도한다면, 그것은 장기 가치투자라기보다 예측 기반 매매입니다.
가치투자는 기본적으로 시장 가격이 단기적으로 틀릴 수 있다는 전제를 포함합니다. 가격과 가치의 괴리가 존재할 수 있고, 그 괴리가 해소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가정 위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기적인 예측 실패나 가격 하락만으로 매도하는 것은 가치투자의 전제와 충돌합니다.
그러나 반대 방향의 문제도 있습니다.
모든 예측 실패를 장기투자라는 이름으로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실적이 반복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경쟁우위가 약화되고, 경영진의 자본배분이 훼손되고, 산업 구조가 불리하게 바뀌는데도 이를 모두 장기투자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인내라기보다 고집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장기투자는 틀린 판단을 인정하지 않기 위한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가치투자에서 중요한 문제는 ...

우와아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읽어주셔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