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는 왜 보수라 불리는가. 보수는 왜 안 좋은 인식인가.
진보는 왜 진보인가. 진보는 왜 좋은 인식인가.
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기득권을 대변하는가"를 기준으로 이 인식이 크게 영향받았다고 생각한다.
기득권을 대변하는 보수는 결탁세력일 가능성이 높고, 국민과 반대되는 일을 한다고 생각된다.
진보는 이런 인식을 이용해 자신들은 기득권이 아니지만,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을 패서 국민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많은 독재국가에서 이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많은 독재국가들은 계층이동성이 낮다.
계층이동성이 높은 독재국가들은 이미 사람들이 이를 갈고 성공하고자 하기 때문에 잘 살게 되었다.
하지만 계층이동성이 낮은 독재국가는 공고한 지위가 유지되기 때문에 정치세력이 산업자본과 결탁하여 공고한 지위를 유지하고자 한다. 그 결과 계층이동성이 낮은 상황이 더 확고하게 유지된다.
독재국가 중에서도 계층이동성이 매우 높았던 것이 덩샤오핑의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이승만/박정희 시절이었다. 따라서 많은 기업가들이 출세하기 위해 온 몸을 갈아가며 기업을 성공시켰고, 부를 얻었다.
하지만 이런 국가들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계층이동성이 낮아진다. 우리나라의 현재가 그렇고, 중국도 계층이동성이 높은 상태에서 점점 둔화되고 있다.
원래 많은 선진국들이 성장하면서 계층이동성이 낮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재의 중국과 미국은 선진국임에도 계층이동성이 높은 국가 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이를 가장 잘 방증하는 것이 스타트업이다. 세계에서 가장 스타트업이 성공하기 쉬운 나라가 바로 두 나라이다. 물론 압도적인 내수소비시장과 인구도 영향이 있지만, 과학기술과 창업, 혁신에 대한 신뢰가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와 비슷하게 이스라엘도 계층이동성이 높고 스타트업으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보수 = 기득권 = 권력만 지키기", "진보 = 기득권 타파 = 국민을 위함" 라는 프레임은 많은 국가에서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국가에 이 프레임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예를들어 미국은 보수보다 진보 측이 산업자본과 더 많은 연줄, 돈줄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전통산업이 보수를 밀어주지만, 신흥자본인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현재의 빅테크가 진보를 밀어주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르헨티나의 기득권은 국민이다. 비록 그들이 빈곤율이 매우 높은 국가에 살고 있지만, 아르헨티나에는 기득권이라 할만한 산업자본 세력이 없다. 왜냐면 정치권에서 전부 국유화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을 누구를 뽑을지 결정해온 국민이 기득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국민의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 좌파식 포퓰리즘이건, 우파식 포퓰리즘이건 남발되는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이해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떨까? 내가 보기엔 한국에서도 이는 사실이 아니다. 보수세력이 산업자본과 결탁했냐는 질문에는 완전히 그렇다고 말도 못하고, 완전히 아니라고 말하지도 못한다. 다만 특정 재벌이라곤 못하지만, 전반적인 재벌들의 입김이 강하게 묻어있다.
그럼 진보세력은 어떤가? 산업자본과 결탁하지 않았나? 쌍방울이나 몇몇 기업들과 확실하게 결탁한 모습을 보인다. 다만 기존의 재벌과 결탁하기 보다는 좀 중소규모 재벌과 결탁하는 모습이다.
그러면 기득권이 아닌가? 보수와 비슷할 정도로 기득권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법을 이용해 자신들만을 챙겨주는 돈줄을...

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 아젠다를 던지는 진정한 리더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진보건 보수건 각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러한 리더가 나와도 대중들의 열정적인 호응을 얻지 못한다면 끌어 내려질 것 같기도 합니다. 무언가 큰 전환점이 될만한 큰 사건이 터지지 않는 이상 그러한 리더가 나오고 유지 되기 쉽지 않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네요. 한편으론 또 큰 사건이 과연 양안전쟁이 될지 무엇이 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20대 초반 남성으로서 공감가는 글 잘 읽고 갑니다. 성별 갈등 뿐만 아니라 박근혜 탄핵이후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감 또한 20대 보수화의 영향이 있는듯 합니다.

유익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결과만 보면 반직관적인 이야기기는 한데, 오히려 한국의 ‘상대적으로 높은 계층이동성‘, 즉 한국전쟁으로 인해 일소된 정치적인 신분/계급의 존재 자체가 높은 계급을 향하고자 하는 투쟁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비교/경쟁 문화로 이어지고, 이것이 높은 양육비로 이어져 - 결과적으로 출산율의 감소로 이어진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더군요. 물론 그것의 이면에는 수능에서의 성공 여부가 ‘지능‘이나 ‘재능‘과 같은 타고난 적성보다는, 이미 분해/분석이 완료된 수능 시험에서 얼마나 ’노력’하여 성적을 잘 낼 수 있느냐에 달렸기 때문에, 아예 수능을 ‘순수 적성 검사‘로 만들어서 말 그대로 학생의 잠재력만을 측정하는 공평한 능력주의 사회로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나옵니다만, 수능으로 얻는 대학 간판이 그 사람의 사회적 계급의 유의미한 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기인하는 이해관계의 문제가 (이미 서울대의 소득분위 수준의 차이로 증명된)왜곡된 능력주의 사회를 그저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정작 성공하게 되더라도 그 끝은 그저 부가 아닌 잠재력이라는 수치 하나만으로 계급이 결정되는 ’계층이동이 정체된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유전적 특징에 무형자본(암묵지와 명시지)의 상속이 이어지면 잠재력 높은 사람 아래에 잠재력 높은 사람이 태어나리라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니까요.

'높은 계층이 되고자 하는 경쟁의식'이 '동질적인 사회'와 더불어 '비교 문화'로 이어지니, 결과적으로 반직관적인 결과를 만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는 지점이 비교문화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수능과 같이 국민 모두가 바라보는 하나의 지점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양한 목표를 가진 사회가 될 수 있다면, 위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출산율이 반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 사람마다 다양한 목표를 가지니, 내가 경쟁하고 의식해야할 상대가 줄어들고, 서로 비교할 수 없는 목표를 가지니 누가 더 어떠하다는 등 비교의 의미가 퇴색되겠죠. 따라서 제 해결책은 "수능을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정도의 해결책이 아니라, "모두의 목표를 수능에서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유명 투자자인 리루의 책에 나오는 중국식 능력주의와 서구식 능력주의가 있습니다. 중국식 능력주의는 시험에 통과하면,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끼리 경쟁합니다. 따라서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죠. 서구식 능력주의는 시험에 통과하더라도 계속해서 불확실성에 부딪칩니다. 오직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끼리만 경쟁하는 것도 아니죠. 저는 우리나라가 비교문화를 없애고, 다양성을 포용하고, 경쟁력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중국식 능력주의보다는 서구식 능력주의에 가깝게 제도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무리에만 들어가면 어느 정도 보장되는 삶이 아니라, 계속해서 경쟁하고 불확실성 속에서 능력을 가꿔나가야 하는 능력주의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대든 로스쿨이든 어떤 자격증이든 합격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졸업하기 어려운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합격 인원수를 정해놓는 것이 아니라, 일정 이상 수준이 된다면 모두 통과시켜주는 (다만 그 기준이 상당히 높은 절대평가)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대 중후반 남성으로서 장문의 정치적 견해에 반갑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합니다. 첫 문단부터 보수는 "부정적인 인식", 진보는 "긍정적인 인식"으로 선언하면서 본인께서 보수를 자처하면서 소위 진보에 대한 비판과 반론을 펼치는 형식으로 글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선을 넘는다면 밸리 커뮤니티에서 금지하는 민감한 정치적 이슈까지 대화와 토론이 번질 뿐더러 설령 커뮤니티 규정이 없다할지라도 그렇게 대화가 진행한 경우 좋은 마무리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론적으로 조심스럽게 댓글을 달 수밖에 없지만, 글쓴이께서 밸리에 가입한 만큼 다른 의견을 경청하리라 믿습니다. 먼저, 진보와 보수는 국가와 시대마다 다릅니다. 당장 19세기 유럽에서 보통선거제를 주장하면 극좌였습니다(동시대에 한반도도 왕정국가인 조선 시대임을 생각하면 당연할 것 같지만, 당대에서 가장 진보했다는 유럽에서조차 그랬다는 것을 강조하는 뜻입니다). 20세기 유럽에서 최저임금제를 언급하면 "빨갱이" 취급이었습니다. 이처럼 21세기 한국에서 아주 당연한, 보통선거제와 최저임금제도 극좌의 아젠다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19~20세기 유럽에서 복고주의, 왕당파는 실존했던 보수, 수구의 어젠다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 기준은 어디서 유래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글쓴이께서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진보란 무엇이고, 보수란 무엇이며, 그 기준은 무엇이고, 어디서 왔습니까? 우리나라에서 거의 모든 정치 아젠다에서 실질적인 토론이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이런 기본적인 용어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대화를 진행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정치 카테고리를 달고 글을 쓰신다면, 더더욱 중요한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첫 문단에 보수는 부정적인 인식이고, 진보는 긍정적인 인식이라는 것은 제가 20살이 되기 이전까지 수많은 책들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고,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의 영향도 있었으며,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도 있었습니다. 또한 공지사항을 보니 Moonlight에선 정치 관련 게시글이 가능하다고 해서 평소 하던 생각을 작성해보았습니다. 저는 정치적인 의견을 나누는 것, 특히 저와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감정이 상하거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수 있어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꾹 입닫고 있는 것보다는 정중한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이라도 주제를 꺼내 보는 것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제 생각의 방향성을 잡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데에는 저도 동의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의 보수/진보와 미국의 보수/진보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또한 유럽에 가져가거나 동남아/남미에 가져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현재 2025년의 보수/진보의 개념은 대한민국 1970년대의 진보/보수의 개념과는 의미가 달랐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박정희 정권은 보수 정권이었다거나, 노무현 정권은 진보 정권이었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2025년의 보수/진보 아젠다에 들어맞지는 않습니다. 위 글에서는 단순히 보수 = 국민의힘, 진보 = 더불어민주당 이라는 단순한 프레임으로 접근해서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비록 각 당의 의견이 하나로 합치되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문화적인 보수/진보, 경제적인 보수/진보,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에 관한 보수/진보 등 여러 개념이 혼재되어 있는데 함부로 보수/진보라고 뭉뚱그려 단어를 사용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글을 쓸 때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계층이동성을 높여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리고 그 계층을 결정하는 잣대는 현실 세상에서 인정하는 부가가치를 더 많이 창출할 수 있는가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현실 세상에서 인정하는 부가가치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대체로 소유하길 바라거나 원하는 것,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죠.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다수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는 쉐프, 모두가 같고 싶어하는 차를 만드는 사람 등등은 다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들이죠, 어떤 잣대도 완벽할 수는 없으나 부가가치를 창출할 능력과 노력이 기준이 되는 것이 가장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기회는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고요, 교육기회의 평등은 중요한 요소이죠, 부모찬스는 없어져야 합니다 망해가는 나라들은 결과의 평등을 주장합니다 (인간세상에서는 절대 없는 거짓 환상이죠} 물론 운동능력, 외모, 지능. 태어난 환경. 국가등이 구조적으로 노력으로 극복 안되는 부분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롤스의 주장대로 노력으로 얻은 소유물의 적절한 재분배도 당연히 필요하고 노력해도 안되는 사람들, 노력했으나 실패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 안전판 마련도 필요합니다 단 노력없이 뭔가를 얻겠다거나, 시류에 편승헤서, 선전 선동을 통해서 , 부모의 도움으로 뭔가를 얻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도태되도록 해야 현실적으로 약육강식인 지구촌에서 우리나라가 번영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동의하는 바입니다. 다만, 부모 찬스에 관해서는 할 말이 있습니다. 부의 세습과 권력의 세습은 가능한 없어져야 맞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부의 세습을 막는 장치도, 권력의 세습을 막는 장치도, 그것의 부작용이 이점보다 크다면, 현실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어떤 국가도 완벽하게 부의 세습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그것에 성공한 국가들은 대부분 3세대를 가지 못하고 망했습니다. 또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권력과 부를 몰아주었을 뿐이죠. 대부분의 "혁명"이 그렇습니다. 따라서 저는 차선책으로서,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합니다. 부자가 계속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면, 그 돈은 고이고 썩어 없어질 겁니다. 우리는 그렇다면, 새로운 부자, 신흥 부자가 나타날 조건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자신을 갈고 닦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스타트업"이 바로 이것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자산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미국으로 갑니다. 그것은 미국에 가면, 성공했을 때 내게 떨어지는 돈과 권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가가치에 높은 가격표를 매겨 사주는 투자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재벌 구조가 새로운 부자의 탄생을 저해합니다. 그들은 시장을 꽉 쥔 채로, 더 넓은 세계 무대를 누비기보다 국내에 머물며 가진 점유율을 놓지 않으려 온갖 편법을 씁니다.(일부는 세계 무대로 활동하는 것을 택했습니다.) 또한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보호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부가가치에 낮은 가격표를 매긴 채 세상에 팔아야 합니다. 즉, 성공에 대한 보수가 적습니다. 거기에 재벌은 유상증자나, 합병비율 조정, 물적 분할 후 상장 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자의 정당한 몫을 빼앗아 와 자신들의 몫으로 만듭니다. 이러한 시장의 구조가 만성적인 국내 기업 저평가를 만들었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장 잠재력을 깎아먹었습니다. 따라서 정리하자면, 저는 부자의 것을 억지로 빼앗아오는 것에는 일부 반대합니다. 다만 부자가 자신의 것을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지키고, 남의 것을 빼앗아 가는 구조는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