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내러티브] 미국·이란, 45일 임시 휴전 논의…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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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6일 오전 11:07 31분 전
3줄 요약
1)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를 조건으로 약 45일간의 임시 휴전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 이번 협상은 미국의 군사 공격 최후통첩이라는 압박 속에서 파키스탄, 이집트, 튀르키예 등 다수 중재국의 적극적인 외교 노력에 힘입어 진행되고 있습니다.
3) 휴전이 성공하면 최근 급등한 유가의 원인이었던 전쟁 위험 프리미엄이 크게 완화되어, 원유 가격이 10~15%가량 하락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 호응이 님의 선견지명(先見之明)!!👍

호옹이
2026.04.01
협상에 관하여
현재 미국-이란 전쟁을 보면서 다양한 담론이 오가고 있고, 짧게 한 숟갈 생각을 얹었는데, 여기서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져서, 아 역시나 말을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나 싶었지만,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뭔가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 것 같다.
하나의 국제정세 이벤트가 일어날 때에는, 언제나 다양한 층위의 압력이 존재한다. 인간 조직이 움직이는 방식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어떤 '미친' 리더가 있다 해서 그 조직이 다같이 미쳐 날뛰지 않는다. 조직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라, 일이 그렇게 되게끔 만드는 다양한 구조적이거나 산발적인 압력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해, 이벤트의 원인을 설명하는 그럴싸한 이유 한두 개를 발견했다 해서, 그것이 다른 층위를 배제하지 못한다는 거다. 그걸 이야기하고자 했던 게 지난 글
오늘은 협상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한국인들은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고, 현대 사회는 그 역량이 각 분야에서 빛을 발하고 있어서 매우 뿌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국인이 '평균적으로' 유독 취약한 역량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협상이다. (신기하게도 외교부에서는 나름대로 협상을 잘한다. 어느 나라에든 특출난 역량을 지닌 사람은 있게 마련이고, 다행히도 협상을 할 줄 아는 희귀한 인재들이 외교부에서 일하고 계시는 것 같다.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한국의 고위 행정가들의 역량은 생각보다 뛰어나다.)
한국인들은 협상에 대해서 상당히 단층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두 사람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체스를 두듯이 서로 수를 하나씩 내놓고, 주거니 받거니 양보를 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타협을 하고, 더 많이 양보한 사람이 패배자가 되고 더 많이 얻어낸 사람이 승리자가 되는 식.
뭐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실제 협상이라는 건 이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협상에서 누가 이겼느냐 졌느냐도 사실 굉장히 모호하다. 협상이라는 건 한 번에 끝나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과정' 중의 한 '표면'이라고 생각하는 게 사실에 더욱 부합할 것이다.
참고로, 나는 협상 전문가가 전혀 아니며,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렇듯) 살면서 협상이란 걸 해본 경험이 많지도 않다. 그래도 최근의 판을 보아하니 평균적인 한국인보다는 좀 더 할 이야기가 있겠다 싶어서 이 글을 적는 것이며, 본인이 협상에 대해서 좀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글에서 새롭게 얻을 것이 전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이 글을 닫고 나가는 것을 권한다.
이 글이 기여하는 바가 있다면, 한 국가의 지도자를 미치광이로 규정짓지 않고서는 이 현상이 도저히 해석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에 조금은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참고로, 한 국가의 지도자를 미치광이로 규정하는 것 이외의 세계관에 관심이 없는 사람 또한 지금 당장 이 글을 닫고 나가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내 계정을 차단하고 다시는 이 자리에 발을 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기본적으로 세상을 선악으로 판단하는 것에 상당히 보수적인 입장이다. 내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악한 사람'은 '자국민을 학살한 지도자' 정도이다. 누군가를 선과 악으로 쉽게 가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나와 대화가 안 통할 가능성이 높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불편한 감정을 느낄 것이다. 당장 나가길 권한다.)
테이블에 앉기 전까지
협상 테이블에 앉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우 많은 걸 이야기한다. 상대방이 나로부터 원하는 바가 있으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줄 생각이 있으며, 그 과정을 대화로 풀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리고 나와 상대방 양자 사이에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이 맞닿아서, 그가 협상에 임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는 것을 상대방이 안다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두 행위자가 서로에게서 주고받을 게 있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희귀한 일이다. 내가 대뜸 어디엔가 취업을 하겠다고 해보자. 저 회사에 빈 자리가 있어야 하고, 그 자리에 필요한 역량을 내가 갖추고 있어야 하고,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상대방도 알아야 한다. 내가 에스엠엔터의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찾아가서 문을 두드린다 한들, 누가 귀기울여주겠는가. (내 최애는 윈터다.)
미국이 작년 4월 2일에 던진 관세 전쟁은 협상이다. 협상 테이블을 벌렸으니 협상안을 가지고 테이블로 오라는 뜻이다. 많은 국가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았고, 협상이 이루어졌다. (협상의 이행은 또 다른 이야기다.) 당시에 수많은 호사가들이 미국이 제시하는 관세 공식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무의미하다. 미국은 계산을 정교하게 할 필요가 없다. 정교한 계산은 약자들이 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누구의 공식이 '옳으냐'가 아니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서 얼마의 가격을 제시하느냐이다. 서로가 감당할 수 있으면 합의가 되는 거고, 아니면 안 되는 거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것은 협상이 아니다. 그냥 행동이다. 협상 테이블에 앉을 필요가 없었다. 미국은 2025년 내내 마두로를 압박했지만, 마두로는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았다.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으니 필요한 행위를 했다. 그뿐이다.
그린란드 협상이 사실 트럼프 2기 협상의 백미인데, 2025년의 협상에서 미국은 언제나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미국은 협상 테이블에 상대를 초대했지만, 상대방에게 선택지를 강요하는 플레이였고, 미국은 협상 테이블이 열리든 말든 별 상관이 없었다. 관세는 그냥 매기고 진행해도 그만이었고, 베네수엘라 또한 사전 경고 없이 무력을 행사해도 됐었다. 싸우기 전에 먼저 이기고 전쟁을 시작한다, 손자병법의 주요 책략이다. 트럼프는 손자병법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린란드 협상은 내가 이해하는 바 트럼프 2기 협상에서 가장 불리한 협상이었다. 상대방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필요가 없었다. 멀쩡한 땅 위에 갑자기 미군기지를 대거 증강한다고? 희토류 통제권을 확보한다고? 누가 응하겠나? 덴마크는 그저 코웃음치면 그만이었다.
여기서 앵커가 등장한다. '앵커'는 협상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처음에 내가 원하는 바를 던지고 거기서 조정해나가는 거다. 영업전략에서 앵커는 세게 던질 수도 있고 약하게 던질 수도 있다. 외교 협상에서 앵커는 일단 세게 던지는 게 기본이다. 외교에서 앵커는 나는 이 이상으로는 무엇도 바라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것도 변주가 있긴 한데, 약하게 던져서 협상테이블에 앉은 다음에 상대방이 서명하기 직전에 "안 할래" 하면서 판을 엎는 방법이 있다. VC의 스타트업 투자나 M&A 협상에서 종종 보인다. 국가 간 협상에서도 이런 식으로 할 수는 있다. 양아치 소리 듣겠지만.)
앵커에 대해서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일은 아마도 옛날에 용산전자상가에 전자제품 사러 갔을 때일 것이다. 용산의 형아들은 항상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를 묻는다. 상대가 먼저 앵커를 던지도록 해서 거기에 나의 가격을 맞춰가는 거다. 여기에 대응해서 진짜 얼마까지 알아봤는지를 던지는 게 아니라, 내가 실제 알아본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을 던져야 한다. 그러면 노련한 형아들은 "그 가격에는 못 팔고요. 그 집 가서 사세요." 한다. 그래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 뒤돌아서면 "아 잠깐만" 하고 잡는 경우가 가끔 있다. 요새는 온라인 최저가로 구매하니까 이런 걸 경험할 일이 적다. (꼰대가 되었다.)
각설하고, 트럼프의 첫발은 합병이었다. 갑자기? 물론 이전에도 언론에 솔솔 보도가 되었다. 그런 다음에 일단 합병을 던지고, 합병에 반대하는 국가들에게 관세를 던졌다. 그리고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하고 무력 시위를 했다.
관세? 2025년 한 해 내내 떠들썩하다가 이제 좀 소강상태에 오지 않았나. 그 악몽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무력시위? 바로 직전에 주권국가에서 특수작전을 실행하여 대통령의 신변을 확보하지 않았나? 그런 직후에 그린란드과 유럽 국가들에 대고 이 카드들을 다 던진 거다. 앞서의 이 뉴스들이 없었다면 관세나 무력시위가 그냥 헛소리로 들렸겠지. 그러나 그 '트럼프'니까 이게 헛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설마 설마 싶기는 해도, 진짜로 무력침공을 하려나 하는 생각이 단 1g이라도 드는 거다.
그렇게 협상테이블에 앉았고, 다보스 포럼에서 하루만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저항 없이 미군기지를 대폭 늘릴 수 있게 되었고, 장차 희토류 통제권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1월 9일 처음 화두를 던지고, 1월 17일에 관세를 선언하고, 다보스 합의가 1월 21일이었다. 자신의 미치광이 이미지조차 협상카드로 활용하여, 협상 테이블에 앉을 필요도 없는 상대를 테이블에 끌어들여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협상 교과서에 실려야 할 이벤트다.
그리고 그 이후는? 흐지부지되었다. 일단 2월말에 이란 이벤트가 터지기도 했고, 덴마크 친구들도 뒤돌아서 생각해보니 내가 뭘 한 거지 싶겠지. 안그래도 이란 때문에 시끄러우니까, 억울한 협상 결과를 굳이 성실히 이행할 필요가 없을 거다.
여기서 하고자 하는 얘기는, 트럼프는 '협상'의 기본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거다.
협상은 협상 테이블에 앉기 전부터 게임이 이루어진다. 관심 없는 상대의 관심을 유도하고, 내가 어떤 카드를 쥐고 있는지 노출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많은 카드를 쥐고 있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앵커는 세게 던지되, 상대방에 테이블에 앉을 생각조차 안 할 정도로 강한 앵커를 던지면 안 된다. 상대방을 협상 테이블에 앉힌 다음에는 또 새로운 게임이다. 각자의 카드를 내려놓으며 앵커를 맞춰나간다.
협상 결과는 당연히 앵커에서 양보한 형태가 된다. 이걸 '겁쟁이'라고 조롱하는 사람은 그 스스로 협상의 전개 과정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표현일 뿐이다. 혹은 알면서도 그것보다는 누군가를 조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거나. 협상에서 초기 앵커에서 물러선 결과를 내놓는 것에 대해서 트럼프는 뭐라고 말했나? "그것이 협상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그것이 협상이다.
힘의 우위
협상에는 매우 다양한 프로토콜이 있다. 어디서 만나느냐, 회담장에는 누가 나오느냐, 몇명이 나오느냐, 어떤 자리 배치로 앉느냐, 공개냐 비공개냐, 어떤 사람을 통해서 의사가 전달되었느냐, 날짜가 어떻게 되느냐, 전후 동선이 어떻게 되느냐, 등등 모든 게 협상의 메시지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누가 더 강하냐'를 의미한다.
젤렌스키가 미국에서 가서 굴욕당한 사건을 떠올려보자. 밴스는 "고맙다고 말해라."라고 했다. 일국의 수장을 앉혀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다. 트럼프는 "당신은 우리에게 줄 것이 없다."라고 했다. 이게 진실이다. 젤렌스키는 협상을 하러 갔다고 생각했지만, 그 자리는 협상 자리가 아니었고, 협상 테이블에 앉을 이유가 없는 미국 측에서 회담 자리를 마련했으니 젤렌스키로부터 '고맙다'라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 자리는 협상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명시적인 힘의 우위를 상대방이 인정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 협상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의 특징은 명시적인 가격을 원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이 고립주의로 가고 중국을 견제하는 일은 오바마 2기 때부터 있어온 구도다. 이건 특별할 게 없다. 그동안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이 끝난 거다. 정권별로 차이가 있다면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다. 오바마는 세련되게, 바이든은 오바마만큼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보기 좋게 미국 우선주의를 포장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포장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강하다"라고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어내고자 한다. (그런 태도가 미국에 더 이익이 되는 결과를 낳느냐 아니냐는 다른 얘기다. 레이건 때는 꽤 도움이 되었겠지.)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서 이런 발언을 했다. "한국은 미국에 줄 것이 있다." "한국은 꽤 터프한 협상가들이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최고의 찬사다. 우크라이나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미국에게 협상 상대로 인정받는 과정 자체도 상당히 터프하다. 그리고 모든 걸 협상의 프레임에서 생각하는 트럼프에게서, 상대를 터프한 협상가라고 언급하는 것 자체가 그에게 딱히 도움이 될 일이 없다. 그럼에도 그런 발언을 했다는 건 그만큼 한국으로부터 얻어내고 싶은 게 있었고, 한국과 척을 지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의외로 경쟁상대를 칭찬하는 일이 종종 있다. 뉴욕시장과의 회담에서도,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비난해도 된다."라며 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협상 테이블에서 힘의 우위는 무엇일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테이블에서 먼저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더 강한 쪽이다. 이번 회담에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않더라도 아쉬울 게 없는 쪽은 그냥 테이블에서 일어나면 그만이다. 아쉬운 게 있는 쪽에서는 뭐라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파악해서,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주고자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생각해보자. 트럼프는 "하루 만에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라고 했다. 그건 사실이다. 당시에도 그렇게 믿었지만, 이번 이란 전쟁에서 확인했다시피 미국의 군사 역량은 말도 안 되게 뛰어나다. (전술적 측면에 국한한다. 전략 측면에서는 정치의 연장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군사력의 범주에 넣기가 애매해진다.)
그러나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고, 모두가 알다시피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건 트럼프가 허세를 부린 게 아니라, 유럽이 가격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정리하려면 러시아 본토를 압도적인 화력으로 공습하거나 우크라이나에 지상군을 파병해야 한다. 모두가 미국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선택지다. 그러니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유럽 혹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에게 제시해야 하였지만, 그런 걸 제시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카드
힘의 우위는 단지 '맞붙었을 때 누가 이기나'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물론 군사력은 상당히 중요하지만, 군사력 자체도 다양한 층위로 나누어 생각해봐야 하고, 군사력 자체가 옵션이 아닌 경우도 있다.
협상에서 양 행위자는 다양한 선택지를 쥐고 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는 상대방이 잘 몰라야 한다. 내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카드보다 더 많은 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상대방이 믿어야 한다.
미국은 이란의 핵시설을 무력화했다. 앞서의 글에서 언급했다시피 핵위협은 미국에게 실존적인 위협이고, 핵시설을 타격하면서 이란의 핵개발에 제동을 걸었다. 전면 무력화는 아니겠지만, 물리적인 행위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웬만큼 했고, 남은 건 현재까지 만들어진 농축우라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이건 상당히 리스크를 짊어지는 작전이고, 작전이 성공하더라도 얼마나 더 남아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추가 행위는 외교의 영역이 된다. 그리고 외교에서 마땅한 합의가 안 나오면 그냥 테이블에서 일어나면 된다.
이러한 '셀프 승리 선언' 이벤트는 미국이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선택지다. 그런데 왜 다들 그렇게 황당함과 불편함을 느낄까?
호사가들의 발언들을 보자면, 물론 그 각각이 나름의 합리성이 있고 배울 점이 있는데, 눈에 띄는 점, 아니 정확히는 눈에 띄지 않는 특이사항이 있다. 미국이 느낀 핵위협, 그리고 공습을 통한 핵시설 무력화라는 이벤트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양 발언한다는 거다. 마치 핵위협이라는 게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의 거짓말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 같다.
물론 핵위협이 얼마나 진실되었는지는 모른다. 앞으로도 모를 거다. 특히나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 사건이 있었으니, 핵위협을 곧이곧대로 신뢰하는 건 나이브하거나 편향된 태도일 거다. 그러나 신뢰도 100%를 주는 게 무리한 만큼, 신뢰도 0%를 주는 것도 무리다. 그 사이의 어딘가에 진실이 있을 텐데, 0%를 강경하게 주장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
한국인이 '평균적으로' 취약한 역량을 하나 더 꼽자면, '제국적 시각'이 부족하다는 거다. '제국'이라는 단어에서 또 심하게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텐데, 듣기 편한 표현을 꼽자면 '국제적 시각'이라든가 '글로벌 감각' 뭐 그런 표현이 있겠지만,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와 다른 늬앙스가 많이 묻어있는 표현이라, '제국적'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쓰도록 하겠다.
한국은 근대사에서 타국을 침략하거나 지원하거나 하는 등의 주도적인 외교를 펼친 경험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국민 전체적으로도 그 역량을 길러볼 기회가 적었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국제정세를 보는 시각은 대체로, '누가 착한편인가'가 기준이 되고, '나쁜 편'으로 규정한 자의 행동에 대해서는 "저 나쁜놈" 혹은 "숨은 의중이 뭐냐" 등으로 분석의 갈래가 이어진다.
전쟁이라 함은 반드시 점령 - 체제전환 - 장기주둔을 의미한다는 프레임도 지배적이다. 우리가 경험해본 전쟁이란 6.25와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그리고 아마도 한국사 시간에 배운 삼국 간의 전쟁과 삼국지 소설에서 읽은 전쟁 정도일 거다. 그 전쟁의 대부분은 점령 - 주둔 - 지배를 기본 전제로 한다.
실제 전쟁은 외교의 연장으로서, 목적하던 사항을 달성하면 그걸로 끝내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이번 전쟁 또한 그러한 갈래에 해당할 수 있다. 애초에 전쟁이 왜 시작되었는가? 호르무즈 해협이 왜 봉쇄되었는가? 미국이 '느닷없이' 이란을 공격했다. 이란은 그 대응으로서 해협을 봉쇄했다. 그럼 미국이 철수하면? 이란이 해협을 계속 봉쇄할 명분이 무엇인가?
미국은 줄곧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이용하지 않는다. 해협의 안전을 원하면 이용하는 국가들이 안전을 보장해라."라고 한다. 거짓말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미국도 타격을 받는다.
그러나 트럼프의 발언이 거짓이고 아니고는 중요하지 않다. 애초에 이미 아무도 안 믿지 않나. 이미 신뢰가 땅에 떨어진 인물이다. 트럼프의 발언은 호르무즈 봉쇄의 책임론을 이란에게 떠넘기는 효과를 낳는다. 미국은 핵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나섰다. 사실 거기에 대한 대응으로 호르무즈 봉쇄는 어색하다. 우리야 호르무즈 봉쇄로부터 직접 타격을 받으니까 그 인과에 대해서 그다지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 것 같은데, 침공받은 방어자는 공격한 상대에 대응하는 게 상식 아닌가? 호르무즈 봉쇄가 미국에 어떤 피해를 입히는가? 앞서 언급한 대로 글로벌 물류망을 옥죄어서 세계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그 인플레이션으로 미국에 타격을 입히겠다는 거다. 우리나라는 그 체인에서 유탄을 맞은 거고.
굉장히 어색한 일이다. 미국은 이란을 공격했고, 미국은 그 대응으로 전 세계의 인플레이션을 볼모로 잡았다. 이란이 의도하는 바는 이 봉쇄가 미국 탓이고, 호르무즈 봉쇄로 타격을 입은 국가들은 미국을 원망해라, 라는 프레임을 제시하고 싶은 거다. 그리고 그 프레임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이란의 프레임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봉쇄가 누구 탓이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두 개의 상이한 프레임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호르무즈 봉쇄는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미국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그 누구보다 이란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란으로서는 상당히 강한 레버리지를 던진 거다.
자, 다시 카드 이야기로 돌아가자. 각자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무엇인가?
국제정세를 판단함에 있어서 의도, 선악, 계산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의도는 어차피 모른다. 의도대로 일이 흘러가지도 않는다. 선악은 프레임 싸움이다. 모두가 자기가 선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계산.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의외로 중요한데, 사람들은 대체로 계산이라는 층위에 많이 집중하는 것 같다.
호르무즈 봉쇄는 미국이 미처 계산하지 못한 카드다. 그러므로 이번 전쟁은 시작부터 틀린 전쟁이다.
이란이 호르무즈를 봉쇄할 수 있다고 고위관료가 조언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트럼프는 미쳤다.
미국은 전쟁을 단기간에 끝낼 수 있다고 계산했다. 그러나 못 끝냈다. 미국은 틀렸다.
이런 수많은 발언들. 중요하지 않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계산했다"와 "계산대로 일이 흘러갔다"라는 건 매우 다르다.
세상일은 원래 계산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계산의 중요성은 일이 틀렸을 때 드러난다. 아무 계산 없이 일을 진행했으면 틀릴 계산 자체도 없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도 대응할 수 없다. 계산을 했으면 무엇이 틀렸는지를 보고 다음 대응안을 도출해낼 수 있다.
이란에 대해서는 수십년 전부터 작전계획이 존재했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지도자 한 사람이 머리 속에서 얼마나 정교한 계산을 수행했고, 그 계산이 맞아떨어졌냐 아니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계산이 맞아떨어져서 마두로 대통령을 성공적으로 납치했는데, 그러면 미국이 존경받을 훌륭한 나라가 되는 건가? 아니잖아. 계산이 맞아떨어져서 그린란드에서 순식간에 협상을 이끌어냈는데? 그래서 행복한가? 아니잖아. 계산이 맞고 틀리고를 왜 따지나?
중요한 건 1) 어떤 카드를 가지고 있고 2) 어떤 카드를 어떤 순서로 내려놓았는가 3)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가 이다.
미국은 카드가 많다. 이란에 핵미사일을 발사해서 말그대로 석기시대로 되돌려버릴 수도 있고, 이대로 그냥 아무 말 없이 본토로 철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물리적인 선택지이고, 사회적인 선택지는 그보다는 좁아진다. 핵무기는 당연히 선택할 수 없는 카드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의 카드는 상당히 많다. 발전인프라를 파괴할 수도 있고, 담수화시설을 파괴할 수도 있다. 여론을 조작해서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제한적으로 지상군을 파병할 수도 있다.
의회 동의를 요하는 전면 상륙은 여전히 선택지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게 선택지가 아니라고 굳이 트럼프가 발언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지상군 까이꺼 파병할 수도 있지 뭐."같은 발언을 하는 거다. 외교에서 행위자의 모든 발언은 협상용이다.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동의할 필요도 없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짜증은 나겠지만.
이란은 카드가 별로 없다. 지상전으로 버틴다? 미국은 중간선거가 있어서 급하다? 국채 가격이 뛰었다? 그러므로 이란이 유리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전쟁을 비롯해서, 어떤 정책을 결정할 때, 모든 게 유리한 쪽으로만 작동할 때 방아쇠를 당길 거라고 생각하나? 한 번도 조직을 이끌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르겠다. 인간은 다양하니까.
의사결정에서는 앞서의 3번 '감당할 수 있느냐'가 크게 작용한다. 일이 어떻게 굴러갈지는 모른다. 잘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 일이 잘못되었을 때 내가 이 게임에 다시는 참여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느냐, 그건 상상해볼 수 있다.
인플레이션? CPI가 0.2% 상승한다고 미국 경제가 붕괴할까?
채권 금리? 채권 금리가 0.2% 상승한다고 미국이 더 이상 국채 발행을 못하고 모라토리엄을 선언할까?
중간선거? 이란을 폭격해서 석기시대로 보내면 공화당 승리가 확실해지나? 지금 철수한다고 지지율이 올라가나?
스펙트럼과 on/off를 구분해야 한다. 스펙트럼은 대체로 가역적인 시스템이다. 0.2% 상승한 인플레이션이나 채권금리는 상황이 바뀌면 다시 내려올 수 있다.
on/off는 비가역적일 때가 있다. 핵무기를 쏜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된다. 전 세계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야 할지도 모른다. 이건 트럼프도 감당할 수 없다. 담수화 시설을 폭격해서 수많은 민간인이 식수를 못 구해서 죽는다? 이것도 감당할 수 없다. 발전소 타격?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 이란은 발전소가 분산되어있어서, 한두 군데 발전소를 타격한다고 전체 전력망이 심각하게 타격받지 않는다. 그리고 전기가 없다고 당장 사람이 굶어죽지는 않는다. 석유 저장 시설 타격? 감당하기 어렵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개방하면 될 일이다. 정치의 영역이다. 한 달 동안 석유를 안 팔아서 생긴 영향은 몇 달 열심히 팔면 메꿀 수 있다. 근데 저장 시설을 날려서 아예 석유를 없애버린다? 이건 감당할 수 없다.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물리의 영역이 된다.
그럼 다시, 감당할 수 있는 일과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구분했으니, 2번, 순차적으로 어떤 카드를 내려놓고 있는지 보자.
방공망을 타격하고, 핵시설을 타격하고, 공군과 해군을 없애고, 다수의 정치지도자를 죽였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놓고, 굳이 더 전진하지 않고 동맹을 호출했고, 호출에 응하지 않은 동맹을 비난했다. 지상군을 불러모았고,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뉴스를 퍼트렸다. 카르그 섬보다는 케슘 섬을 공격했다. 케슘 섬 공격에서 담수화시설 피해가 있었다(3/7). 바레인(3/8)과 쿠웨이트(3/29)에서도 담수화시설 피해가 있었다.
뭐가 느껴지는가? 내가 느끼기에는, 미국과 이란 모두 제한전을 펼치고 있다. 확전(escalation)이 되는 양상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서로의 역린을 건드리는 게 전형적이다. 중동의 경우 담수화시설 타격이 있고, 미국의 경우 본토 민간인 테러가 있을 거다. 담수화시설은 제한적으로 피해가 있기는 하지만 전면적인 식수 공급 중단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본토 민간인 대상 테러도 없다. (심지어 이란은 트럼프를 테러 대상으로도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과 이란 모두,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지 않는 선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물론 확전은 감정적인 요인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서로가 선을 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미 선을 넘었다"라고 주장하는 호사가들의 의견과는 달리, 아직은 둘 다 선을 넘지 않은 상태라는 거다. 미군은 철수할 수 있고, 호르무즈는 다시 개방할 수 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세상이 미국-이란 전쟁이 없었던 것처럼 돌아간다는 뜻은 아니다. 이후는 정치의 영역이고, 물리적으로 회생 불가능한 단계에 '아직은' 진입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국제정세를 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거듭 말하지만 나는 외교/협상/국제정세의 전문가가 아니다. 아시아 변두리에 사는 평범한 한 명의 시민으로서, 저 불꽃이 우리나라에 떨어지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감사하는 비겁한 한 인간일 뿐이다.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느낀 바가 있다면, 많은 인간은 자신이 옳은 쪽, 착한 쪽이라고 믿고 살아간다는 것이고, 조직의 일은 한두 인간이 '의도'하거나 '계산'한 대로 흘러가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일어난 일을 보고 누군가를 비난하기는 쉽다. 어떤 식으로든, 가만히 있다가 피해를 입었으면 짜증이 나게 마련이고, 주도자를 찾아서 그를 욕하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나쁘다'라고 비난하는 건 내 삶을 지키는 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삶에 도움이 되었던 사고방식은, 누가 무슨 일을 행할 수 있으며,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으로부터 나는 어떤 타격을 입을 수 있는가, 그 타격을 피해가려면 나는 어떤 역량을 쌓아야 하는가, 등이었다.
워런 버핏이 이런 말을 했었다. "타인의 호의에 의존하는 삶은 비참한 삶입니다." 옳고 그름을 따져가며 도의에 호소한다는 건, 내가 그만큼 약하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감사하게도' 내가 주장하는 올바름에 동의하고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슬픈 삶인가?
국제정세를 바라봄에 있어서도, 옳고 그름은 다분히 상상이자 취향의 영역이다. 중요한 건 각 행위자가 가진 역량이 무엇이며, 역량으로부터 도출되는 선택지가 무엇이며, 그중 어떤 선택을 순차적으로 내리고 있는지, 행위의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지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미국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협상'의 관점에서 모든 플레이에 임하고 있다. 미국의 플레이가 납득이 안 된다면, 협상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