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거대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등의 접근은 내가 보기에 그닥 좋은 접근은 아님.
구루수준이면 그렇게 진단할 수도 있겠다만,
나같은 범부는 내가 잘못 분석한 것을 인정 못하고 전부 시장탓으로 돌릴 확률이 높기 때문임.
시장이란게 참여자들이 패닉이나 탐욕에 절여져서 행동하는 아수라장이 아니라
돈을 걸고 최대한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인 장임.
물론 패닉과 탐욕에 절여진 사람들도 있지만 어차피 그들은 시장에서 정기적으로 퇴출되기 때문에 대부분 균형가격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함.

데드캣
2026.04.16
시장을 경멸하다
투자 판단을 도덕의 언어로 설명하기 시작하는 순간, 분석은 종종 방어기제로 변한다. 자신은 시장보다 더 고상한 가치와 올바른 질서를 보고 있다는 식의 태도는 겉보기에는 원칙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는 대개 통찰의 표현이라기보다 잘못 설정된 가설을 정당화하는 서사에 가깝다.
시장은 투자자가 상정한 가치(혹은 가격. 앞으로는 논의의 단순화를 위해 가치라고 하겠다)로 복귀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격은 어떤 고정된 가치에 질서정연하게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고정된 한 점의 가치라는 것도 없다. 이는 환상속의 유니콘이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정보속에서 가격과 가치는 계속해서 변화할 뿐이다. 시장은 당신의 가치에 관심이 없다.
물론 투자자가 설정한 가치와 시장가격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투자 행위의 출발점에 가깝다. 문제는 이후에 시장이 예상한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다. 이때 필요한 태도는 “나는 옳고 시장은 멍청하다” 라는 선언이 아니라, 내가 현재 어떤 경로에서 틀리고 있는지 집요하게 되짚어보는 일이다. 적어도 현재시점에서 나는 명명백백하게 틀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오류 점검이다. 가격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인다면, 투자자는 먼저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확인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내가 어디서 틀렸는지 중간에 반증가능한 가설로 설정해 뒀어야 한다.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시장이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는 순간이 아니라, 내 논리가 반증 불가능해 그 차이를 전부 시장의 어리석음으로 해석해버리는 순간이다.
더 나아가 내 논리가 반증이 전혀 안된 상태에서 그 괴리가 일정 수준을 넘어선다면, 그것은 단순한 미스프라이싱이 아니라 내 가설이 전체적으로 부실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이 때문에 시장을 하대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그것은 가격을 정보로 읽기보다 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고, 손실을 오판의 결과로 해석하기보다 신념의 시험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시장은 나의 고고한 가치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투자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옳다는 신념이 아니라, 크게 다치기 전에 반증가능한 가설을 설립하고, 틀렸을때 이를 인정하고, 어디서 틀렸는지 돌아보고, 시나리오를 냉정하게 재계산하는 일이다.
5년 내내 하락을 외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4년 11개월 동안 강세장이 이어지다가 마지막 한 달의 대폭락으로 시장이 5년 손실로 돌아섰다면, 그는 마침내 맞춘 셈이 된다. 축하한다! 그토록 기다리던 종말에 도착했고, 드디어 시장이 그가 설정한 고고한 가치에 무릎을 꿇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이미 청산당했다.
그런데 옆의 누군가는 4년 11개월 동안 상승을 외치며 돈을 벌다가, 마지막 순간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잘 모르겠다며 비겁하게 포지션을 비웠다. 최종적으로 맞춘 사람은 전자다. 그러나 부를 축적한 사람은 후자다. 그렇다면 누가 틀린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