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에이징을 위한 수용의 지혜
고등학교 3학년, 존경하던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음주운전자가 되레 덜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사고 직전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며 스스로를 방어한다. 하지만 이 방어적인 태도가 오히려 몸을 더 크게 상하게 만든다. 반면 음주운전자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몸에 힘을 빼고 있다가 사고를 당하기에 부상이 덜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선생님은 이 이야기를 고3 수험 생활에 빗대셨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을 거부하고 버틸수록 자신만 더 다칠 뿐이라고. 교통사고가 날 때 뻣뻣하게 굳은 몸이 더 큰 부상을 입듯, 싫다고 발버둥 칠수록 고통만 커진다는 것이다. "오지말라고 해봐야 더 다친다." 그러니 차라리 받아들이고 힘을 빼는 편이 현명하다고 조언해주셨다. (그렇다고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말씀은 꼭 덧붙이셨다.)
선생님의 말씀은 살면서 여러 번 곱씹게 되었다. 군 입대, 학위 논문, 취업 준비처럼 피할 수 없는 과제 앞에서 저항할수록 고통은 배가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할 일이라면, 저항하기보다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많은 경험과 실패가 굳은살처럼 쌓이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지혜를 체득할 수 있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막연했던 그 감각에 이름을 붙여준 셈이다.
이것이 바로 멋지게 나이 드는 비결 중 하나인 ‘수용의 지혜’다. 물론 확고한 신념이 있는 일이나 내 힘으로 개선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저항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불필요한 저항은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고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할 뿐이다. 피할 수 없다면 빠르게 인정하고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성숙한 어른의 현명한 생존 기술이다.
노후준비라는 과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도 이와 같아야 한다. 노후준비는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명과 같다. 물론, 그 '정도'와 '방식'은 조절해야 한다. 너무 먼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온전히 희생하는 것 또한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미래를 살아갈 ‘나’ 역시 지금의 ‘나’와 같은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 내가 가진 자원의 일부를 기꺼이 나누어 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사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현재와 미래의 삶을 조율해나가는 것이 바로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일 것이다. 이제 왜 우리가 노후준비라는 과제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우리의 태생적 한계와 사회적 현실을 통해 하나씩 짚어보겠다.
노후준비가 안 된 두 가지 이유
강의를 할 때마다 꼭 던지는 질문이 있다. "현재 노후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분 계시면, 솔직하게 손 한번 들어주시겠어요?" 수백 번의 강의 동안, 이 질문에 손을 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통계 수치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노후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걸까? 두 가지 이유를 통해 그 원인을 짚어보려 한다.
첫째, 노후준비는 우리 뇌의 본성을 거스르는, 원래부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뇌는 본래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의 생존에 최적화되어 있다. 최신 뇌과학 연구는 뇌가 미래의 ‘나’를 현재의 ‘나’와 동일인물로 생각하지 않고, 마치 ‘낯선 사람’처럼 인식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뇌를 촬영해 보면, 미래의 나를 떠올릴 때의 뇌 반응이 타인을 볼 때와 거의 똑같이 나타난다.
이것이 핵심이다. 뇌의 입장에서는 노후 대비 저축이 ‘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웬 남 좋은 일 시키기’처럼 느껴지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