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출판 시장은 기형적이다. 깊이 있는 원제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부자 되는 법'이라는 노골적인 욕망이 차지했다. 출판사는 판매량을 위한 선택이라 변명하겠지만, 이는 독자의 지성을 기만하는 행위다. 나는 서점을 점령한 이 '부자 담론'에 반기를 든다.
우리는 정말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가?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은 미래의 '부'가 아니라 현재의 '소비'와 '쾌락'이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는 길은 이미 널려 있다. 지능이나 환경을 탓하기엔 자수성가한 사례가 너무나 많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방법의 부재가 아니라, 부자가 되어가는 고단한 '과정'을 견딜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부자'를 도달해야 할 최종 목적지로 설정하는 사회적 통념에 있다. 절대적 빈곤이 해결된 현대 사회에서 가난은 '현상'이 아니라 '감정'이다. 100억을 가진 자는 1,000억을 가진 자 앞에서 가난을 느끼고, 국내에 별장이 있는 자는 해외에 별장이 있는 자 앞에서 박탈감을 느낀다. 내가 아는 한 지인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부를 가졌음에도, 더 거대한 부자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늘 허기에 시달린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순간, 부에 대한 욕망은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형벌이 된다.
왜 부자가 되어야 하는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답변은 기만이다. ‘부자가 되면’, ‘의사가 되면’ 인생이 완성될 것이라는 믿음은 헛된 망상이다. '부자'는 삶의 결론이 될 수 없다. 목표를 달성한 그 순간에도 삶은 여전히 지루하게 이어진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던 이들조차 불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우리는 이제 '부자라는 명사'가 되기 위해 인생을 유예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중요한 것은 도달한 이후의 삶, 그리고 부를 대하는 태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자가 된다"는 말을 경계한다. 인간은 '부자'라는 명사로 고정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는 명제로 이 문제를 꿰뚫어 보았다.
의자나 키보드 같은 사물은 만들어지기 전부터 '앉기 위한 도구', '입력을 위한 도구'라는 목적, 즉 본질이 먼저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세상에 먼저 던져진(피투) 후, 스스로 선택하며 자신을 만들어가는(기투) 존재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를 마치 용도가 정해진 사물처럼 착각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카페 웨이터의 예를 든다. 주문을 받고 쟁반을 나르는 종업원은 마치 '웨이터'라는 본질을 타고난 기계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그것은 연기일 뿐이다. 그는 퇴근하는 순간 누군가의 연인이 되고, 주말에는 춤을 추거나,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시위자가 될 수도 있다. 그는 '웨이터'라는 명사로 환원될 수 없는 투명하고 텅 빈 그릇이다. 어떤 수식어도 그를 영원히 가둘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실존이 본질을 앞선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다.

그러나 인간은 이 불확정성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우리는 타인을, 그리고 나 자신을 규정되지 않은 실존으로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불확실성은 불안을 낳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빨리 명사로 환원시키려 든다. "저 사람은 의사야", "이 사람은 대리야"라고 이름표를 붙여야만 비로소 ...

감사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우주의 일부인 생성 질서로써의 나 !

고정불변하는 '명사로서의 나'를 내려놓는 것은 무아(Anatta)와 닿아 있고, 변화와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동사로서의 나'는 곧 연기(Pratītyasamutpāda)의 이치와도 같네요. 이는 고정된 목표 지점보다는 삶이 나아가는 방향성(Value) 그 자체를 중시하는 수용전념치료(ACT)의 철학과도 깊이 공명합니다. 깊은 사유 끝에 만난 깨달음이 서로 다른 언어임에도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재미있습니다.

감명 깊게 읽고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부자가 되고 싶은 저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부자'라는 목표를 향해과는 모든 순간들이 참아야 하는 '고통'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심지어 그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또한 삶을 고통으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삶을 불안과 감내해야할 고통으로 규정하는 대신,
역동적인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을 살아봐야겠습니다.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글인거 같네요 ㅠㅠ

와우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살아보진 못했지만 한국은 수많은 곳에서 알게 모르게 학습된 정답을 추구하는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서점에서 느꼈던 생각 입니다.
gray한 영역.
360도, xyz 좌표를 넘어 뻗어나가는 입체적인 영역.
즉,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것.
이러한 것엔 한국은 좀 더 각박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급격한 성장을 위해 다양성을 추구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좌우지간 공감하며 읽었고 지식이 짧은터라 완벽히 이해했다곤 말하지 못하지만 저와 결이 비슷한 글이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을 좋아했는데 글에서 소개 되어서 반가웠습니다. 그리고 들뢰즈는 이름만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좋은 철학적 관점을 배웠네요.
무언가를 어떤 단어로 규정한다는 건 다른 수많은 가능성을 없앤다는 말과 같습니다. 마치 양자역학에서 관찰하는 순간 상태가 결정되는 것과 유사하네요.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하게 되구요. 사람과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 막연하게 하던 생각이 잘 정리된 글로 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캬 너무 조하여 ㅠ 글을 무척 잘 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