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 편씩 쓰기로 했는데,
점점 글감이 고갈 되고 있는 게 느껴집니다.
이전 글이랑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자기 복제가 많아지는 것 같네요😢
이제 슬슬 쉬어야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아무튼 6월 숙제는 끝!!

마론백
2026.06.01
시장이라는 내담자
1
선거철이다. 길거리마다 후보들의 공약이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건물 위며, 가로수 사이며, 선거 차량이며, 강렬한 색과 볼드한 문장들이 쏟아진다. 그중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속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것도 적지 않다.
예컨대, 버스가 밤낮으로 한 번 겨우 왕복하는 동네에 공항을 짓겠다는 약속, 혹은 무언가를 거저 나눠주겠다는 약속이 그렇다. 나는 그런 현수막 앞에서 속으로 ‘지긋지긋한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떠올리곤 했다. 표를 얻으려는 헛된 약속이다. 그리고 그런 약속에 마음이 기우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얄팍한 수에 쉽게 넘어가는 이들이라고 여겼다. 그러면서 정작 나는 거기에 속지 않는다는 은근한 자부심을 품었다. 그렇게 누군가의 공약을 포퓰리즘이라 부르는 말 안에는, 대중을 한 수 아래로 보는 시선과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작은 우쭐함이 분명히 섞여 있었다.
또 다른 현수막 앞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떤 말들은 특정한 집단을 향한 미움을 부추긴다. 성별로, 세대로, 계층으로, 국적으로. (인종을 가르는 말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그만큼 크지는 않다.) 사람을 갈라 세우고 한쪽을 향한 분노를 부추겨 표를 끌어모은다. 사실 편을 갈라 한쪽을 미워하게 만드는 일은 가장 오래된 정치 전략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의 틈을 더 벌려놓는 일이며, 다수에 속한 사람들조차 끝내 자기 자유를 잃고 마는 결말이 된다. 역사가 거듭 보여주었던 바이다. 그런데도 혐오의 말에 표가 모이는 것을 볼 때면 나는 일종의 염증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숨막히는 감각 끝에는, 저렇게 쉽게 휩쓸리는 사람들을 향한 옅은 경멸이 있었다.
이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 나는 어렴풋이 안다. 무언가를 오래 들여다보고 공부한 사람일수록 이런 피로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세상을 한 겹 더 깊이 들여다본다고 느낄수록, 그 깊이를 모르는 사람들과 나 사이에는 거리가 생긴다. 나에게는 보이는데, 어째서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할까? 도대체 왜 사람들은 이미 증명된 문제 조차 반복할까?
그런데 사실, 그 거리감이 싫지만은 않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나 홀로 꿰뚫어 본다는 감각, 깨어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지적 우월감은 분명한 쾌감을 준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 쾌감을 동력 삼아 오랫동안 지적 유희에 빠져 살았고, 그런 태도로 제법 뜨거운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그 끝에서, 부끄럽지만 더 위험한 생각에 닿은 적이 있다. 한쪽에서는 헛된 약속에 넘어가고 다른 쪽에서는 미움을 부추기는 말에 끌리는 사람들을 번갈아 바라보다 보면,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이들의 손에 세상의 방향을 맡겨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든다. 대중에 기댄 민주주의라는 제도 자체에 회의감을 느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각은 책상 앞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철학이나 정치를 두고 대중이 틀렸다고 여기는 일에는 별다른 대가가 따르지 않는다. 틀려도 잃을 것이 없으니 마음껏 떠들 수 있다. 단지 괴짜 소리정도만 견디면 된다. 그러나 똑같은 감각을 돈 위에 얹어야 하는 자리에서는 다르다. 바로 시장 앞이다. 그곳에서는 내가 대중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곧바로 계좌의 숫자로 정산된다. 나는 시장 앞에서도 내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시장이 틀렸다고 우기는 것이다. 아직 사람들이 못 알아봐서 그렇지, 요즘 시장이 좀 이상하지, 하고 중얼거린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 대중은 어리석다는 생각을 여태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장은 옳은가 그른가. 이 물음은 투자의 세계에서도 오래된 논쟁거리다. 흥미롭게도 어설픈 이들이 아니라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거장들끼리 정반대 자리에 서 있다. 한쪽은 시장이 옳으니 이기려 들지 말라고 한다. 인덱스 펀드를 처음 만든 존 보글은 종목을 고르려 애쓰지 말고 시장 전체를 사서 가만히 들고 있으라고 했고, 시장을 이긴 가장 유명한 투자자인 워런 버핏조차 평범한 지수 펀드가 잘난 헤지펀드들을 이긴다는 데 돈을 걸어 손쉽게 그 내기를 이겼다. 다른 한쪽은 정반대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단기의 시장을 인기투표 기계라 부르며 가격이 가치에서 벗어나는 그 틈이 곧 기회라고 보았고, 조지 소로스는 모두가 한 방향으로 쏠렸을 때 홀로 반대편에 서서 큰돈을 벌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두 번째 편에 서고 싶어 한다. 시장이 틀렸고 그것을 먼저 알아본 내가 옳다는 쪽이다. 대중을 내려다보던 그 시선이 시장 앞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 대중이 보지 못하는 것을 읽어낸 철학자들의 논의를 따라가며 지적 유희를 즐겼던 것처럼, 시장을 뛰어넘는 거장들의 투자 철학을 쫓으며 위안을 삼으려고 했다.
그런데 거장들에게 기대어 내 편을 확인하려 들면, 오히려 묘한 것이 드러난다. 같은 거장이라도 한쪽에서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하고, 다른 쪽에서는 군중의 반대편에 서라고 한다. 거장들은 깔끔하게 두 편으로 갈라선 듯 보이지만, 막상 한 사람 안에서도 그 선이 흐려진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
나는 문득 이 물음 자체가 처음부터 어딘가 잘못 놓인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되었다. 옳고 그름을 가리기 전에, 조금 다른 질문 하나를 먼저 꺼내봐야지 않나 싶다. 대중이 틀렸고 자신이 옳다고 굳게 믿었던 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과연 그 믿음 속에서 ‘마음’이 편안했을까. 수익률 보다 중요한 것 말이다.
2
앞서 던진 그 질문에 답하려면, 평소 잘 하지 않던 일을 한 번 해보아야 한다.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학자나 철학자를 다룰 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의 삶과 생각을 따로 떼어놓는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와 무관하게, 무엇을 썼고 무엇을 주장했는지만 들여다본다. 사람의 생각이 그의 삶과 동떨어져 홀로 설 때도 있으니, 그런 분리가 늘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과 삶이 깊이 얽혀 있을 때도 분명히 있다.
하이데거를 떠올려본다. 그의 철학이 아무리 깊다 해도, 그가 한때 나치당에 몸담고 그 체제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지운 채 그를 읽어도 되는지 나는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철학을 직업으로 삼은 학자라면 사상과 삶을 갈라 분석할 수 있고, 그것은 그것대로 정당한 작업이다. 다만 나처럼 철학을 학문의 도구가 아니라 내 삶의 도구로 빌려 쓰려는 사람에게는, 그 생각을 품고 산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삶의 도구를 고를 때 나는 은근히 이런 것을 따지게 된다. 그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간 사람이 불행했다면, 그 생각이 과연 보통 사람의 삶에 좋은 도구일 수 있을까.
투자에서도 다르지 않다. 큰돈을 번 사람이 곧 따라 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제시 리버모어는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투자자였다. 그는 상상하기 어려운 큰돈을 벌었지만 그만큼 여러 번 파산했고, 끝내 스스로 권총을 들어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매매법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일이 보통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어떤 생각을 품고 산 사람에게서 내가 조용히 살피게 되는 것은, 결국 그 생각이 그의 삶을 어디로 데려갔는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이 장에서 나는 철학자의 생각이 아니라, 먼저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려 한다. 그들의 사상이 보잘것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다만 대중은 어리석고 자신은 깨어 있다는 그 감각을 누구보다 멀리까지 밀고 간 두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믿음이 그들을 편안하게 했는지를 묻고 싶을 뿐이다.
먼저 플라톤이다. 그의 출발점에는 한 사람의 죽음이 있다. 스승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의 투표로 사형을 선고받고 독배를 마셨다. 플라톤은 자신이 속한 도시가, 자신이 아는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다수결로 죽이는 장면을 지켜본 셈이다. 그 충격이 그의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는 이렇게 물었던 것 같다. 가장 훌륭한 사람을 다수가 죽일 수 있다면, 그 다수에게 나라를 맡기는 일이 과연 옳은가. 『국가』에서 그가 내놓은 답은 단호하다. 나라는 선과 진리가 무엇인지 아는 소수, 곧 철학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뜻이 곧 옳음은 아니라고, 그는 믿었다.
그가 남긴 한 이야기는 그 믿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더 또렷이 보여준다. 사람들은 어두운 동굴에 갇혀 벽에 비친 그림자만을 진짜라 여기며 살아간다. 그중 한 사람이 풀려나 동굴 밖으로 나가고, 처음으로 햇빛 아래 진짜 세계를 본다. 그는 동굴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비웃는다. 심지어 그가 사람들의 사슬을 풀어주려 든다면, 사람들은 도리어 그를 붙잡아 죽이려 들 것이다. 플라톤은 그렇게 적었다. 진실을 들고 돌아온 자를 무리가 죽인다는 이 이야기는, 독배를 든 자기 스승의 최후를 그대로 닮았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그를 편안하게 했을까. 플라톤은 자기 생각을 머릿속에만 두지 않았다. 그는 시칠리아의 시라쿠사로 건너가, 그곳의 젊은 참주를 철학자가 다스리는 군주로 길러내려 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바다를 건넜다. 그러나 그 시도는 번번이 어그러졌다. 그는 궁정의 음모에 휘말렸고, 신변이 위태로운 지경에 몰리기도 했다. 가장 지혜로운 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그 확신을 현실에 옮기려던 노력은, 끝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그를 지치게 했다. 그는 어쩌면 옳았는지도 모른다. 다수가 가장 훌륭한 사람을 죽였다는 그의 분노에는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옳다는 것이 그를 편안하게 하지는 않았다. 스승의 죽음에서 생긴 상처는 끝까지 아물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천 년이 지나, 또 한 사람이 같은 눈으로 군중을 바라보았다. 더 날카로운 눈이었다. 프리드리히 니체다. 나는 이전 글에서 니체에게 투자의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그 글에서 나는 니체의 개념을 빌렸다. 남의 시선에 반응하며 사는 노예의 태도와 스스로 가치를 세우는 주인의 태도를 가르고, 시장 앞에서도 남이 매기는 점수판이 아니라 자기 기준 위에 서는 투자자가 되자고 적었다. 지금도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홀로 서는 고독은 사람의 판단을 날카롭게 만든다. 모두가 한쪽으로 갈 때 혼자 멈춰 서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군중을 따라가지 않으려는 투자자에게 니체만큼 든든한 우군도 드물다. 그런데 그때 나는 니체의 생각만 빌렸을 뿐, 정작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들여다보지 않았다.
니체가 군중을 어떻게 보았는지는 분명하다. 그는 다수가 공유하는 도덕을 무리의 도덕이라 부르며 낮춰 보았고, 안락에 만족한 채 더 높은 것을 바라지 않는 인간, 이른바 “마지막 인간”을 가장 경계했다. 그가 그린 차라투스트라는 십 년의 산속 고독을 끝내고 사람들에게 자기 깨달음을 전하러 산을 내려온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비웃는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말이 무리를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는 다시 홀로 물러난다.
그렇다면 그 생각을 품고 산 니체 자신의 삶은 어땠을까. 그는 평생 지독하게 외로웠다. 그의 책은 살아생전 거의 팔리지 않았고,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는 병을 안고 이 도시 저 도시의 셋방을 떠돌았으며,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하나둘 끊어졌다. 그리고 1889년 토리노에서, 그는 정신이 무너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마지막 십여 년을 그는 정신을 놓은 채 보냈다.
군중과 거리를 두는 일은 분명 그의 시야를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거리감이 그를 누구보다 외롭게 만들었다. 무리에게서 멀어질수록 판단은 또렷해졌지만, 그 또렷함은 누군가가 다가오기 어려운 경계를 만들었다. 군중이 틀렸다는 감각은 사람을 영민하게 만드는 동시에, 그 마음에 천천히 독이 된다. 내가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 바로 이 삶이었다.
플라톤과 니체, 고대와 근대의 두 사람은 같은 상처를 안고 있다. 둘 다 군중에게서 무언가 진짜를 보았다. 그들이 옳았는지 그른지를 나는 여기서 가리고 싶지 않다. 다만 조용한 한 가지가 마음에 남는다. 그들은 편안했는가. 두 사람의 삶을 들여다볼수록, 그 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나는 그 두 사람에게서 나를 본다.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았다는 은밀한 우월감(혹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안다는 우월감)이 있고, 그 우월감 끝에는 늘 외로움이 따라온다. 시장 앞에서 혼자 옳다고 믿을 때 내가 서 있는 자리도, 그들이 선 자리에서 멀지 않다.
3
한 사람이 있었다. 플라톤이나 니체만큼, 어쩌면 그들보다 더 군중에게 등을 돌릴 이유가 있었던 사람이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다.
스피노자는 스물세 살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로부터 쫓겨났다.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공동체는 스피노자의 생각을 위험하다고 여겨 그를 파문했다. 오늘날의 감각으로는 한 공동체에서 내쳐지는 일이 그리 큰 벌로 다가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시절의 추방은 훨씬 무거운 형벌이었다. 돈만 있으면 웬만한 일을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그때는 공동체 없이 살아가기가 어려웠다. 나고 자란 집단에서 떨어져 나오면 생계는 물론이고 사소한 문제 하나 풀기도 막막했다. 그런데도 그는 평생 그 결정을 되돌리려 하지 않았다. 한 대학이 내민 교수 자리마저 마다한 채, 평범한 노동을 하며 조용히 생계를 꾸렸다. 그리고 홀로 사유했다.
이 추방의 경험은 그에게 한 가지를 분명히 일러주었다. 사람에게는 자기 생각을 지닐 자유가 있어야 하고, 그 자유를 지켜주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훗날 그는 “국가란 사람을 짐승이나 꼭두각시로 길들이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제 몸과 정신을 안전하게 쓰도록 하기 위해 있다”고 적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분명하다. “국가의 참된 목적은 자유”라는 것이다. 아무리 강한 권력도 사람이 생각할 권리까지 빼앗을 수는 없으며, 시민의 입을 억지로 막으려는 국가는 끝내 스스로 무너진다고 그는 보았다.
그에게 그 자유를 제도로 지켜줄 유일한 형태가 민주적 공화정이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자기 존재를 지켜 나가려는 힘, 그가 코나투스라 부른 근본 충동이 있다. 공화정은 그 힘이 남의 의지에 매이지 않고 펼쳐질 수 있는 바탕이었다. 파문을 겪으며 폭력의 위협을 느꼈고, 칼을 든 자에게 봉변을 당한 적까지 있던 그에게, 누구도 남의 생각을 함부로 짓밟지 못하는 정치란 가장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아끼던 공화정이, 다시 다수의 손에 무너지고 만다. 1672년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무렵 공화국을 이끌던 사람은 요한 더 빗과 그의 형제 코르넬리스였다. 두 사람은 자유로운 공화국을 지키려던 정치가였고, 스피노자가 마음으로 지지하던 쪽이었다. 그런데 위기 속에서 성난 군중이 헤이그의 거리에서 두 형제를 붙잡아 끔찍하게 살해했다. 스피노자가 옳다고 믿던 방향을, 군중은 정반대로 뒤집어버린 것이다.
전해지기로 스피노자는 그 소식에 분을 참지 못했다. 그는 학살이 벌어진 자리에 "야만의 극치"라고 쓴 종이를 붙이러 밤길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그가 머물던 집의 주인이 문을 잠가 그를 말렸다고 한다. 군중이 그마저 해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장면이 묘하게 위로가 된다. 스피노자도 처음부터 평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 역시 똑같이 분노했고, 군중을 야만이라 부르고 싶어 했다. 솔직히 나라도 그 종이를 들고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마음은 플라톤이나 니체가 간 길로 가지 않았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데도, 그는 군중은 어리석으니 그들의 손에서 권력을 거두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다른 두 가지를 택했다.
하나는 미움 대신 이해다. 그는 『정치론』의 첫머리에서, 인간의 행동을 두고 비웃지도 한탄하지도 저주하지도 않고 다만 이해하려 했다고 밝혔다. 『에티카』에서 그는 인간의 감정조차 기하학을 다루는 방식으로 차분히 분석했다. 사람의 행동은 그 사람의 본성과 처지에서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 것이며, 그 인과를 이해하고 나면 미움은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미움은 그것을 품은 사람부터 갉아먹는 슬픈 감정이고, 이해는 도리어 그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다른 하나는 경멸 대신 설계다. 그는 사람이 정념에 휘둘리는 존재라는 사실을 탓하지 않고, 그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그래서 그가 구상한 정치는 리더가 특별히 현명하거나 선해야만 굴러가는 체제가 아니다. 평범하고 결함 있는 사람들이 운영해도 무너지지 않도록 짜인 제도다. 사람을 더 훌륭하게 바꾸려 들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람에 맞춰 틀을 짠 것이다. 그토록 다수에게 배신당하고도, 그는 끝내 대중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
군중을 미워할 이유가 충분했던 사람이, 정작 미움에 자신을 내주지 않았다. 플라톤과 니체의 마음에 천천히 독이 되었던 그 감각을, 스피노자는 이해라는 다른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자리에서 그는 한 걸음 비켜섰고, 대신 어떻게 하면 그 사실을 이해하고 견딜 수 있는가를 물었다.
스피노자의 이야기를 읽다가 나는 그 자리가 투자자의 자리와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기 힘으로 생각할 자유와 그것을 지켜주는 공화정을 믿었고, 거기에 평생을 걸었다. 그런데 그가 가장 아끼던 그 가치를, 다름 아닌 다수가 짓밟았다.
투자자가 시장에서 겪는 일도 규모만 작을 뿐 결이 비슷하다. 한 기업을 오래 들여다보고 그 가치를 스스로 확신하게 되면 우리는 거기에 돈을 건다. 그런데 시장은 종종 정반대로 움직인다. 내가 신중하게 고민해서 옳다고 믿은 판단을 (빈약한 근거에 기대는) 군중이 외면하거나 비웃을 때, 나는 꼭 학살 현장 앞에 선 스피노자처럼 분이 차오른다. 그때 내 손에도 종이 한 장이 들려 있다. 시장이 틀렸고 나는 옳다고 적힌, '탐심(공포)의 극치!'라는 종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스피노자가 마주했던 것과 똑같은 선택이 나를 기다린다. 미움이냐, 이해냐.
시장도 결국 그런 군중이다. 때로 어처구니없는 쪽으로 쏠리고, 공포에 질려 무너지고, 멀쩡한 것에 엉뚱한 값을 매긴다. 스피노자가 택한 두 가지는 그 앞에서도 그대로 옮겨진다. 군중을 미워하는 대신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일, 그리고 시장이 현명해지기를 바라는 대신 시장이 어떻든 무너지지 않을 나만의 틀을 짜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한 번 멈춰 선다. 스피노자는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미워하지 말고 이해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 이르는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미워하기보다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아는 일과, 군중이 문 앞까지 몰려왔을 때나 시장이 나를 비웃을 때 실제로 그렇게 설 수 있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목적지를 아는 일과 거기에 실제로 다다르는 일은 다르다.
4
판단하고 싶은 상대 곁에서 판단하지 않고 머무르도록 연습시키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있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상담가라 부른다. 나는 한때 그 일을 배웠다. 상담을 처음 배우러 갔을 때 가장 먼저 깨진 것은, 상담가란 사람을 ‘고쳐’주는 사람일 거라는 내 짐작이었다. 나는 상담이, 반려견 훈련사가 개의 문제 행동을 바로잡듯 사람의 괴로운 마음과 잘못된 행동을 없애주는 일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그 일이 생각보다 쉬울 거라고 여겼다. 문제에 빠진 사람은 정작 자기 문제가 잘 보이지 않지만, 곁에서 보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환히 보이기 때문이다. 짝을 찾는 연애 예능을 보면 분명해진다. 출연자들은 자기 미숙함을 좀처럼 알아채지 못하지만, 시청자들은 누가 어디서 서툴렀는지를 손쉽게 짚어낸다. 한발 떨어져 볼 수만 있으면, 한 사람의 약점을 지적하는 일은 대체로 어렵지 않다.
그래서 나는 첫 상담부터 사람들의 문제를 칼같이 지적했다. 지금 너무 감정적이라거나, 자기중심적이라거나, 배려가 없다는 말을 거침없이 했다. 약점을 빠르게 찾아 시원하게 일러주는 이른바 사이다 상담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상담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퍼바이저는 그런 태도가 위험하다고 했다. 아무리 옳아 보이는 답이라도 좋지 못한 때에 꺼내면 그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정해진 시간 안에 정답을 맞히고 끝내는 시험이 아니라고 했다. 오래 곁에 머물면서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리고, 조금씩 함께 맞춰가는 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답을 아느냐보다, 그 답을 언제 꺼내느냐, 그리고 그 관계를 얼마나 길게 이어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배운 것은 이런 것이다. 좋은 상담가는 마주 앉은 사람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진단해주거나 어떻게 살라고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가 하는 일은 그보다 단순하면서도 훨씬 어렵다. 흔들리는 사람 곁에서, 함께 흔들리지 않고 머무는 일이다.
그 자리에 서기 위해 상담가가 갈고닦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해하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견디는 힘이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스피노자가 가리켰지만 길은 알려주지 않은 바로 그 자리로 사람을 데려간다.
첫째는 ‘공감적 이해’다. 심리학자 칼 로저스가 쓴 말인데, 상대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그의 시선 안으로 들어가 그가 세상을 어떻게 겪고 있는지를 헤아리는 일을 가리킨다. 그래서 상담가는 마주 앉은 사람의 어떤 모습이 눈에 거슬려도, 그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먼저 짚는다. 그 사람이 자라온 가정, 거쳐온 관계, 타고난 기질, 살아온 시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길이 보인다. 그 길이 보이면 미움은 누그러진다. 사람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그를 그렇게 만든 무언가가 있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 태도는 상담이 사람을 부르는 방식에서부터 드러난다. 상담에서는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을 환자라 부르지 않는다. 내담자(來談者)라 부른다. 글자 그대로 찾아와서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말에는 묘한 태도가 담겨 있다. 그를 고쳐야 할 병자로 규정하지 않고, 단지 제 이야기를 들고 찾아온 한 사람으로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진단명이 그를 앞질러 규정하지 않고, 그가 스스로 풀어놓는 말이 먼저다. 상담가는 그 말을 판정하러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듣고 공감하기 위해 앉아 있다.
또한, 한 가지 구분할 점은 공감과 동감이다. 이 둘은 다르다. 공감은 그 사람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는 일이고, 동감은 그가 옳다고 인정하는 일이다. 상담가는 공감하되 동감하지 않는다. 내담자의 행동이 그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것이 빤히 보여도, 상담가는 그것을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왜 그 자리에 이르렀는지를 이해하고, 그 이해 위에서 곁에 머문다. 이해는 동의가 아니다. 그래서 이해한다고 해서 내 판단을 버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대중도, 시장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시장은 내게 매일 무언가를 말하러 온다. 어떤 날은 들떠서, 어떤 날은 겁에 질려서, 또 어떤 날은 영문 모를 소리를 늘어놓으며 찾아온다. 나는 오랫동안 그 말을 옳고 그름으로 판정하려 들었다. 시장이 틀렸다고, 저건 말이 안 된다고. 그러나 내담자를 대하듯 시장을 대한다면, 내가 할 일은 그 말이 맞는지 채점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듣는 것이다. 오늘 시장은 무슨 말을 하러 왔는가, 오늘은 평소와 다른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는가.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궁금해하고 이해하려 애써볼 수는 있다.
그러려면 먼저 적절한 질문이 필요하다. 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저런 말과 저런 감정에 빠졌을까. 시장은 대체 왜 한쪽으로 우르르 쏠릴까. 이것이 시장을 내담자로 대하는 첫걸음이다.
그 물음에 백여 년 전의 한 실험이 실마리를 준다. 20세기 초 영국의 한 가축 품평회에서 황소 한 마리의 무게를 알아맞히는 대회가 열렸다. 팔백 명 가까운 사람들이 저마다 무게를 적어 냈다. 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평범한 사람들의 어림짐작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확인할 셈으로 그 표들을 모았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사람들이 적어 낸 값의 중앙값은 1,207파운드, 황소의 실제 무게는 1,198파운드였다. 팔백 명의 군중이 9파운드 차이로 정답에 다가선 것이다. 대중을 얕보며 시작한 골턴이, 그 대중에게 조용히 정정당한 셈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흔히 군중은 현명하다고, 이것이 바로 집단 지성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사람이 모인다고 거기서 지성이 솟아나는 것은 아니다. 군중은 토론이나 합의로 최선의 답을 찾아낸 것이 아니다. 개개인의 추측은 결코 정확하지 않았다. 누구는 터무니없이 높게, 누구는 한참 낮게 적었다. 군중이 정답에 다가선 것은 모두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높이 틀린 사람과 낮게 틀린 사람의 오차가 서로를 지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도 자명하다. 오차가 서로를 지워주는 것은 사람들의 추측이 제각기 흩어져 있을 때뿐이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 같은 쪽으로 틀리기 시작하면, 오차는 더 이상 상쇄되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같은 군중이 어떤 때는 황소의 무게를 맞히고 어떤 때는 거품과 공황을 만든다. 둘을 가른 것은 똑똑함과 멍청함이 아니라, 흩어졌느냐 쏠렸느냐였다.
그럼 어째서 평소 제각각이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같은 방향으로 기울어버리는가. 한 가지 가설을 따라가 보자. 어느 저녁, 처음 보는 거리에 비슷한 식당 두 곳이 마주 보고 있다고 하자. 누군가 우연히 한 곳에 먼저 들어간다. 뒤에 도착한 사람은 한쪽에는 손님이 있고 다른 쪽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손님이 있는 쪽을 고른다. 그다음 사람도, 또 그다음 사람도 같은 판단을 한다. 한 시간 뒤 한쪽은 줄이 늘어서고 다른 쪽은 텅 빈다. 각자는 영리하게 행동했다. 정보가 부족할 때 다른 사람의 선택을 단서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모두가 영리하게 남의 행동을 따른 결과, 집단 전체로는 첫 번째 사람을 모두가 뒤따른 모양이 된다. 경제학자들은 이 흐름을 정보 폭포라 부른다. 흥미로운 것은 이 폭포 어디에도 어리석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도 같은 장면이 끝없이 되풀이된다.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생각한다. 저렇게 많은 사람이 사고 있다면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겠지. 그 추론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추론하는 순간, 가격은 더 이상 가치를 가리키지 않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가리키는 신호가 된다. 거품은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 하나 없이 자란다.
여기까지 따라오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쏠림은 누군가 어리석어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각자가 합리적으로 남을 참고하다가, 그 합리들이 한 방향으로 포개지는 자리에서 자라난다. 거품이 끼고 공황이 번질 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멍청한 사람들의 무더기가 아니라, 영리한 사람들이 서로를 합리적으로 참고한 결과다.
그리고 이 사실은 묘하게 안으로 돌아온다. 어리석음이 어디에도 없다면, 나라고 예외일 리 없다. 시장을 향해 솟아오르는 내 경멸은 내가 그들보다 위에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나 역시 언제든 같은 쏠림에 휩쓸릴 수 있다는 증거에 가깝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시장이 틀렸다는 말이, 시장은 원래 그렇다는 말로 천천히 바뀐다. 사람이 모이면 으레 그렇게 된다고,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미워할 대상이 하나 줄어드는 자리에서, 나부터 조금 가벼워진다.
앞 장에서 미뤄둔 거장들의 말도 이 자리에서 다르게 들린다. 그레이엄이 단기의 시장을 인기투표 기계라 부른 것은, 투표가 무엇이 옳은지 가려내는 장치가 아니라 지금 표가 어느 쪽에 몰렸는지를 셀 뿐이라는 뜻이었다. 버핏이 남들이 탐욕스러울 때 두려워하라고 한 것도, 대중이 틀렸으니 반대로 가라는 말이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감정으로 한 방향에 쏠렸는지를 보라는 말이었다. 두 사람은 대중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대중의 상태를 읽고 있었다. 상담가가 내담자에게 옳다 그르다 판결하는 대신 지금 그가 어떤 상태인지를 살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 상담가의 첫 번째 힘, 공감적 이해다. 무엇이 사람을, 또 무엇이 시장을 그렇게 움직이는지 알고 나면, 미워하던 대상이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뀐다.
그러나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그런지 안다고 해서 그 한복판에서 함께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시장 곁에서 무너지지 않고, 들뜬 시장 곁에서 들뜨지 않으려면 또 다른 힘이 필요하다.
5
상담가가 갈고닦는 두 번째 힘은 견디는 일이다. 견디는 힘은 이해보다 배우기 어렵다. 무엇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지 머리로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불안이 내게 밀려들 때 함께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상담에서 이 견딤에는 두 결이 있다.
하나는 정신분석가 비온이 ‘담아내기’라 부른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내담자는 자기가 감당하지 못하는 감정을 상담가에게 그대로 쏟아낸다. 불안, 분노, 두려움 같은 것들이 정리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건너온다. 미숙한 상담가는 그것에 함께 휩쓸린다. 내담자가 불안해하면 같이 불안해지고, 내담자가 화를 내면 같이 발끈한다. 비온이 말한 담아내기는 그 반대다. 상담가는 그 감정을 일단 받아 안는다. 받아 안되 함께 무너지지는 않는다. 건너온 감정을 자기 안에서 한 박자 늦추고, 견딜 만한 형태로 바꾸어 천천히 돌려준다. 그러면 내담자는 자기가 쏟아낸 것이 누군가의 안에서 무너지지 않고 견뎌졌다는 사실을 본다. 감당 못 할 것 같던 감정도 사실은 담길 수 있는 것이었음을 그제야 알게 된다. 상담가가 흔들리지 않고 그 감정을 담아낸 그 자리에서, 내담자는 조금씩 자기 감정을 다시 품을 힘을 얻는다.
다른 하나는 가족치료를 연구한 보웬이 ‘분화된 자기’라 부른 것이다. 보웬은 한 가족을 들여다보다가, 식구 중 누군가의 불안이 다른 식구에게 차례로 옮겨붙는 장면을 발견했다. 어머니가 불안하면 그 불안이 아이에게 옮고, 아이가 흔들리면 다시 온 집안이 술렁인다. 감정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타고 번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옮아붙음에 휩쓸리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놀랍게도 그 한 사람의 평정이 거꾸로 집단 전체를 천천히 가라앉힌다. 분화된 자기란 남과 동떨어져 차갑게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다. 곁에 함께 있으면서도 남의 감정에 자동으로 물들지 않는 것, 관계 안에 머물되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소위 ‘안정형’이라느 부르는 사람들의 태도라 할수 있다.
둘은 결국 하나의 자세로 모인다. 흔들리는 것 곁에 있되, 그 흔들림에 함께 휩쓸리지 않는 일이다.
이 자세를 시장으로 옮겨보면, 투자자가 가질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짜 우위가 무엇인지 보인다. 그것은 시장보다 똑똑한 일이 아니다. 시장은 수천만 명의 영리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대개 자기 분야에서 개인보다 밝다. 그들을 모두 합쳐 이길 방법은 없다. 다만 한 가지, 그들 모두에게는 어려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가능하다. 그들이 한 방향으로 기울 때 함께 기울지 않는 것이다. 공포가 번질 때 덩달아 팔지 않고, 탐욕이 달아오를 때 덩달아 사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쪽으로 쏠릴 때 홀로 제 자리를 지킨다. 상담가가 내담자 앞에서 갖추는 그 자세와, 투자자가 시장 앞에서 갖춰야 하는 자세는 결이 같다.
앞서 수퍼바이저가 일러준 두 가지도 여기서 제값을 한다. 첫째, 옳은 답도 때가 맞지 않으면 옳지 않다. 시장에서 이 말은 더 매섭다. 좋은 기업을 알아보았다 해도, 시장이 그 가치를 알아줄 때까지는 한참이 걸린다. 너무 일찍 옳은 것은 한동안 틀린 것과 구분되지 않는다. 둘째, 관계는 한두 번 정답을 맞히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투자도 그렇다. 한 번 좋은 판단을 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시장 곁에 오래 머물며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다. 상담가가 한 번의 명쾌한 지적이 아니라 긴 동행으로 사람을 돕듯, 투자자도 한 번의 적중이 아니라 긴 머무름으로 결실을 본다.
그런데 이 자세가 필요한 사람은 진지한 투자자만이 아니다. 글 첫머리에서 나는 공부를 할수록 대중과 멀어지고, 그 거리감을 은근히 즐기던 마음을 고백했다. 무언가를 오래 파고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자리에 선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이 답답해 보이고, 그들을 붙잡고 바로잡아주고 싶어진다. 가까이는 근거 없이 투자를 하는 배우자를 훈계하고 싶은 마음이다. 멀리에는 광기에 휩쌓인 시장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마음은 첫 상담에서 내담자의 약점을 칼같이 지적하던 그때의 나와 다르지 않다. 상담가가 그 충동을 견디고 곁에 남는 법을 배우듯, 투자자인 나도 시장과 세상 앞에서 같은 것을 배워야 했다. 옳음을 들이대는 대신, 곁에 머무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시장에 대한 인상이 달라진다. 우리 개개인의 마음이 틀리지 않은 것처럼, 시장 또한 고쳐야 할 환자가 아니다. 어딘가 고장 난 멍청한 무리도 아니다. 평소에는 흩어진 판단이 서로의 오차를 지우며 제법 정확하게 제 일을 하다가, 어떤 순간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 뿐이다. 그때 필요한 것은 진단이 아니라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다. 내가 시장을 내담자라 부르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담자는 고쳐야 할 환자도, 굴복시켜야 할 상대도 아니다. 다만 이해하고, 판단을 잠시 미뤄둔 채 곁에 머물러야할 사람이다.
그래서 이제 내가 시장 앞에서 던지는 질문이 달라졌다. 시장이 옳은가, 내가 옳은가가 아니다. 지금 사람들의 마음이 한쪽으로 쏠렸는가, 아니면 흩어져 있는가. 이것은 판결이 아니라 관찰의 질문이다. 답이 보이면 조용히 움직이고, 보이지 않으면 그 곁에서 기다리면 된다.
물론 나는 아직 그 자리에 온전히 서 있지 못한다. 지금도 시장이 내 판단을 비웃을 때면 어김없이 분이 차오르고, '비이성의 극치'라고 쓴 종이를 다시 손에 쥐고 싶어진다. 상담가가 평생 그 자리에 서는 법을 연습하듯, 나도 시장을 내담자로 대하는 법을 평생 연습하는 중이다. 그것은 도달하는 상태가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이다. 어쩌면 영영 다 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그 연습을 시작한 뒤로, 나는 시장 앞에서,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한결 덜 외로워졌다.
6
글을 시작한 자리로 돌아온다. 선거철의 현수막이다. 솔직히 그 현수막들은 지금도 나를 울렁이게 한다. 다만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이제 나는 화를 내기 전에 한 번 이해해보기로 마음먹는다.
이해한다는 것은 동감한다는 뜻이 아니다. 저 사람의 자리에서라면 저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 그 정도다. 누군가는 가진 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보아 왔고, 누군가는 여자로 혹은 남자로 살아온 시간이 있었고, 누군가는 부모와 맺은 어떤 관계가 평생 그를 따라다녔을 것이다. 그런 경험과 배경과 위치라면 저렇게 생각하겠구나, 하는 정도의 헤아림이다. 그가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쩌다 거기까지 갔는지를 더듬어보는 것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현수막 앞에서 솟던 화가 한 뼘쯤 가라앉는다.
사실 현수막 속 정치인을 미워하지 않기란 쉽다. 그는 멀리 있고, 나는 그를 만날 일이 없고, 그를 이해하든 미워하든 내가 잃을 것은 없다. 정작 어려운 것은 따로 있다. 밥상 건너편에 앉는, 바로 곁의 한 사람이다. 내게 그 사람은 오랫동안 아버지였다.
아버지와 나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마주 앉으면 어색했고 불편했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할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자주 다투었고, 솔직히 미웠다. 어떤 때는 혼자 머릿속으로 아버지가 왜 틀렸는지를 따지며 일주일 내내 반박 논리를 다듬은 적도 있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늘 가슴이 무겁고 화가 났다.
특히 술이 문제였다.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고, 그것이 나를 오래 힘들게 했다. 열일곱의 나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술꾼 이야기를 들고 와 아버지를 몰아세웠다. 그 술꾼은 술 마시는 일이 부끄러워서, 그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다시 술을 마신다. 나는 아버지에게, 술이 중독적이라는 말은 핑계일 뿐 사실은 무언가를 잊으려고, 어떤 감정을 억누르려고 마시는 것 아니냐면서 몰아 새웠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게 회피하는 마음을 그대로 직면시킨 것이다. 정확한 말이었는지는 몰라도, 좋은 말은 아니었다. 열일곱의 나도, 우리 둘의 관계도, 그 말을 감당할 만큼 자라 있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그 자리를 다르게 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술로 무언가를 잊으려 했다면, 그것은 아버지로 사는 일이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힘듦을 좀처럼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그 시절 한국의 아버지에게, 술은 말하지 못한 것을 덮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아버지도 아버지가 처음이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사람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차분히 배울 여유 같은 것은, 그때 그 자리에는 없었다. 그 시절, 그 처지라면 그럴 수도 있었겠구나. 내가 닿은 것은 그 한 문장이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옳았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 사이에 사과가 오간 것도, 무엇이 해결된 것도 아니다. 아버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를 이해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이해 하나로, 수십 년 넘게 팽팽하던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달라진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내 화였다.
돌아보면 내가 한 일은 늘 같았다. 현수막 앞에서도, 밥상 건너편의 아버지 앞에서도, 무너지는 시장 앞에서도, 나는 판단하기 전에 한 번 이해해보려 했다. 그 이해는 그들 중 누구도 옳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다만 그것은 매번 나를 내려놓게 했다.
상담에는 내가 오래 믿어온 한 가지가 있다. 사람이 원래 그런 존재임을 이해하고, 저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알아주고, 곁에서 견디며 듣다 보면, 사람은 결국 스스로 길을 찾아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이다. 상담가가 답을 쥐여주어서가 아니라, 판단받지 않는 자리에서 사람은 제 힘으로 회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장과 대중도 그렇게 믿어보기로 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영리해서, 한쪽으로 우르르 쏠렸다가도 이내 다시 흩어진다. 한쪽으로 치우쳤던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제자리를 찾는다. 그러니 나는 미워하며 다그치는 대신, 그들이 제 길을 찾을 때까지 곁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그러니 내가 상담사가 되어보자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더 우월하거나 고상한 자리여서가 아니다. 이유는 훨씬 단순하다. 그저 그것이 쓸모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알아갈수록 사람들 때문에 덜 괴로울 수 있는, 내가 아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상담을 배우고 수련하는 자리에서도 정작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이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상담을 배우러 온 사람들은 마음과 관계를 공부하고 내담자와 마주하면서, 무엇보다 자기 안의 오래된 고통부터 하나씩 풀어 나간다. 그러니 ‘공감적 이해’와 ‘견뎌내기’는, 끝내 남을 위한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먼저 나를 위한 것이고, 시장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장을 공감적으로 이해하고 그 불안을 담아내는 연습은, 결국 내가 덜 고통받으면서 그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줄 수 있게 되는 방법이다.
이것을 증명해 보이라면 나는 못 한다. 애초에 논리로 따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닫으며 나는 처음의 세 사람을 다시 떠올린다. 플라톤과 니체, 그리고 스피노자다. 누구의 논리가 더 옳은지는 여기서도 가리지 않으려 한다. 다만 그들이 그 생각을 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생각한다. 대중을 미워한 사람은 그 미움 속에서 끝내 편안하지 못했고, 누구보다 미워할 이유가 컸던 사람은 미움 대신 이해를 택해 그나마 평온할 수 있었다. 결국 이 글이 더듬어온 것은 누가 옳으냐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덜 괴롭게 살 수 있느냐는, 지혜의 문제였다.
나는 여전히 그 일에 서툴다. 지금도 누군가의 말에, 또 어떤 시세에 불쑥 화가 솟고, 시장을 비난하는 말을 다시 손에 쥐고 싶어진다. 그래도 그 종이를 내려놓는 연습을, 미워하는 대신 이해하는 연습을 나는 계속하려 한다. 그렇게 미워할 대상이 하나씩 줄어들 때마다 세상은 조금 덜 적대적인 곳이 되고, 나는 조금 더 편안해진다.
<멋나들 연구소>, 마론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