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7일 자 Economist를 읽다가 재밌게 읽은 내용을 공부 및 공유해 봅니다. 하도 Deep Research만 시켰더니 바보가 될 것 같아 일부러 재미로 글을 써봅니다.
소재가 된 기사는 'China’s hellscape in Myanmar'입니다. 기사의 부제가 '중국이 미얀마 위기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그 위기의 최대 수혜자이다.'이고, 기사 내용도 중국이 미얀마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니 '중국이 그리는 미얀마 지옥도'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 기사는, 2021년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가 군부와 정부로 나뉘어 내전을 겪는 동안 중국이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음을 꼬집고 있습니다. 서구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나 가자 지구 같은 다른 위기에 몰두하는 사이, 중국은 미얀마와의 국경을 안정화하고 무역로를 확보했으며, 미얀마에서 서구의 영향력을 제한해내 자신들의 이익을 착실히 챙기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미얀마의 지형도(地形圖)가 빚어낸 비극 속에서, 중국이 자신들에 이익에 맞춰 어떤 지옥도(地獄圖)를 그려 나가는지 살펴봤습니다.
지리가 빚어낸 미얀마의 운명


우선 미얀마(버마)에 대한 배경지식부터 좀 필요합니다.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의 서북쪽, 인도차이나반도에 위치한 해안 국가입니다. 북쪽으로는 중국, 동쪽으로는 태국·라오스, 서쪽으로는 인도·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미얀마는 히말라야산맥에서 내려오는 아라칸산맥 등으로 북쪽은 막혀 있지만, 상대적으로 동쪽으로 열려 있고 남쪽 인도양으로는 시원하게 트여 있는 해안 국가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두 권의 책에서는 지리가 한 국가의 운명과 민족성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는데요, 바로 이 지리적 위치가 미얀마의 운명을 결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자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이념은 스쳐 지나가도, 지리적 요소는 영원하다.
팀 마샬, 『지리의 힘』
인도와 중국 사이에 끼어 있으면서 해양 - 육상을 잇는 통로라는 점이 역사적으로 미얀마를 강대국의 전략적 요충지로 만들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보면,
19세기에는 인도를 식민지로 확보한 영국이, 중국 시장 진출 및 인도양 제해권 강화를 위해 미얀마(당시 버마)를 세 차례나 침공했습니다. 그 결과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영국은 국민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마르족과 소수민족을 분리 통치하여 민족 갈등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영국의 식민 지배가 끝나기도 전인 1942년, 2차 세계대전에도 미얀마는 전쟁의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습니다. 이번엔 일본 제국이 인도로 진격하기 위한 통로로 사용되고 말았죠. 일본이 1945년 패퇴하여 물러났지만, 영국군이 다시 들어왔고, 이후 1948년에야 완전히 독립할 수 있었습니다.
대륙에서 인도양으로 통하는 관문이라는 점, 그리고 중동-인도-중국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연결고리라는 점이 미얀마의 숙명이자 비극의 뿌리인 셈입니다.
독립 후 통합의 좌절, 군부의 등장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그리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지만, 미얀마의 국부로 여겨지는 독립 영웅 아웅 산 장군이 소수민족 자치를 약속하는 '판롱 협정' 체결 직후 암살(1947년) 당했습니다. 이후 소수 민족에게 약속했던 자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서, 다민족 국가 통합의 꿈은 좌절되고 미얀마는 고질적인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습니다.

(TMI로, 아웅 산 장군의 딸이 미얀마 국가고문이자 민주화 운동가인 아웅 산 수지 여사이며, 1983년에 일어난 북한의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가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도 지리가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데요, 미얀마의 지형은 크게 중앙의 평야 지대와 주변부를 둘러싼 산악 지대로 나뉩니다.
인구의 약 68%를 차지하는 버마족은 비옥한 이라와디 강 유역의 평야 지대에 주로 거주하며, 역사적으로 미얀마의 주류 민족이자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 세력이었습니다. 반면, 샨족, 카렌족, 카친족, 라카인족 등 100개가 넘는 소수 민족은 국경 지대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분리는 곧 민족적 분리와 연결됩니다. 외부 세력의 접근이 어려운 산악 지대에 사는 소수 민족은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독자적인 생활권을 형성해 왔습니다.
따라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평야 지대에 비해 약했고, 자신들의 자치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무장 투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독립 이후 자치권이 주어지지 않자 이러한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중앙 정부와 소수민족 무장단체 간의 충돌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혼란과 분열이 반복되자, 군부는 1962년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 통합과 안보 수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정치에 개입했습니다. 네 윈 장군은 '버마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외부와 단절된 군사 독재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경제는 피폐해졌고, 내전은 지속되니 군부 통치에 대한 저항으로 1988년 8월 8일, '888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나, 군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