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부터 작성해온 글을 이제야 마무리.
퇴고를 해야 하는데 그럴 에너지가 없다.
근데 또 내일 수정하자니 그것도 싫더라.
system 1이 "이만하면 됐다 걍 게시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일단 투고해버린 글.
나를 위해 쓴 글이라고는 하지만 또 사람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다.
왜 어릴 적 친구들이 내가 그린 만화를 재밌게 봐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이 든다.

침팬치
2025.12.27
세상! 어떻게 살란 말인가 도대체.
"2026년엔 어떻게 살아볼까?" 라는 질문을 11월부터 시작했는데 12월이 끝나감에도 글을 마치지 못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이 글은 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글인데 누군가에겐 영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선 올려볼 생각입니다.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Chapter 1. 정해둔 것에서 생각하려는 습성을 가진 우리
인간의 생각.
그 속성은 스스로 정해둔 영역에 가두어집니다.
이것은 제 생각입니다.
즉, 우리가 생각이라는 것을 할 때 그 생각이 소유한 영역에 대한 인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온전한 삶에 대한 숙고라는 것은 환상일지도 모릅니다.
추상적이라고 느끼실 분들도 있을 것 같아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대게 주어진 대로 살며 그곳에서 행동합니다.
공동체를 중시했던 동양의 문화권, 특히 유교적 질서가 깊이 뿌리 박힌
우리 사회에서는 그 태도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어릴 적 다녔던 학교와 학원은 사회와 부모가 만들어준 시스템이었고,
대학을 가야 한다는 것과 취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기성세대가 만들어둔 여론이 우리의 생각에 관여한 산물입니다.
좁은 시야를 가진 이를 '우물 안의 개구리'라 칭했던 장자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이 처한 좁은 공간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한계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왜 대학을 가야 하는가?", "왜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가?", "왜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하지 않습니다. 아니, 적어도 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루빨리 돈을 벌고 싶었고, 그럼 뭐라도 해서 쓸모 있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숙고 없는 조언을 맹목적으로 믿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생각이 소유한 영역'에 대한 인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죠.
제 삶에는 공부, 대학, 취업만이 존재했습니다.
반대로 금융 공부, 식습관 교정, 규칙적인 운동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말한 동굴의 우상.
저는 제 경험과 환경이라는 동굴 속에 갇혀 벽면에 비친 그림자만을 진실이라 믿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제시해준 길이 저에겐 곧 신화였던 셈이죠.
그렇기에 다양한 영역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조언들을 모은 동기부여 영상들.
다소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모두 한낱 개인의 주장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발언 또한 일종의 프로파간다임을 의심하고 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주장을 주워 담아 그대로 실천하면 정말 당신이 옳다고 믿는 삶이 실현될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합니다.
우리 모두는 낭만을 좇습니다.
아무리 이성적이라 칭하는 사람들 조차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 취미, 남들에게 보여질 멋진 모습 같은 것들을 욕망하죠.
하지만 그 이면엔 지독한 유지 보수 비용이 따릅니다.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투자를 고민하면서도 당장의 빨래와 청소를 해야 하고,
소원해지지 않기 위해 연인과 지인들을 챙기며 부모님께 효도라는 과업도 수행해야 합니다.
건강 관리 또한 빼먹을 수 없습니다.
잇몸이 녹아내리지 않게 매일 잇몸 안 속까지 치실질을 해야 하고,
현대인의 고질병인 디스크를 피하기 위해 끊임 없이 자세를 교정해야 합니다.
노화에 저항하기 위해 숨이 차는 유산소와 근육을 유지하기 위한 근력 운동,
‘제2의 뇌’로 불리는 장을 지키기 위해 색상별 채소를 섭취해야 하죠.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커리어도 지켜야 하고, 예고 없는 사고에 대비해 비상금도 모아야 하며,
부모님의 디지털 문맹을 해결해 드리는 IT 조력자 역할과 보이스 피싱 방지를 위한 잔소리까지…
더 적을 게 많지만 이쯤 하면 된 것 같습니다.
뭣하러 이렇게 많이 적었냐고 물으실 수 있지만
삶을 이루는 구성 요소가 가늠이 안갈만큼 크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돈을 많이 벌고야 말겠다’, '이 업무를 반드시 성공시키고야 말겠다' 와 같은 일종의 주체적 단일 선언에는 긴 시간의 숙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 어떠한 것에 최고가 돼보겠다는 단일 목표를 설정했다면,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버려야만 합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인간은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싶어 하며, 실제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많은 것들을 잃을 용기를 전제로 하는 선언만이 주체적인 선언이라 생각합니다.
하루 8시간 이상 잠을 충분히 자며 매일 1시간 이상 꾸준한 운동과 천천히 식사하는 이로운 식습관.
삶을 향유한다는 충만한 감정과 사랑, 우정, 낭만과 같은 문학적인 요소.
이것들을 모두 손에 쥔 채로 단일한 목표를 지향할 수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삶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Chapter 2.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우물 밖의 세상을 인지하고, 삶이라는 것이 Investment market 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필연적으로 거대한 허무와 마주하게 됩니다.
"세상이 정해준 대로 살지 않겠다"와 같은 선언은 꽤나 시니컬하고 폼 나지만,
그 선언 뒤에는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라는 무거운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의 공포를 견디지 못합니다.
하여 우리에겐 나를 지탱해 줄 믿음, 즉 신화가 필요합니다.
신화가 부재한 상태의 인간은 어떨까요?
끝없이 표류하며, 그 표류가 지속되면 정신적 붕괴를 겪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지난 수천 년동안 종교가 그 거대한 지붕 역할을 해왔습니다.
신의 섭리라는 절대적 서사 속에서 인간은 안정을 찾았으니까요.
하지만 니체의 말마따나 신이 죽었다고 선언된 현대 사회에선 그 역할을 종교가 하기엔 버거워졌고
이제는 과학이라는 이름의 절대적 진리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우상도 있겠네요.
우리는 스스로 이성적이라 믿지만, 실상은 낡은 신화를 새로운 신화로 갈아 끼운 채
여전히 무언가에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자본주의 아래에 돈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돈의 노예가 되어 제 영혼을 갉아먹히고 싶지도 않습니다.
또한 단순히 남들보다 더 큰 성공을 좇는 것도,
그렇다고 모든 세속적 욕망을 거세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도를 닦는 것도,
우리에겐 해답이 될 순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영화, 음악, 여행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안락한 집에서 웃고 떠드는 시간을 소망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참 모순된 욕망이죠?
이도 저도 아닌 욕망 같기도 하구요.
하지만 이것이 제가 원하는 신화입니다.
단어로 표현하자면 ‘중용(中庸)’이 되겠네요.
뜻풀이를 잠깐 해보자면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떳떳하고 변함없는 상태]
즉, 한쪽으로 치우쳤음을 인지했다면 반대 방향으로 치우치기 위해 노력하는 삶.
이것이 제가 원하는 신화입니다.
(좀 더 살을 덧붙이자면 중용은 완성될 수 없기에 끝없이 갈망해야 합니다.
중용을 완성하겠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기 때문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 그래 알겠어.
그래서 어떻게 살거냐고.
네. 저는 삶을 드라마틱한 서사의 영화 혹은 반전 영화로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하다고 믿지도 않는 사람이구요.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에서 "우리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일갈했습니다.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미래는 오지 않은 현재 입니다.
오늘 하루가 파멸되면, 내일의 미래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루라는 시간의 벽돌을 잘 만들어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집이 완성 되간다는 신화를 꿈꾸지 않겠습니까?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입니다.
지극히 평범해보이지만 의도적인, 그리고 주체적인 하루의 집적.
저는 그것을 욕망합니다.
흔히 말하는 동기부여 영상의 코멘트 중 하나로 들리신다면 제 글에서 울림을 찾을 수 없는 분이실 겁니다.
필요하시다면 더 이상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 어느정도 가닥이 잡힌 것 같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루를 채워야 할까? 라는 질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이 얘기들은 다음 챕터3,4 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중용(中庸)의 삶을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마지막 챕터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Chapter 3. System 1: Quality Habits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
그는 쾨니히스베르크의 산책길을 매일 오후 3시 30분에 정확히 걸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보고 시계를 맞췄을 정도로 그의 일상은 기계적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숨 막힐 정도의 강박이라 여길지도 모르지만, 저는 좀 다르게 해석됩니다.
칸트는 일상의 잡다한 선택지들을 습관이라는 틀로 자동화시킴으로써
역설적으로 그는 자신의 지적 에너지를 오로지 철학적 사유에 쏟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죠.
즉, 주체적 삶의 선택을 하기 위한 자동화였던 셈 입니다.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영감을 받은 저는 이러한 자동화를 저만의 'system 1'으로 정의할 생각입니다.
이것은 제 중용(中庸)의 첫번째 신화 입니다.
(책에서의 system 1은 좀 더 포괄적인 뜻을 내포합니다)
개중에 양질의 습관으로 불리우는 것들.
그러한 것들을 system 1 으로 만들어두는 삶.
이를 지향하는 것이 제 삶의 신화 중 하나로 여기겠습니다.
다만 임마누엘 칸트와는 다르게 저는 매일이라는 것에 제 습관을 가두고 싶진 않습니다.
자동화를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것. 그것 또한 지나치면 정신적으로 온전할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세상은 단순하지 않으니 말이죠.
갑작스럽게 오늘 하루의 1순위를 갈아끼워야 할 날은 반드시 찾아 오며,
계획된 하루지만 급작스러운 약속 제안 또한 승낙해보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습니다.
생각치 못한 변수가 항상 등장한다는 마음가짐 또한 중용을 추구하는 신화에 내포됩니다.
하루를 채우기 위한 system 1 으로는 다양한 것들이 존재합니다.
집청소
이부자리 정리
가계부 정리
꾸준한 운동
학습 (피아노, 업무관련 지식, 영어, 경제 등)
또한 그 하루 속에서도 틈틈이 만들어두어야 할 system 1 또한 존재합니다.
음식 꼭꼭 씹어 먹기.
양치 디테일하게 하기 + 치실로 잇몸 안까지 청소하기.
걸을 때 목 치켜세우기.
술, 담배 멀리하기.
눈건강을 위해 20분마다 20초씩 눈감기.
꾸준한 심폐지구력 운동.
꾸준한 근력 운동.
허리와 목을 위한 앉은 자세 교정.
틈틈이 스트레칭.
피부 관리를 위한 보습과 자외선 차단.
색상별 채소와 깔끔한 탄단지 섭취.
코로 숨쉬기.
칭찬,격려 등 긍정적인 언어를 의식적으로 사용.
아니 이자식?
참 욕심도 많다!
네 저도 압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한낱 평범한 인간인지라 욕망 덩어리인 것을.
저도 이 모든 것을 내재화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 몸이 성치 못한 시기가 온다면 방청소 같은 작은 일 조차 할 수 없기에,
자신의 신체를 관리하는 건 몹시 중요합니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우리는 좋든 싫든 100세 시대를 맞이 했고
자본이 없다면 오히려 돈으로 하여금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즉, 신체도 자산의 일부이며 관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그렇기에 제가 지향하는 system 1은 굉장히 중요한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양질의 습관들 중 저의 system 1에 넣을 것을 선정하고 그것을 내재화 하기 위해 매일을 반복하는 삶을 지향할 생각입니다.
꾸준한 운동과 좋은 식습관으로 매일을 보내며 자세 교정, 목 스트레칭 등과 같은 사소하지만 아직 갖추지 못한 system 1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제가 chapter 1. 에서 말하고자 하는 Quality Habits 입니다.
Chapter 4. System 2: One Thing
우리는 대부분 둔재(鈍才) 입니다.
아니. 적어도 저는 둔재(鈍才)가 맞습니다.
회사일도 완벽하게 하고,
육아도 훌륭하게 해내고,
주체적 사유도 깊이 하면서,
예술적 감각을 키우며,
취미 생활까지 만끽할 순 없습니다.
멀티태스킹은 현대인이 만들어낸 가장 큰 환상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아틀라스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저는 sysyem 2에 비교적 긴 시간지평(3개월~1년+ α)을 부여하고 이에 리소스를 투입하려 합니다.
어떤 시기에는 그 대상이 '지적 탐구'일 수 있겠으며 ‘피아노’, ‘그림‘과 같은 예술 활동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System 1을 통해 비축해 둔 잉여 에너지를 투입할 '단 하나의 대상'을 정하는 것.
이것은 제 중용(中庸)의 두번째 신화 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파도는 예고 없이, 때로는 아주 거대하게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부모님이 병환으로 누우실 수도 있으며, 사랑하는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는 진행 중이던 system 2를 갈아 끼워 부모님이나 아이를 돌보는 것에 리소스를 투입할 생각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생각치 못한 변수가 항상 등장한다는 마음가짐 또한 제 신화에 내포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를 ‘타의에 의한 희생'이나 혹은 '시간 낭비'로 여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는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system 2의 과업이며 ‘자의에 의한 희생’이니 말이죠.
육아를 할 때는 육아가 나의 철학이 되고,
간병을 할 때는 간병이 나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순탄한 라이프 사이클이 찾아오면
저는 다시 배우고 싶었던 책을 펼치고, 쓰고 싶었던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을 생각입니다.
'System 1'은 제가 외적 변수에 무너지지 않기 위한 노력.
'System 2'는 제가 쌓아갈 삶의 궤적.
때로는 멈추어 서서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때로는 무언가에 집중해서 능력을 배양하는 것.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생각의 초점을 옮기되, 그 순간만큼은 온전하게 몰입하는 것.
이것이 카오스 같은 세상 속에서 제가 선택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이상적인 대답입니다.
저는 제 신화를 이렇게 정의하기로 했습니다.
불교에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그 때가 되어야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Chapter 5. 글을 마치며.
해당 사진은 태양계의 움직임을 시각화한 것 입니다. 경제와 역사, 여론은 항상 사이클적입니다.
중용(中庸).
이것은 우주의 법칙 중 하나일까요? 저는 그런 망상을 할 때가 있습니다.
System 1: Quality Habits
System 2: One Thing
로 구분 지어진
이 두 가지 시스템의 조화가 바로 제가 정의하는 '주체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동기부여 영상 따위에서 나오는 말과 같은 방향, 같은 의미일지는 몰라도
남이 정해준 정답지를 맹목적으로 베껴 쓰는 삶보다는
스스로 했던 숙고의 시간 끝에 도달한 삶의 방향.
저는 이 생각이 훨씬 가치 있다고 믿습니다.
끝으로 제가 말했던 제 근간이 되는 신화 '중용(中庸)'
앞서 말씀드린 system 1,2.
이 모든 것들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느낀다면,
반드시 반대 방향을 추구할 생각 입니다.
이성적 에너지가 과해지면 의식적으로 감성적 에너지를 더하고,
감성의 에너지가 과해지면 의식적으로 이성적 에너지를 더하는 삶.
음악, 영화, 만화, 소설, 시, 사랑.
커리어, 재테크, 개인업무처리, 건강관리, 가계부.
이성과 감성을 넘나들며 현재 내가 치우쳐진 영역에서 반대를 추구하는 삶.
이것이 제 삶의 신화 입니다.
그림처럼 이것도 태양계의 법칙일까요?
저는 그렇게 믿으며 살아갈 생각입니다.
이게 내 신화니깐!
이상 글 마칩니다.
[여담]
내년부터
system 1: 식습관 개선
system 2: 개인 커리어 공부
로 설정하고 나아가볼까 합니다.
물론 당장 내일 계획이 바뀔지도 모릅니다.
글빨이 약해서 더 퇴고를 해야 하는데 체력 고갈이 막심하군요.
에라 모르겠다.. 그냥 투고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