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대한 내러티브가 이렇게 이어지는 글은 처음 접해보네요.
인상 깊은 스토리였습니다.
역시 방법론보단 스토리에 끌리는 게 인간인가 봅니다.
제 글도 아닌데 무언가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네요.
퍼즐을 완성한 느낌이랄까요?
좋은 글이라 많은 분들이 보았으면 해서 공유합니다.

노팬티
2026.04.06
조직은 왜 문제를 풀지 못하는가 — 해상도, 주파수, 앵커, 그리고 Palantir
지난 두 달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네 편의 글을 썼습니다.
「Adobe의 펀더멘털이 무너지고 있다고 보는 이유 · AI에 대한 사내 공지를 보고 든 생각 · 사람이 병목이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 집주인 아주머니랑 언성 높이다가 든 생각」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룬 독립된 인사이트처럼 보였겠지만, 사실 이 글들은 처음부터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Palantir Technologies라는 기업에 투자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긴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이 글에 관심이 가신다면, 분량이 꽤 있지만 앞서 올린 글들을 꼭 읽어보시길.. 안그러면 요상한 말들이 나올 것이에요..)
팔란티어라는 기업이 풀려는 문제를 저의 시선으로 설명하려면, 먼저 저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감각 — 일종의 기준 — 을 공유해야 했습니다. [해상도, 주파수, 앵커]라는 개념들은 제가 일하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렌즈입니다. 이 렌즈로 세상을 보기에 팔란티어라는 종목이 눈에 들어온 거고, 이 렌즈에 대한 설명 없이 "팔란티어가 이러저러해서 좋아 보인다"라고만 말하면 그건 결론만 던지는 것이지 설득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각 개념을 하나의 아티클로 풀어 소개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투자가 꼭 숫자와 결합해야만 의미를 갖는다고 보지 않습니다.
기업이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렌즈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재무제표로 보는 렌즈, 멀티플로 보는 렌즈, 산업 구조로 보는 렌즈, 그리고 이 기업이 풀려는 문제의 본질로 보는 렌즈. 어떤 것들은 숫자로 설명이 잘 되고, 어떤 것들은 숫자로 환산하는 순간 왜곡됩니다. 팔란티어는 거의 모든 투자자가 알다시피 Forward P/E 100배 이상, P/S 80배 이상에 달하는 기업입니다. 기존의 숫자 렌즈로는 설명이 안 되는 지경이고, 그래서 대부분의 분석이 "비싸다"와 "그래도 성장이 빠르다" 사이에서 오갑니다. 이 기업을 숫자로 자꾸 환산하려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팔란티어가 풀려는 문제의 깊이를 이해하려면 숫자가 아닌 다른 렌즈가 필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트리거, 목표주가, 시나리오별 밸류에이션을 요구하는 Valley Insights 대회의 포맷으로는 제가 바라보는 이 기업에 대한 생각을 풀어내기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Space에 아티클로 올려봅니다. (상금은 포기한다... 크흡... ㅜㅜ)
1. 찰리 멍거의 거꾸로 생각하기
모든 조직은 Problem Solving을 합니다.
기업은 시장에서 고객의 문제를 풀고, 군대는 전장에서 작전 과제를 풀고, 병원은 환자의 질병이라는 문제를 풀고, 대학은 연구 과제를 풀어내고, 비영리단체는 사회적 과제를 풀어냅니다. 하는 일의 형태는 저마다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모든 조직은 각자가 당면한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조직들은 문제를 풀기 위한 도구를 찾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도입하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컨설턴트를 부르고, AI를 얹습니다. "이 도구를 쓰면 이 문제가 풀린다"라는 마케팅 슬로건을 받아들이고, 도구를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하면 문제가 더 잘 풀릴 거라 기대합니다. 이 접근이 틀린 건 아닙니다. 실제로 많은 문제가 더 좋은 도구로 해결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 방식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급자가 정의한 문제를, 공급자가 제안한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기술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를 IR 자료나 기술 백서의 프레임대로 이해하게 되면, 그 해결책이 진짜로 수요자의 본질적 문제를 건드리는지를 놓칠 수 있습니다. 경제활동의 본질은 수요자에게 가치 있는 것을 공급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인데, 공급자의 시선에서만 생각하면 정작 '수요자가 풀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지, 왜 아직도 그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지'를 보기 어렵습니다.
저는 여기서 찰리 멍거의 사고법을 제안합니다.
Tell me where I'm going to die, so I'll never go there. - Charlie Munger
Inversion thinking — 거꾸로 사고법이라 불리는 이 접근은, 원하는 결과를 직접 추구하는 대신 최악의 결과를 먼저 정의하고 그것을 피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합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를 묻는 대신 "어떻게 하면 반드시 불행해질까?"를 먼저 묻고, 그 요인들을 하나씩 제거합니다.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오답을 제거하는 것. 간단한 발상의 전환이지만 강력한 프레임입니다.
이 사고법을 팔란티어의 고객(수요자) — 즉 모든 형태의 조직 — 에게 적용해봤습니다. "팔란티어의 기술이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고객들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고, 대체 왜 그 문제가 풀리지 않는 걸까"를 먼저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기반으로, 제 경험과 관점에 접근해 봤습니다.
저는 크리에이티브 마케팅 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조직의 프로젝트를 안팎에서 봐왔고,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기업의 구조가 만드는 의사결정의 결과를 몸소 겪어왔습니다. 이 두 가지 경험을 교차시키며 "조직의 문제가 왜 안 풀리는가(의사결정에 왜 병목이 발생하는가)"를 물었고, 그 과정에서 세 가지 구조적 원인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해상도: 같은 대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의 문제
주파수: 조직 위계가 만드는 정보의 왜곡 문제
앵커: 과거의 성공과 방식에 묶인 관성의 문제
이것들은 모두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만드는 변수입니다. 도구가 부족해서 안 풀리는 게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보는 방식, 사람이 소통하는 방식, 사람이 기대고 있는 것'이 문제의 근본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2. 조직이라는 미로
이제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풀어냈던 세 가지 개념을 조직의 관점으로 확장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 1. 해상도 — 같은 대상, 다른 관점 ]
해상도 아티클에서 저는 "AI 사용을 유의합시다"라는 사내 공지 사항이 왜 허술한 말인지를 지적했습니다. '일'이라는 엄청나게 방대한 워크플로우를 단 한 마디로 축약해 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판단의 영역, 정보 수집의 영역, 구조화의 영역, 커뮤니케이션의 영역 — 각각에서 AI가 할 수 있는 일의 성격과 범위가 전혀 다른데, 그 차이를 전부 뭉개버리는 것. 이걸 두고 저는 '해상도가 낮다'고 표현했습니다.
조직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핵심은 단순히 "데이터가 흩어져 있다"라는 게 아닙니다. 각 부서가 같은 대상을 놓고도 자기 관점에서만 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케팅팀의 "캠페인 성과"와 재무팀의 "캠페인 비용"은 같은 대상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마케팅팀은 이 캠페인을 도달률과 인게이지먼트라는 눈금으로 봅니다. 재무팀은 집행 금액과 ROI라는 눈금으로 봅니다. 물류팀에서는 캠페인이 수요를 얼마나 끌어올렸는지를 재고 회전율로 봅니다. 각 부서는 자기 업무를 나름의 높은 해상도로 보고 있지만, 서로 다른 눈금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눈금은 그 부서의 워크플로우 안에서는 완전히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합리적인 눈금들이 부서 경계를 넘는 순간 서로 번역(맥락 공유)이 안 된다는 데 있습니다.
이게 조직 최상단의 의사결정을 직접적으로 왜곡합니다.
CEO가 "이번 분기 마케팅 효율이 어땠나?"라고 물으면, 마케팅 임원은 자기 눈금으로 "역대 최고"라고 보고하고, CFO는 자기 눈금으로 "전 분기 대비 하락"이라고 보고합니다. 같은 캠페인을 두고 상반된 해석이 올라옵니다. CEO는 어느 쪽이 맞는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두 보고가 서로 다른 눈금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보고서는 자기 안에서는 논리적으로 완결되어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조직의 problem solving 자체가 느려집니다.
문제를 정의하는 데서부터 합의가 안 되니, 해결책에 도달하기까지 몇 배의 시간이 걸립니다. 혹은 더 나쁜 경우, 문제의 정의 자체가 잘못된 채로 해결책이 실행됩니다. 진단이 틀리면 치료가 아무리 정교해도 소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 2. 주파수 — 위계가 만드는 어긋남 ]
주파수 아티클에서 저는 메시지에 무게, 빈도, 초점이라는 세 가지 변수가 있고, 이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 이 세 변수가 조직의 위계를 거칠 때마다 악순환의 방향으로 증폭된다는 것입니다.
정보가 한 계층을 지날 때마다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첫째, 그 계층의 입장에 맞게 재편집됩니다.
현장의 미묘한 맥락이 "보고 가능한 형태"로 압축되면서 원래 의도가 희석됩니다.
둘째, 위로 올라갈수록 메시지가 무거워지고 빈도가 떨어집니다.
현장에서는 매일 감지되는 변화가, 두세 단계를 거치면 한 달에 한 번 올라가는 보고서의 한 줄이 됩니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오는 의사결정도 같은 과정을 역방향으로 거칩니다. 결과적으로 발신자의 의도와 수신자의 해석 사이에 구조적인 간극이 생기고, 조직 전체의 alignment가 깨집니다.(전설의 블라인드 글을 아시나요..?)
회사나 조직에서 이런 느낌.. 저만 느끼는 거 아니겠죠..?
Block의 최고 경영자 Jack Dorsey가 본질적인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지난달 Jack Dorsey와 Roelof Botha가 발행한 "From Hierarchy to Intelligence"(번역본) 아티클에서도 같은 문제를 진단합니다. 이들은 조직 위계의 역사를 2천 년 전 로마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위계 구조란 결국 정보를 라우팅하고, 의사결정을 사전 처리하고, 조직 전체의 alignment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시스템이라고 정의합니다. 로마군의 [8명 분대 → 80명 백인대 → 480명 대대 → 5,000명 군단]이라는 구조는, 한 사람이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범위가 3~8명이라는 인간의 한계 위에 세워진 설계였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가 프로이센 참모 체제, 미국 철도 회사의 조직도,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 맥킨지의 매트릭스 조직을 거쳐 지금까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핵심 주장입니다.
Dorsey와 Botha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AI를 기존 구조 위에 copilot으로 얹는 데 그치고 있다. 기존 구조를 약간 더 잘 돌아가게 만들 뿐,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저도 이 진단에 동의합니다. 현재의 위계 구조는 정보 흐름을 느리게 만들고, 사람이라는 변수가 각 계층에서 만드는 왜곡을 구조적으로 증폭시킵니다.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매번 진통제를 처방하는 것처럼, AI를 기존 구조 위에 얹는 것은 증상을 가릴 뿐 원인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원인이 수면 부족과 잘못된 자세에 있다면, 수면 습관을 바꾸고 자세를 교정하는 것이 더 본질적인 접근인 것처럼요.
[ 앵커 — 과거에 묶인 시선 ]
앵커 아티클에서 저는 투자에서의 앵커링 효과 — 처음 접한 숫자에 이후의 판단이 끌려가는 인지편향 — 가 자기 자신에게도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과거에 앵커링 되면 두 가지를 동시에 잃습니다.
하나는 현재를 직시하는 눈입니다.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를 보면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왔으니까"라는 관성이 "지금은 다를 수 있다"라는 신호를 무시하게 만듭니다.
다른 하나는 미래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시야입니다.
과거에 닻을 내린 사람이나 조직은 새로운 시도를 위협으로 인식합니다. 기존 방식이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내려놓는 것이 자기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변화도 감지하지 못하고 미래의 가능성도 탐색하지 못하는 이중의 함정에 빠집니다. 과거라는 앵커가 일종의 감옥이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 그리고 그 감옥은 바깥에서 누가 가둔 게 아니라 자기가 자기를 가두는 것이기에 더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KPI, 과거의 보고 체계, 과거의 성공 방식에 닻을 내리고 "지금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분기마다 올라오는 보고서는 이미 과거의 스냅샷이고, 그 스냅샷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니 항상 반 박자 늦을 수밖에요. 과거에 통했던 프로세스를 고수하면서 현재의 변화와 미래의 가능성을 동시에 놓치는 것입니다.
[ 이 세 가지가 반영되지 않았을 때 ]
Adobe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도비에 원한이 있는 건 아님.. 그저 제일 친숙해서..)
제가 시리즈의 첫 글에서 다뤘던 기업이기도 합니다. 해상도, 주파수, 앵커 문제가 조직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팔란티어의 접근과 대조해 보면, 왜 이 세 가지가 중요한지가 좀 더 선명해집니다.
해상도
컨텐츠 제작 밸류체인은 [기획 → 시각화 → 디자인 → 모션그래픽 → 편집 → 매체 최적화]라는 여러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구간에서 Midjourney, CapCut, Runway, Figma, Meta Advantage+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이건 하나의 큰 위협이 아니라 구간별로 다른 성격의 위협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Adobe는 "Creative Cloud"라는 번들 단위로 이 상황을 바라봅니다. 각 구간의 위협을 충분한 해상도로 쪼개 보지 못하고 뭉뚱그린 채 대응하고 있는 겁니다.
팔란티어의 온톨로지가 하는 일은 정반대입니다 — 조직의 운영을 구간별로, 객체별로 쪼개서 각각의 상태와 관계를 높은 해상도로 볼 수 있게 만듭니다.
주파수
Adobe는 시장(크리에이터, 대행사, 엔터프라이즈)과의 소통 주파수가 어긋나 있습니다. CapCut이나 Canva 사용자들이 조용히 이탈하고 있는데, Adobe의 메시지는 "레코드 매출"입니다. 구독 모델 기업은 해약률이 급등하지 않는 한 매출이 역성장하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무거운 메시지(레코드 매출)가 낮은 빈도(분기 실적)로 전달되니, 구조적 감속이 표면 아래서 진행되고 있어도 감지가 늦어집니다.
팔란티어의 FDE 모델은 고객과의 주파수를 의도적으로 높입니다 — 몇 달간 상주하면서 가볍고, 잦고, 상대 중심인 소통을 통해 조직의 실제 맥락을 파악합니다.
앵커
Adobe는 Creative Suite 독점 시절이라는 과거의 전성기에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프로 툴이다"라는 자기 정의에 앵커링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의 품질 기대치 자체가 하향 이동하고 있다는 현재의 변화를 직시하지 못합니다. 지상파에서 유튜브로, 유튜브에서 숏폼으로, 숏폼에서 AI 생성 컨텐츠로 — 소비자들은 이미 "적당히 좋은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팔란티어의 디지털 트윈은 닻을 현재에 내리게 합니다 — 과거의 보고서가 아닌 지금의 운영 실체를 기반으로 판단하게 만드니까요.
성장률 24% → 15% → 12% → 10% → 9.5%의 궤적이 이 구조적 문제의 재무적 전이를 보여줍니다. 도구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만드는 변수 — 해상도, 주파수, 앵커 — 가 방치되면 이런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제 진짜 놔줄게..
3. 세 가지 문제, 팔란티어의 접근
앞에서 문제의 구조를 정의했으니, 이제 팔란티어가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기술 스펙을 나열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럴 능력이 저에겐 없고, 그저 철저히 제가 정의했던 세 가지 문제 각각에 팔란티어가 대응하는 기술적 접근이 왜 의미 있는지를 설명해 보려 합니다.
[ 해상도 문제 → Ontology ]
팔란티어의 CTO Shyam Sankar는 이 문제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임피던스 불일치(impedance mismatch)
컴퓨터가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행과 열)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객체와 관계) 사이의 근본적 불일치입니다. (출처: Colossus 인터뷰)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ERP에는 숫자가 있고, 사람의 머릿속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재무팀의 스프레드시트에는 "거래처 코드 A-1037, 미수금 47,000,000"이 있고, 영업팀의 머릿속에는 "그 회사 최근에 담당자 바뀌어서 결제가 좀 밀리고 있는데, 내달 대형 계약 발주가 예정되어 있어서 관계 유지가 중요하다"가 있습니다. 같은 거래처를 두고 완전히 다른 해상도로 보고 있는 건데, 이 둘을 연결하는 번역기가 없었습니다.
팔란티어의 온톨로지가 하는 일이 이 번역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핵심 구성요소는 네 가지입니다.
Object Type — 조직 안의 실체를 정의합니다. 공급업체, 창고, 환자, 장비 같은 것들. 전통적 데이터베이스에서는 별도의 테이블에 흩어져 있던 것들을 하나의 의미 있는 객체로 묶습니다.
Property — 각 실체의 속성입니다. 위치, 상태, 수량, 일자 등. 각 부서가 각자의 스프레드시트에 저장하던 정보들이 하나의 Object에 속성으로 연결됩니다.
Link Type — 실체 간 관계를 정의합니다. "이 환자는 이 의사에게 배정되어 있고, 이 약을 처방받고 있다." 테이블 간 외부 키(foreign key)로만 연결되어 있던 것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관계로 표현됩니다.
Action Type — 이 데이터를 어떻게 수정할 수 있는지의 비즈니스 로직입니다. "재고가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 발주를 트리거 한다" 같은 의사결정 규칙이 데이터와 함께 살아 움직입니다.
Sankar는 이걸 "점묘화(pointillist painting)"에 비유합니다.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 Georges Seurat
흩어진 점들 하나하나는 의미가 없지만, 올바른 위치에 배치되면 하나의 응집된 그림이 됩니다. 온톨로지는 조직의 흩어진 데이터를 실제 세계의 객체와 관계로 재배치해서, 어느 부서에 있든, 어느 직급에 있든, 같은 그림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해상도 문제의 핵심이 "같은 대상을 놓고 서로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면, 온톨로지는 그 관점들을 하나의 공유된 체계로 통합합니다.
사실 지난 아티클에서 저도 비슷한 일을 했다고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수십 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의 브랜드필름 프로젝트에서 전환점이 된 건, 전체 사업 구조를 한 장의 시각 자료로 펼쳐놓은 순간이었습니다. 각 계열사가 전체 그림 안에서 자기 위치를 직관적으로 보게 되자, "왜 우리가 빠졌나"라는 불만이 "전체 구조에서 우리 역할은 이거구나"라는 이해로 바뀌었습니다.
이걸 온톨로지의 구성요소로 보면,
Object Type = 각 계열사
Property = 산업군과 전략적 위치
Link = 계열사 간 관계
Action = "이 계열사를 영상에 포함할 것인가"라는 의사결정 로직
그저 저는 파워포인트 한 장으로 했고, 팔란티어는 이걸 기업 전체의 운영 데이터 위에 소프트웨어로 구축한 것입니다.
[ 주파수 문제 → FDE ]
팔란티어를 비판하는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아마 Michael Burry일 겁니다.
"Big Short"로 유명한 그는 2026년 초, 16,000단어에 달하는 매도 보고서("Palantir's New Clothes: Foundry, AIP, & the Failure of Reason")를 발행하면서 팔란티어를 정면으로 공격했습니다. 그의 핵심 비판 중 하나가 바로 FDE(Forward Deployed Engineer) 모델입니다.
Burry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FDE가 고객사에 상주하며 시스템을 수동으로 커스터마이징하는 구조는 소프트웨어 기업이 아니라 컨설팅 회사의 모델이다. 전직 FDE의 증언을 인용하며 "Foundry는 교육을 받아야 쓸 수 있고, 그 이후에도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고, 팔란티어의 69배 P/S 멀티플을 컨설팅 기업의 2~3배 멀티플과 대비시키며 시장이 팔란티어를 잘못 분류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Alex Karp CEO가 해외 시장 진출이 어렵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봐라, bandwidth 문제라고 했다. 이건 컨설팅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출처: Yahoo Finance)
Burry의 비판에서 인정할 부분은 먼저 인정해 봅니다. FDE 모델이 확장성의 제약이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고객이 늘면 FDE도 늘어야 하고, 이건 순수 SaaS의 "배포하면 끝" 모델과 다릅니다.
하지만 저는 Burry의 핵심 전제가 틀렸다고 봅니다.
그가 FDE를 Salesforce 컨설턴트와 동일시하는 순간, 이미 문제의 본질을 놓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는 범용 기능을 팔고, 고객이 알아서 자기 조직에 맞추게 합니다.
Salesforce 컨설턴트가 하는 일은 이미 정의된 CRM 기능을 고객 환경에 배포하고 설정하는 것입니다. 기능은 이미 있고, 그걸 고객의 인프라에 맞추는 작업입니다. FDE가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 조직 고유의 워크플로우, 의사결정 구조, 부서 간 언어 차이를 파악하고, 그것을 온톨로지라는 체계 안에 녹여내는 것입니다. 이건 소프트웨어 설치가 아니라 번역입니다.
주파수 아티클에서 제가 다뤘던 상황을 다시 소환해 보겠습니다. 그룹의 브랜드필름 프로젝트에서 "브랜드필름"이라는 똑같은 단어를 놓고, 그룹 본사는 "그룹 이미지를 대표하는 영상"으로, 개별 계열사는 "우리 사업부를 소개하는 영상"으로, 임원진은 "주주총회에서 보여줄 자료"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단어 뒤에 세 이해관계자가 전혀 다른 맥락을 담고 있었던 겁니다.
FDE가 하는 일의 본질이 이것입니다.
이해관계자들이 같은 단어 뒤에 숨겨놓고 있는 서로 다른 맥락을 파악하고, 그 차이를 온톨로지 상의 하나의 체계 안에서 정합적으로 표현하는 것. 조직의 암묵지(tacit knowledge)를 코드화하는 작업입니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관점과 언어의 차이를 온톨로지상의 정합된 체계로 만드는 일이기에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오케스트레이션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여기서 역설이 생깁니다.
Burry가 비판하는 바로 그 특성 — FDE를 통한 깊이 있는 구축 과정 — 이 오히려 해자(moat)가 됩니다.
FDE를 통해 구축된 온톨로지는 그 조직의 운영 체계 자체가 되기 때문에 전환 비용이 극도로 높습니다. 컨설팅 회사의 프로젝트는 끝나면 컨설턴트가 떠나지만, 온톨로지는 조직에 남습니다. 고객 순유지율(Net Dollar Retention) 139%가 이를 증명합니다. 기존 고객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쓴다는 뜻입니다.
확장성 문제에 대해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팔란티어는 최근 AI FDE라는 자동화 도구를 도입했는데, 이것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AI FDE가 대체하는 건 인간 FDE의 전부가 아닙니다. 조직의 데이터 소스를 연동하고, 초기 온톨로지 뼈대를 구축하고, 기본적인 오브젝트 매핑을 수행하는 — 즉,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초고속으로 자동화하는 것입니다. CTO Sankar가 "수 년짜리 프로젝트를 5일 만에 구현했다"라고 말한 것은 이 기계적 구축 단계를 가리킵니다. (출처: Q3 2025 Earnings Call)
덕분에 인간 FDE는 데이터 연동이나 초기 세팅 같은 단순 작업에서 벗어나, 부서 간의 진짜 이견을 조율하고, 비즈니스 로직(Action Type)을 고도화하고, 조직 고유의 맥락을 온톨로지에 정교하게 녹여내는 고부가가치 작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뼈대를 세우는 속도는 AI가 끌어올리고, 그 뼈대에 살을 붙이는 깊이는 여전히 인간이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Burry의 "선형적 컨설팅 모델"이라는 비판에 대해, 기계적 레이어는 자동화하되 인간적 레이어는 유지함으로써 확장성과 깊이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팔란티어의 대답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넌 틀렸어.
4. 닻을 현재에 내리는 기술
[ 앵커 문제 → 디지털 트윈 (해상도와 주파수가 합쳐지면) ]
앵커 문제는 해상도, 주파수 문제와 병렬로 두기보다는 둘이 만들어낸 결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온톨로지가 조직의 운영 실체를 높은 해상도로 모델링하고(해상도), FDE가 이해관계자 간의 서로 다른 언어와 워크플로우를 하나의 체계로 정렬하면(주파수),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이 조직의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입니다. 조직 전체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비춰주는 거울.
이게 앵커 문제를 푸는 핵심 구조입니다.
전통적 조직에서 의사결정은 분기별 보고서, 과거 KPI, 지난 분기의 성과를 기준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미 지나간 스냅샷에 닻을 내린 채 현재를 판단하는 겁니다. 디지털 트윈은 이 닻을 현재로 옮깁니다.
Tampa General Hospital의 사례가 이걸 잘 보여줍니다.
전통적으로 환자 상태 정보는 간호사들이 화이트보드에 마커로 적어서 관리했다고 합니다.(의사 선생님덜 진짠가여..) 팔란티어는 이 병원의 전자 의료 기록, 직원 스케줄, 검사 오더 등의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온톨로지에 매핑했습니다. 개별 환자가 어떤 의사에게 배정되어 있고, 어떤 약을 처방받고 있고, 최근 검사 결과가 어떤지가 하나의 체계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온톨로지 기반의 데이터 파이프라인과 예측 알고리즘이 체온, 호흡수, 장기 기능 이상 등 패혈증 기준을 실시간으로 비교 모니터링합니다. 과거의 차트 기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활력 징후를 기반으로 판단하는 겁니다. COVID 델타 파동 당시, 이 시스템을 통해 수백 명의 환자를 패혈증 쇼크에서 구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출처: Colossus 인터뷰)
[ AIP — 해상도가 높아진 조직이 AI를 만났을 때 ]
만약 이런 온톨로지가 깔려 있지 않은 상태에서 LLM을 돌리면 어떻게 될까요?
해상도 아티클에서 제가 말한 "AI 사용을 유의합시다" 수준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LLM은 조직의 데이터 구조를 모르고, 비즈니스 로직을 모르고, 부서 간 맥락 차이를 모릅니다. 그래서 그럴듯하지만, 의미 없는 답변을 생성하겠죠. 그래서 비즈니스 레벨에서의 환각(hallucination)은 LLM의 결함이라기보다, LLM이 조직의 맥락을 모른 채 작동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온톨로지가 깔려 있으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LLM이 조직의 Semantic Layer(Ontology 안에서 의미와 관계를 정의하는 기초 층위)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환각이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고 실제 비즈니스 규칙에 기반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의 핵심입니다.
팔란티어는 자체 LLM을 개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건 의도적 선택입니다.
LLM은 점점 범용화되고 있고, 모델 자체를 훈련하는 건 자본 집약적인 경쟁입니다. 팔란티어는 그 경쟁에 참여하는 대신, 어떤 LLM이든 자사의 온톨로지 위에서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오케스트레이션 레이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Burry는 이걸 "wrapper에 불과하다"고 비판하지만, 저는 다르게 봅니다. LLM 경쟁에서 누가 이기든, 그 LLM이 기업 환경에서 의미 있게 작동하려면 온톨로지가 필요합니다. 모델은 바뀌어도 조직의 Semantic 체계는 남으니까요.
Sankar의 표현을 빌리면: "엔터프라이즈에서 AI의 가치를 실현하려면 LLM, 워크플로우, 소프트웨어의 우아한 통합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온톨로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출처: Sherwood News)
[ Dorsey의 World model과 Palantir의 Ontology ]
앞서 조직의 주파수 문제를 언급하며 Jack Dorsey의 진단을 인용했습니다.
조직의 문제에 대한 Dorsey와 저의 관점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해법의 방향에서 완전히 갈라집니다.
Dorsey도 디지털 트윈과 비슷한 개념을 제안합니다. 그가 "world model"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코드, 의사결정, 워크플로우, 성과 지표를 집계해서 조직의 운영 모습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모델입니다.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이 모델이 하는 일에 대한 관점이 팔란티어와 다릅니다.
Dorsey는 이 모델(world model)이 관리자의 역할을 대체한다고 봅니다.
전통적 회사에서 관리자의 일은 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그 맥락을 상하로 전달하는 것인데, world model이 그 역할을 하면 관리자라는 계층 자체가 필요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회사 Block은 직원의 약 40%(4,000명)를 감축했고, 이를 "영구적 구조 재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람을 줄이고 위계 자체를 제거하는 해법입니다. 그는 조직을 세 가지 역할로 단순화합니다: 시스템을 만드는 Individual Contributor, 문제를 책임지는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 사람을 육성하면서도 실무를 겸하는 Player-Coach. 전통적 중간 관리자가 하던 정보 라우팅, alignment 유지, 상태 보고는 AI가 대신합니다.
반면, 팔란티어는 이 모델(Ontology)이 사람의 의사결정을 돕는다고 봅니다.
모든 계층의 사람이 같은 운영 실체를 기반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더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것. Colossus 인터뷰에서 온톨로지의 목표가 "조직이 스스로를 더 선명하게 보고,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더 빠르고 좋은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된 부분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사람을 빼는 것(Block)과 사람을 정렬하는 것(Palantir). 이 차이가 두 접근을 가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두 회사가 다루는 현실의 복잡도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Block은 핀테크 기업입니다. 다루는 대상이 코드, 트랜잭션, 디지털 데이터입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업무의 거의 전부가 이미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위계를 제거하고 AI가 조율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팔란티어의 고객을 생각해 보면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군대, 거대 병원 시스템, 다국적 제조업체, 에너지 인프라 — 이들은 물리적 자산, 인명, 복잡한 규제, 지정학적 변수를 다룹니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위험합니다. 잘못된 판단이 사람의 생명이나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영역이니까요.
제 입장은 "누가 맞을지 모른다"입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합니다. 디지털 세계에 존재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에게는 Dorsey의 접근이 정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물리적 현실, 사람, 복잡한 밸류체인을 다루는 전통적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는 사람을 빼는 게 아니라 사람을 정렬하는 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방향일 수 있습니다. 팔란티어는 바로 그 지점 — 복잡한 현실 세계를 정렬하는 것 — 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5. 55분의 시간, 그리고 살아있는 사진
아인슈타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55분은 문제를 생각하는 데 쓰고, 5분은 해결책을 생각하는 데 쓸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문제점을 뾰족하게 정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미겠죠.
대부분의 기업이 AI라는 해결책을 기존 구조 위에 얹는 데 시간을 쓰는 동안, 팔란티어는 그 55분 — 진짜 문제가 뭔지를 정의하는 일 — 에 20년을 투자해 왔습니다. 해상도를 높이고, 주파수를 맞추고, 닻을 현재에 내리는 것. 이것이 이 기업이 온톨로지라는 접근으로 풀려는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저는 이 방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현장에서 수많은 기업의 엉킨 실타래를 마주하며 배운 교훈도 결국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소통할 것인가(해결책)'를 백 번 고민하는 것보다, '지금 모두가 서로 다른 그림을 보고 있다(문제 정의)'라는 사실 자체를 직시하고 이를 하나의 뷰(View)로 합의하는 작업이 핵심이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인지의 단절 하나를 풀었을 때, 파생되어 있던 소통의 병목과 과거의 관성들이 연쇄적으로 해소되는 도미노를 저는 경험해 보았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소개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Andreas Gursky - Chicago Board of Trade III (홈페이지에 들어가 클릭해서 크게 보시기를 권합니다.)
독일의 사진작가 Andreas Gursky의 작품입니다. (UPS 글 타이틀 사진도 이 작가 사진.. 제목은 Amazon.. ㅎㅎ)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Trading Floor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사진인데, 처음 보면 화면을 가득 채운 점들의 추상적인 패턴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점들 하나하나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판단으로 매수하고, 매도하고, 소리치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트레이더들입니다. 각자는 자기 앞의 화면과 자기 옆의 동료에게 고도로 집중하고 있어서, 자신이 전체 그림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는 보지 못하겠죠.
Gursky는 그 전체 그림을 보여줍니다.
작가는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 붙이는 작업을 통해 개별 트레이더의 표정까지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높은 해상도를 유지하면서도, 한 발 물러서서 시스템 전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동시에 드러냅니다. 부분과 전체가 한 장의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것이죠.
저는 팔란티어의 온톨로지가 하려는 일이,
'조직의 데이터 위에서 실시간으로 살아 숨쉬며 움직이는 Gursky의 사진'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트레이딩 플로어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하되, 그 안의 사람 하나하나가 식별될 만큼의 해상도를 유지하는 것. Jack Dorsey의 Block처럼 사람을 한낱 점으로 환원하거나 위계를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전체 안에서 어디에 있는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도록 정렬(Alignment)하는 것입니다. 조직이 당면한 문제를 이렇게 뾰족하게 정의할 수 있다면, AI라는 해결책은 그제야 비로소 제대로 작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 Epilogue: 숫자에 대한 짧은 첨언 ]
이 글에서 밸류에이션을 다루지 않은 것에 대해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기존의 SaaS 멀티플로 이 기업의 현재 가격이 설명되지 않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팔란티어를 전통적 SaaS 기업에 적용하는 잣대가 아니라, 조직의 운영 체계 자체에 깊이 뿌리내리는 '인프라 기업'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온톨로지가 한 번 깔렸을 때 발생하는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의 무서운 깊이, 그리고 AI FDE를 통해 기계적 구축 속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면서도 인간적 통찰은 유지하는 비즈니스 확장 구조 — 이것이 현재의 아찔한 멀티플이 요구하는 미래 성장률을 향후 어떻게 방어해 낼 수 있을지가 제가 추적하고 있는 '진짜 지표'입니다.
Palantir가 최종적으로 시장의 승자가 될지 제가 어찌알까요..?
그래도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감각으로 솔직하게 고민하고 도달한 결론을 기록하고 나누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isclaimer: 본 글은 개인적인 투자 관점이며,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필자는 본 글 작성 시점 기준 PLTR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