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ené Magritte, The Son of Man (Le fils de l'homme), 1964, oil on canvas
미지의 시민 (The Unknown Citizen) (1939)
W. H. 오든 (W. H. Auden)
He was found by the Bureau of Statistics to be
One against whom there was no official complaint,
And all the reports on his conduct agree
That, in the modern sense of an old-fashioned word, he was a saint,
For in everything he did he served the Greater Community.
Except for the War till the day he retired
He worked in a factory and never got fired,
But satisfied his employers, Fudge Motors Inc.
Yet he wasn't a scab or odd in his views,
For his Union reports that he paid his dues,
(Our report on his Union shows it was sound)
And our Social Psychology workers found
That he was popular with his mates and liked a drink.
The Press are convinced that he bought a paper every day
And that his reactions to advertisements were normal in every way.
Policies taken out in his name prove that he was fully insured,
And his Health-card shows he was once in a hospital but left it cured.
Both Producers Research and High-Grade Living declare
He was fully sensible to the advantages of the Instalment Plan
And had everything necessary to the Modern Man,
A phonograph, a radio, a car and a frigidaire.
Our researchers into Public Opinion are content
That he held the proper opinions for the time of year;
When there was peace, he was for peace: when there was war, he went.
He was married and added five children to the population,
Which our Eugenist says was the right number for a parent of his generation.
And our teachers report that he never interfered with their education.
Was he free? Was he happy? The question is absurd:
Had anything been wrong, we should certainly have heard.
그는 통계국에 의해 밝혀졌다그에 대해선 어떤 공식적인 불평도 없었다는 것,
현대인에 대한 모든 보고서들도 그가
성자였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모든 면에서 우리 사회에 이바지한 성자.
그가 한 모든 일은 대공동체를 위한 것이었고
전쟁 때 빼고는 은퇴할 때까지
공장에서 일하면서 한 번도 해고당하지 않았고
고용주 퍼지 자동차회사를 만족시켰다.
그렇다고 별난 견해를 가졌거나 따돌림당한 것도 아니다,
그가 조합비를 꼬박꼬박 냈다는 게 조합의 보고다
(그의 조합에 대한 우리의 보고는 그것이 건전한 단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사회심리학 연구가들은 그가
동료들에게 인기가 있었고 술도 좋아했다는 걸 알아냈다.
언론기관은 그가 매일 신문을 샀고
광고에 대한 그의 반응도 모든 점에서 정상이었다고 확신한다.
그의 이름으로 든 보험증권들은 그가 완전히 보험에 들었음을 증명하며
의료보험 카드는 한때 입원했으나 완치 퇴원했음을 보여준다.
생산자 조사부와 고급 생활부는 둘 다
그가 할부 판매 제도의 이점을 완전히 인식했으며
현대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
축음기, 라디오, 자동차, 냉장고를 갖고 있었다고 단언한다.
우리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그가
그때그때 적절한 의견을 가졌다는 데 만족한다.
평화시에는 평화를 원했고, 전시에는 싸우러 갔다.
그는 결혼하여 아내에게 다섯 아이를 더해주었는데,
우리 우생학자가 말하는 꼭 알맞은 숫자였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교육에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가 자유로웠는가? 행복했는가? 그런 질문은 터무니없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더라면 우리는 틀림없이 알았을 것이다.
제3장: 금융 판옵티콘: 디지털 감시와 현대판 추방
"보이는 것은 덫이다."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2022년 2월, 캐나다 오타와. 영하의 추위 속에서 '자유 호송대'라 불리는 트럭 운전사들이 코로나19 백신 의무화에 반대하며 수도를 점거했다. 전 세계가 이 시위를 주목하는 가운데, 캐나다 정부는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비상사태법 발동했다.
그러나 정부가 동원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경찰봉이나 최루탄이 아니었다. 그것은 훨씬 더 조용하고, 빠르고,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정부는 은행들에게 시위 참가자뿐만 아니라 소액을 기부한 평범한 시민들의 계좌까지 법원의 명령 없이 즉각 동결하도록 지시했다.
순식간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예금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다. 식료품을 사거나 월세를 내는 등 기본적인 생계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그들은 물리적으로 체포되지는 않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금융 인프라에서 추방당했다. 이것은 '디지털 추방'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편리함이라는 명목하에 진행된 금융의 디지털화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역사상 가장 완벽한 감시 및 통제 시스템을 완성해왔다. 그리고 이 시스템은 국가가 원할 때 언제든지 개인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장은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금융의 디지털화는 어떻게 국가-화폐 복합체를 전방위적인 감시 및 통제 기구로 변모시켰으며, 이것이 개인의 자유와 실존에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나의 주장은 이렇다. 디지털 금융 시스템은 미셸 푸코가 분석했던 감시의 원리를 완벽하게 구현한 '금융 판옵티콘'이다. 이 구조는 쇼샤나 주보프가 규명한 '감시 자본주의'의 논리와 결합하여 국가와 기업 간의 '주권자-추출자 복합체'를 형성했다. 그리고 이 권력의 궁극적인 무기는 금융 디플랫포밍을 통해 개인의 '권리를 가질 권리'(한나 아렌트)를 박탈하는 능력에 있다.
1. 전지적 시점: 금융 판옵티콘의 아키텍처와 규율 권력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이상적인 감옥 '판옵티콘'을 설계했다. 중앙의 감시탑과 그것을 둘러싼 원형의 감방 구조. 핵심은 감시의 비대칭성이다. 감시자는 모든 죄수를 볼 수 있지만, 죄수는 감시자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끊임없는 감시의 가능성은 죄수로 하여금 스스로를 검열하고 규율하게 만든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이 판옵티콘을 근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