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전달력을 위해 말투를 편안하게 합니다. 편하게 보세요.
해당 시리즈는 valley ai 의 필진 선정으로 작성하게 된 글 입니다. 다른 작가님들 글에도 많관부.
태블릿, 노트북으로 보기 편한 글을 작성합니다.
쉽게 상처받는 성격이니 반박은 '둥글게' 댓글 부탁합니다.
원래 장문 글을 씁니다. 스크랩 해두고 편할 때 보세요.
재밌거나 유익했으면 추천 오네가이시마스.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이 글을 클릭해주신 여러분
그리고 스스로를 다그쳐서 강제로 공부를 하고 글 쓸 수 있게 만들어주신 뉴로퓨전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땡큐 땡큐 덕분에 암 쏘 햅삐
결혼 준비하랴, 이직 준비하랴, 회사 적응하랴, 건강 챙기랴, 강아지 산책해주랴, 자격증 공부하랴, 새로 산 책들 읽으랴, 책쓰랴,다이어트 시작에 아주 그냥 벌려놓은 건 많은데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는 저에게 좋은 기회를 주셨으니 응당 최선을 다하는게 인지상정이라 봅니다.
모든 글을 진심펀치 한다는 마음으로 빚어내 보겠습니다.
바로 시작해봅시다.
나의 인생 만화 나루토


썸네일 용 움짤 / 나루토 사스케 싸움 수준 실화냐? 진짜 가슴이 웅장해진다..
님들 혹시 만화 좋아함? 나는 참 좋아함.
이번 주제는 만화임. 왜 굳이 만화로 시작하느냐? 한다면

그야, 재밌으니까..!
농담이구요.
테토남 답게 결론부터 박고 시작하자면
만화여도 '어떻게 바라보느냐' 에 따라서 꽤 좋은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임.
그리고 엔터 산업을 이해하는데 너무 좋은 교보재가 있음.
만화는 재미를 위해 희생하는 부분도 많지만 담고 있는 내용의 가치가 높을 때도 많음.
그래서 '야 만화책도 책이냐 ㅋㅋ?' 한다면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그렇다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음.
물론 학창시절 독후감으로 '데스노트' 독후감 적었다가 줄빠따 맞은 거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음.
그래서 내 인생 만화 중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시작해 볼까함.
만화로 보면 쉬울거고, 유익함은 내가 불어넣으면 되는거니까.
어쨌든
내가 오타쿠 인 걸 거르고 생각해보더라도
최근 N년 중 2025년도가 유달리 일본 애니메이션 쪽 폼이 예사롭지 않은 거 같음.
참고로 다음 주제는 애니플러스 이대로 괜찮은가? 임
작년에는 티켓값 압박에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볼만한 작품들도 제법 있었는데
애니메이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거 몇 개만 꼽아보라고 한다면
1번은 귀멸의 칼날 무한성

2번은 체인소맨 레제편

돈 값한다 그죠?
이렇게 두 개 인 듯 함.
귀멸의 칼날은 한국에서도 500만명 이상 보는 기염을 토했으니 센세이셔널 했다고 봐야하고
체인소맨도 340만명이나 보았으니 굉장한 기록이라 생각됨. 나도 참 재밌게 봤음.
요새는 시대가 변해서 그런가 소년 만화 하면 앞서 언급한 두 개와
주술 회전인가 까지 포함해서 요즘은 귀,주,톱 3강 체제로 구성된다고들 하던데
귀멸의 칼날, 주술 회전, 체인소맨 이렇게 3개
물론 3개 다 그럭저럭 재밌긴 했으나, 나도 이제 나이를 먹다보니
나의 어릴적 시대를 풍미했던 것들이 더 좋아보임.
소위 말해서 라떼는 말이야를 하고 싶은 그런 짬이 되었음.

늙어간다는 증거 아니겠음.
떼잉 쯧쯧쯧 소년 만화란 자고로,,, 하면서 말 한마디 얹고 싶어지는 거 같음.
그래서 말 한마디 얹어보고자 함.
내 학창시절 소년 만화는 원나블이였음.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이렇게 세 개를 합쳐서 3대장이였음.
굳이 굳이 따지자면 어릴적 내 마음속 1등 만화는 사실 블리치였음.
돌잡이 때 돈이나 연필을 잡지 않고, 가오를 잡았을 거 같은 애들이 많이 나오는 만화였기 때문.

근데 또 그 나름의 꼬롬한 맛이 일품이였음.
정보 : 블리치를 한창 읽던 시절 나의 나이는 중2 였다
원피스는 뭐 지금도 현역이니까 알 사람은 많이들 알 거 같고

지금도 그럭 저럭 나쁘지 않은 작품이라 생각하며 재미나게 보고 있음.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3개 중에서 나루토를 가장 안 좋아했었음.
어릴 땐 극성 블리치 덕후여서 나루토는 그닥 재미없었고,
갓 성인이 되어서도 안 좋아했던게
소위 눈깔만화라고 불리며

출처 : 중급닌자 양기철 유튜브
노력을 강조하는 낭만있는 캐릭터들을 후반가서 무쓸모로 만들어버리며
사실상 혈통빨, 재능빨을 내세우는 쓰레기 만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임.
지금도 이런 부분은 매우 아쉽게 느껴질 따름.
그때 당시 금수저, 흙수저라는 단어로 사회가 뜨겁던 시절이였고

결국 유전자, 타고난 부분으로 나루토가 대빵을 먹었으니
불합리한 현실의 축소판을 보여준다고 느꼈었고 오히려 역겨웠음.
근데 30살 가까이 먹어가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나루토는 그리 단순한 만화가 아니였다는 생각이 들었음.
오히려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를 전달하는 [만화로 만든 교양 서적]이라 생각됨.
만화 나루토는 여러 인물들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명확히 존재함.
바로 '증오의 연쇄'와 '사랑' 임.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며 얘기를 시작 해볼까 함.
증오의 연쇄
case 1. 큰 기본틀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설명 할 순 없으니 극도로 간단하게만 가르마 타겠음.
일단 나루토의 세계관은 닌자들이 역사를 쓴다고 보면 됨.

그리고 그 닌자들의 터전이 각종 지형에 맞춰 여러 마을로 나누어져 있음.
얘네가 사이좋게 지내면 참 좋겠으나 박터지게 싸우는 관계임.
왜? 짱 먹고 싶어서 때리는 애들도 있고, 지키기 위해 싸우는 애들도 있고 다양함.
하지만 보통 전쟁 일으키는 놈들은 더 큰 힘을 원해서 일으키곤 했음.
그 힘의 출처는 어딘가? 하면 '미수' 라는 개념이 등장함.

꼬리 갯수에 따라 더더더 강해지는 괴물들이며
9개의 꼬리 달린 애(9미)가 세계관 최강이라고 보면 됨.
어느 날 이유 모를 사건으로 나뭇잎 마을을 9미가 덮쳤고

이 9미라는 녀석이 나루토의 배에 갇히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됨.
나루토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구미 자체가 많은 사상자를 냈고
그 원인이 나루토의 뱃속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을 전체에게 따돌림을 당했음.

부모님도 없어서 기댈 곳 하나 없는 나루토는 유년기부터 기댈곳 하나 없었음.
많은 사람들을 원망할 법도 하지만 나루토는 그러지 않았음.
오히려 마을 최강의 닌자에게 주어지는 '호카게' 라는 칭호를 얻고 스스로 극복해나가려 함.
그렇게 닌자 아카데미를 나오게 되면서 스승도 만나고 빌런들과 맞짱 뜨는 이야기 되시겠음.
case 2. 매력적인 빌런 아카츠키
결론 부터 말하자면
아카츠키는 미수의 힘을 이용해서 세상에 큰 피해를 입히려고 하는 집단임.
근데 얘네가 왜 이런 짓을 하는가? 라는 부분이 상당히 설득력 있음.

님들은 작품성이라는 걸 평가할 때 어떤 부분을 보게 되는 거 같음?
나는 빌런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를 따지는 듯함.
그럼 빌런은 뭔짓해야 매력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얘가 이러는 게 납득이 간다' 싶을 때 매력적인 거 같음.

물론 조커의 사상에 동의한다는 건 아니고, 범죄도시 장첸처럼 이해는 안가도 매력적인 빌런은 있기 마련임.
조커가 이 난리를 떠는게 기괴하면서도
과연 나라고 같은 상황에 처했을때, 이 사람과 달랐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는 거임.
아카츠키도 나한테 그런 존재임.

왼쪽부터 야히코, 나가토, 코난 이렇게 세명의 어린 닌자가 만들게 된 조직인데.
이들의 고향은 상대적 약소국이였던 '비(rain) 마을' 출신임.
덕분에 강대국 사이에 껴서 맨날 전쟁 피해를 보는 그런 지역 출신이였음.
바라지도 않았는데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전쟁고아가 되고,
그런 아픔을 대물림 하지 않고자 평화를 지향하는 자경단 '아카츠키'를 만들었음.
하지만 개인의 이익을 위해 평화를 원하지 않는 집단도 있었고 그런 이들로 인해

가족 같은 친구 야히코까지 잃은 나가토는 이성을 잃어버리게 됨.
끝나지 않는 전쟁. 정의를 표방한 복수. 증오의 굴레.
이 모든 것을 끝내버리고 싶었음.

야히코의 시체를 이용해서 페인 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모두에게 평등한 고통'을 선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되었음.
이는 페인이 나루토의 마을을 박살내고. 그걸 막으러 온 나루토와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음.

페인 : 너의 목적은 무엇이지?
나루토 : 너를 쓰러뜨리고 닌자 세계에 평화를 찾아오는 것이야.

페인 : 멋지군 그것이야 말로 정의다. 하지만 말이다.
나의 마을, 동료를 지금 이 마을과 똑같이 만들었던
너희 나뭇잎 마을 만은 평화와 정의를 말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
너희 나뭇잎 마을 처럼 큰 대국들끼리의 전쟁으로 고통받은 건 항상 나의 나라였다.
너와 나나, 바라는 것은 같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아픔은 누구에게나 같다.
우리는 정의라는 이름의 복수에 사로 잡힌 평범한 인간이다

하지만 말이다.
복수를 정의라고 한다면, 그 정의는 또다른 복수를 낳고 증오의 반복이 시작된다.
진정한 아픔을 온 세상이 알게 하여 그 아픔의 공포로 전쟁을 억제하고
세계를 안정과 평화로 이끄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이 끝나지 않는 증오 속에서, 아픔에 의해 잠시 동안이라도 평화를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램이다.
님들은 페인의 사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함?
나는 솔직히 말해서 페인의 입장에서 충분히 해봄직한 생각이라고 봄.
뭐 예를 들어서 말임.
의외로 사람은 압도적 강자가 되어버리면 약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함.
멀리 갈 거 없이 조금 윗동네 이슈이긴 한데

나는 자폭하면 명복 빌어준다는 편지를 쓴 김정은을 보고 진짜 굉장한 싸패라고 느꼈음.
얘 하나 때문에 수백만명이 피곤하게 살고 있는데 일말의 죄책감 조차 없다는 걸 알게 됨.
아마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있으니 가능한 거겠지.
그렇다면 말임.
내가 북한 주민인데 김정은에게 공감능력을 주입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할 수만 있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각인시켜주는 게 가장 쉬운길이라 생각하지 않을까?
페인의 생각은 간단함.
사람은 내 행동이 상대방에게 줄 아픔과 내 아픔을 동일시 하지 않는다는 거임.
그래서 약소국과 강대국 모두에게 '평등한 고통'을 선사하고
고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알게 된다면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을거라 생각했음.
그걸 이루기 위해서 큰 힘을 원했던 것임.
결국 여차저차해서 나루토와 나가토는 직접 만나게 됨.

이맘 때쯤의 나루토는 아버지 같은 스승도 잃고, 많은 동료들이 죽고,
나가토에 대한 증오심이 극에 달할 때였음.

하지만 나루토는 그들을 죽이려고 하지 않고, 대화와 설득을 선택함.
나가토는 그런 나루토를 이해할 수 없었음.

애초에 서로 의견이 매우 다른데도 대화를 선택한 나루토를 타박했음.


하지만 굽히지 않고 나루토는 증오가 계속되는 저주에 걸린 세상에서
저주를 풀어내고, 평화를 쟁취하겠다고 했음.
사실 이 나루토의 멘트는
나루토의 스승이자 나가토의 스승이기도 한 지라이야가 쓴 책에 있는 대사를 읊은거임.
그리고 그 책은 '나가토'를 보고 지라이야가 쓴 책이였음.





과거의 나가토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평화를 쟁취하는 '방법론' 이 아닌
평화 그 자체를 믿는 행위였던 거임.
자신의 대한 믿음의 부족으로 ,
어느새 많이 변해버린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 큰 허탈함을 느끼게 됨.
그리고, 나가토는 나루토가 평화를 가져다 주리라 믿고
자기가 죽인 사람들을 전부 살려내는 것을 대가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게 됨.

근데 말임. 사실 이상하지 않음?
나루토는 구미와 연관 있다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멸시,고통을 받아왔음.
본인의 잘잘못 여부를 떠나서 상처만 받아왔음에도 마을을 지키는 길을 택하고.
더 나아가, 빌런들 조차도 포용하였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음.
나는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나루토는 증오의 연쇄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라 생각함.
case 3. 증오의 연쇄는 어떻게 극복해야하는 가?

나루토의 인격 형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이루카 라고 할 수 있음.
닌자 아카데미의 교사로서, 나루토를 매우 싫어하던 사람 중 한명이였음.

단순히 배에 구미가 있으니 무섭다 흉하다 이런 영역이 아니라
9미로 인해 부모님을 잃게 된 케이스였음.
그로 인해 매우 강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나루토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었음.
하지만 길을 가다가 우연히 나루토를 보게 됨.

다른 동네 아이들은 시간이 되면 부모님이 데리러 왔지만
나루토는 그저 부러워 하기만 하고 놀이터에 혼자 남겨지는 모습을 보게 됨.
이루카가 느끼기엔 그런 나루토의 모습이 과거의 자신 처럼 비춰 보였음

혼자 남겨져서 부러워하기만 한채 허공을 바라본 적도 있고
너무 외로워서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관심 받고자


일부로 바보 같은 짓, 장난등을 해왔던 것이 겹쳐 보였음.
그러면서 선생으로서 자신이 두렵다는 이유로 ,
나루토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의 학생을 배척했다고 생각하며 자책함.
오히려 고아로서 자기가 가장 잘 알아줄 수 있었음에도 몰라준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낌.

그리고 나루토가 이루카를 가족으로 여기게 된 결정적 계기가 나옴.
아카데미 졸업을 위해 그림자 분신술을 익혀야 했음. 하지만 나루토는 계속 낙방을 함.
이때 옆에서 지켜보던 미츠키 라는 선생이 훈수를 둠.

금지된 인술을 봉인한 두루마리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거기에 있는 술법을 익히면
나루토에게 졸업을 시켜준다는 약을 팜.

나루토는 결국 금지된 술법을 익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루카는
나루토를 구하기 위해 찾아감.
나루토가 이상한 술법을 익히면 졸업시켜준다는 멘트를 친 미즈키로부터
위화감을 느끼자 다량의 수리검이 날아오고,

이루카는 전부 대신 맞아줌.
이루카는 미즈키가 나루토를 이용해 두루마리를 취하려고 한 것을 깨닫고
미즈키를 믿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미즈키는 누가 봐도 수상한 얼굴로
이루카가 나루토가 강해지는 걸 무서워서 그렇게 말한다고 반격.
심지어 이루카는 나루토로 인해 부모를 잃었으니 편들어줄리가 없다고 말함.
나루토는 혼란에 빠졌고 그틈에 미즈키가 공격하였으나

이루카가 대신 맞아줌.
고통스러울 텐데도 이루카는 오히려 나루토에게 사과했음.
자신이 조금만 더 신경 써줬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외롭고 슬펐을텐데도 모른척 해왔어서 미안하다고 말함.
그럼에도 나루토는 사람을 믿지 못하기에 그 상태에서 도망 쳤고,

숨은 채로 미즈키와 이루카의 대치를 살핌.
미즈키는 괴물여우(9미)는 그 두루마리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고
두루마리를 적극 활용할거다 라고 말했고,
이루카는 '그건 괴물 여우는 그렇겠지만 나루토는 다르다'
그리고 '나루토는 내가 인정하는 우수한 학생이다' 라고 받아침.

살면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신뢰에 나루토는 이루카를 따르게 되고

그림자 분신술을 익혀 이루카를 구해내게 됨.
이후에도 이루카는 나루토의 가족으로서 꾸준히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며
꾸준히 형으로서 역할을 다하다가
마지막에는

나루토의 결혼식 때 아버지로서 참가하게 되었음.
어떰? 나루토에게 용서와 사랑을 가르쳐준 어른인 이루카의 이야기임.
이루카는 나루토에게 있어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화해와 관용을 베풀었던 첫번째 어른임.
이런 경험들이 있었기에 나루토도 자신의 고통을 마주보고도 화해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임.
이렇게 보니까 나루토는 단순한 눈깔만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음?
오히려 상대방의 아픔도 이해해주고 서로 보듬어 주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함.
작가는 증오의 연쇄를 끊는 방법에 대해서
힘들더라도 고통을 마주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용서도 해보기도 하고
자신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을 이해해보려고 노력도 하는
사랑을 실천해보며 살면 좋지 않을까?
라는 방식으로 나름의 해결책을 만화로 녹여서 그린 것이 아닐까 싶음.
그리고 실제로도 유효한 조언이라 생각하는 편임.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현실 사례를 가져와서 얘기해 볼까함.
현실의 혐오
case1. 혐오의 사례
현실에서도 혐오나 증오의 연쇄의 사례는 생각보다 찾아보기 쉬운 거 같음.
요새는 좀 과거 대비 덜해진 거 같긴한데

2030 세대에서는 성별 갈등이 극에 달하던 시기도 지나간지 얼마 안됐고.
사실 요새는 내가 인터넷 망령 생활을 하지 않아 체감이 안되는 걸 수도 있음.
요새는 트렌드가 또 스케일이 커져서 그런가
단순 성별 갈등, 이념 갈등을 넘어서 세대 갈등으로 적당히 잘 확산되는 중임.
멀리 갈 거 없이 최근에도 영포티라는 표현이
대한민국을 휩쓸었으니 혐오는 다양한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 되고 있는 거 같음.

예시일 뿐 사진의 내용에 동의하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영포티, 586, MZ, 극우, 극좌 등 특정 집단을 싸잡아서 프레임화 하는 모든 용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상 깊은 사례들은 상당히 많으나, 그래도
최근 N년간 있었던 혐오 관련 이슈 중 가장 이찌방으로 인상 깊었던 걸 말하자면
나는 모 여자 대학교 이슈가 가장 기억에 남음.

출처 : 블라인드
본인 학교에 락카칠을 하는 경우는 뻥 안치고 살면서 처음봐가지고, 뇌리에 강하게 박혔었음.
일단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진짜 조금만 축약해서 가르마 타보면

2024년 11월 5일
매주 화욜마다 열리는 교무회의에서 간단하게 '남녀공학' 전환 얘기가 나왔음
공식 안건은 아니였으며 단순히 말이 나왔던 상황이였음.
2024년 11월 7일
커뮤니티 등에서 해당 대학이 남녀 공학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고,
총학생회 측이 대학 본부에 문의한 결과 논의가 발의되긴 했으나 공식 안건은 아니라고 대답.
총학생회는 남녀 공학 전환에 반대한다는 입장문을 냄.
2024년 11월 11일
재학생들 사이에서 공학 전환 결정을 학교 측에서 독단적으로 내린 상태라는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하였고, 재학생들의 남녀 공학화에 반대하는 시위 발생.

출처 : 채널A 뉴스
근조화환 행렬이 이어지기도 하고, 과잠을 전시하거나, 대자보를 붙이는 등
일반적인 시위 행위가 시작되었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여기까지는 '상식적이다' 라고 느꼈음.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상황이고 서로 오해만 잘 풀어도 괜찮은 상황이였음.
멀리 갈 거 없이 23년도에만 해도 경북대학교에서 금오공대와 통합을 하려고 하자

출처 : MBC뉴스
경북대생들이 과잠을 전시하면서 시위를 했고 화제가 되면서
결국 통합이 무산 됐던 선례도 마침 있던 상황이니
재학생들이 학교일에 관심갖고 목소리를 내는 행위만 놓고 본다면 여기까지는 잘했다 생각함.
2024년 11월 12일 ~~~ ing
근데 여기서 일부 재학생들의 기행이 시작되었음.
학교의 여러 시설들을 무단 점거하는가 하면,

여성 교육 발전에 이바지 한 공로로 1982년 교육공로포상 동백장을 받은 전적이 있던
전 이사장의 흉상을 훼손하기도 하고

학생들을 위해 구성된 취업 박람회장을 고의적으로 난장판으로 만들기도 하고
당연히 취업 박람회에 참석하는 기업들의 인사팀 직원들도 입장하지 못했음.

출처 : 한국 경제
졸업 공연을 해야하는 학생들을 위해 음대 교수님이 무릎 꿇고 빌었으나
오히려 조롱을 하기도 하는 화려한 전적을 보여주며
많은 여론이 등을 돌리게 만들었었음.
배려심 있는 시위를 부탁하는 재학생의 요청에도


적어도 공연해야 하는 학생들은 나가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분쟁에 의도치 않게 휘말려 고통을 받는..
시위에 배려가 왜 필요하냐며 조롱으로 대답하는 재학생들도 많았으며
게다가, 총학생회가 총회를 열고 공학 전환에 대한 찬반 투표를 실시했는데

투표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순 거수 투표를 해놓고
"봐라 대부분이 반대하지 않느냐' 라고 선동하였으니.
그 모습을 본 여론은
반동 분자를 색출하는 과정이 아니냐 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음.

출처 : 경향신문
그런 상황에서, '민주'OO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쓰면서
자신들의 편인 사람들에겐 응원해주되, 조금만 반대되는 사람들의 의견은 과감히 묵살시키는 행태가 민주주의를 참칭(僭稱)한다고 느껴졌음. 오히려 마치 중국의 홍위병을 보는 듯 했음.
잘 모르면 문화대혁명에 대해서 검색하면 정보가 많습니다.
그렇게 정치권도 섞이고 판이 점점 커지나~ 싶을때
굉장히 큰 국가적 이슈가 따로 생겨서 살짝 조용해진 이슈가 됨.
뭐 어찌되었든 최근 근황만 이제 간단히 정리하자면
1. 결국 학교는 몇몇 학생들을 특정해서 53억원의 손배 청구를 하려고 했고
2. 정부의 압박 (종합감사 카드 언급) 등으로 인해 고소 취하
3. 25년 12월 3일 29년도 부터 남녀공학으로 전환한다고 발표
4. 다시 들끓는 분위기 on
이런식으로 정리되어가는 분위기임.
그래서 뭐, 이런 현상이 옳다 그르다 이런 논쟁을 펼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이런 비이성적인 것 처럼 보이는 현실의 혐오는 왜 일어나는 걸까 생각해보면 좋을 듯 함.
더 나아가서 전문가들이 말하는 해결법도 말임.
case2. 혐오는 왜 생기는 걸까?
혐오가 왜 생기는지,
저렇게 화가나서 행동하는 학생들은 왜 그러는지, 심리가 너무너무 궁금했기에
여러 방면으로 정보를 찾아보다가
재밌는 시각이 있어서 공유하고자 함.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권위에 살짝 기대볼까 함.
진화학자 장대익 교수님의 강연과 각종 다큐를 참고했음.
장대익 교수님 말로는,
혐오라는 게 큰 담론이 될 정도로
스케일이 커진 것은 팬데믹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함.

출처 :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실제로 사회심리학 연구에서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는 큐(위험신호)만 줘도, 그런 기사만 읽게 해줘도
외국인, 노인, 심지어 비만인, 타집단, 다른 인종 등에 대한 민감도가 올라간다는 연구도 있음.


실제로 코로나 처음 터졌을때를 생각해보면,
중국인들이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는 여론이 한국에서 거셌음.
물론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임.
그렇다고 자연스럽다는 얘기가 차별에 '당위성' 을 부여하는 것이 아님.
그저 사람의 심리 메커니즘이 그렇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할 뿐임.
병원균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있는 사람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에 대한 경계가 높아지는 것은
어찌보면
방어 목적의 자연스러운 혐오
라고도 할 수 있음. 진화적으로 이득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임.
우리의 조상들은 동물의 사체를 보거나 썩거나 냄새나는 것이 있을때 회피를 선택해왔음.
애초에 호기심 갖고 먹은 녀석들은 조상이 되지도 못했기도 하고
혐오와 회피를 선택한 자들이 살아남았는데 진화로 인해 이 본능은 알고리즘화 되었음.
그 알고리즘을 행동면역계라고 학계에서 부른다고 함.

인간 진화 역사의 99% 라고 불리는 수렵&채집기에 길러진 뇌를
지금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관점으로 본다면 달리 방법이 없는 부분인 것임.
물론 이 부분은 펜데믹 상황만 놓고 생각하는 것이고.
최근 인터넷 세상은 조금 사유가 다르다고 함.

나의 성향과 나의 과거의 경험에 맞춰서 내가 '선호할만한' 아이템을
유튜브나 틱톡등의 플랫폼들이 알고리즘을 통해 추천해주는 세상임.
그리고 그 알고리즘은 '내가 옳다! 우리가 맞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끼리만 만나게 하고

이를 에코 챔버 라고도 얘기하기도 함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타자, 타 집단에 대해서
차별하고, 혐오하는 것이 따라오게 되어 있음.
이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컨탠츠 'The Social Dilemma' 라는 다큐에서도 나오는데

정보 : The social Dilemma 라는 다큐는 실리콘 벨리에 있던 최고의 엔지니어 임원들이 주인공으로 나옴.
좋은 의도로 개발하고 발명했던 것들이 실제로 통계로 까보니 청소년 자살률, 어른의 정신건강 악화,
우울증이 늘어나게 하는 원인이 되었는데. 우리는 과연 책임이 없는가? 를 주제로 만들어진 다큐임.
넷플릭스 니들이라고 다를 거 같냐 라는 반응도 많았던 작품임.
혐오가 늘어나고 있는 세상에서 미디어의 세계로 인해
더 혐오와 갈등이 부추겨지는 상황이 되었다는 경고를 하기도 했음.
문제는 모든 게 인터넷을 기반으로 글로벌리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혐오감 만으로는 살아나갈 수가 없다는 것임.
그럼 이 혐오의 세상 속에서 좋은 해결책은 뭘까?
case3. 혐오는 해결책은 정말로 공감인 걸까.
살다보면 이런 멘트 한번쯤은 들어봤을 수도 있음.

공감은 지능이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파격적인 멘트라고 생각함.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면서
그만큼 공감의 중요성을 일깨우려는 듯한 느낌이 있는 멘트였음.
물론 공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음.
하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