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AI로 인해 개인 투자가 무의미해질 것인가?
AI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투자도 AI가 더 잘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주제는 매우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화두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인간의 본성과 비효율성의 본질을 따져봤을 때 1) 적어도 현 LLM 패러다임에서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 것이고, 2) 현 LLM 패러다임을 넘어 그런 세상이 왔다면 이미 이 모든 논의는 무의미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당위성으로 따지자면 기술 발전에 따라 해가 갈수록 시장은 점점 효율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2017년의 시장에 비해 2021년의 시장이 효율적이었을까요? 정반대였습니다. 2010년대 이후 주가가 우상향만 하고 패시브 지수로 자금 흐름이 이어짐에 따라 헤지펀드들은 초과수익을 내기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한 때 2-20 (2% 운용수수료, 20% 성과수수료)의 업계 기준이 1-10, 1-15까지 낮아졌죠.
그런데 2020년 COVID 사태 이후 신규 투자자들이 대거 편입되면서 온갖 비효율성이 난무하였고, 그에 비례해 초과수익이 넘치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초과수익이란 다른 누군가의 비이성적 실수에 기인해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저는 미래에 기술이 더 발전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비이성적 행위가 과연 줄어들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오히려 지금 흐름은 그 반대 방향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AI 기술이 점점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의 AI 의존도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MIT 연구진이 몇달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GPT를 장시간 사용할 경우, 두뇌활동과 사고력이 저하된다고 합니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그렇기 때문에 놀랍지 않습니다. 거기에 더 많은 사람들은 쇼츠나 쇼핑, SNS의 추천 알고리즘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사람들은 사고의 하향평준화 뿐만 아니라 절제력의 하향평준화도 겪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얼마 전 올린 톡의 가정대로 AI흐름이 점점 노동소득을 대체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자본소득에 집착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패시브 주가지수 수익률로는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힘들어지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점입니다. 자본소득을 위해 확률적 우위와 절제의 우위를 확보하는 게 점점 중요한 시기인데, 사람들은 반대로 사고력과 절제를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흐름 속에서 만약 기본 소득제라는 사회적 안전망까지 생겨난다면? 매달 기본 소득을 받을 때마다 도박하러 가듯 시장으로 달려가는 세태 속에서, COVID 직후보다 훨씬 더 많은 초과수익 기회가 넘치는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비효율성의 크기로 따지면, 과거에 비해 미래에 점점 더 많은 시장의 비효율성이 있을 것이라 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다음으로 따져봐야할 것은, 그 비효율성이 누구에게 갈 것인가입니다. 기술 발전은 승자 독식의 측면이 있고, 지금 퀀트/트레이딩 영역을 보면 과거에 비해 소수의 퀀트 펀드, HFT 펌들이 더 많은 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과연 가치투자와 매크로 분석과 같이 정성적이고 연역적 추론이 요구되는 영역까지 일부 AI Native 회사들에 의해 독식될 것인가? 하지만 저는 본 글을 시작할 때 "적어도 현 LLM 패러다임에서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퀀트 HFT 트레이딩 영역이 승자 독식의 기조로 가는 이유를 들여다 보겠습니다. 먼저 틱 단위에서는 호가창 정보와 오더 플로우를 통해 어느 정도 높은 확률로 다음 틱을 예측할 수 있고, 그 예측에는 대단한 AI 알고리즘이 요구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틱 단위 비효율성은 크기가 크지 않습니다. 즉, 자금 수용력(Capacity)가 매우 낮은 것입니다. 다음 틱을 예측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그 수익 기회는 한정되어 있으니, 자본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속도가 매우 중요해지고, 속도가 빠른 사람이 많은 기회를 독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틱을 예측하는 영역과 가치투자나 매크로 분석과 같은 정성적이고, 연역적 추론이 요구되는, 시간 지평도 중장기인 영역에서 미래 기업가치나 매크로 이벤트를 예측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집니다. 그 이유를 수십 가지 댈 수 있지만, 거두절미하고 저는 지금의 LLM 방식의 추론으로는 불가능하다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번 양보해서 AI가 미래 이벤트를 더 잘 추론한다고 가정을 해 보겠습니다. 이 가정 하에서는 두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소수만 AI를 통해 미래 이벤트를 더 잘 예측할 경우
이 시나리오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인 동시에, 지금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시나리오기도 합니다. 지금도 여러 계량적인 모델을 동원하는, 시장의 누군가는 대다수의 군중에 비해 미래 이벤트를 더 잘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수만 AI를 통해 미래 이벤트를 더 잘 예측한다 하더라도, 그 소수가 초과수익을 독식할 수는 없습니다.
'소수'가 어느 정도 소수냐에 따라서도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HFT의 영역에서는 한번의 수익 기회의 자금수용력이 작아서, 하나의 펀드가 그 기회를 독식함과 동시에 즉각적인 수익 실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치투자나 매크로 같은 중장기 영역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수가 적정가치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어도, 다수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굉장히 긴 기간 동안 가격은 적정가치에 수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밸류업 이니셔티브 이전의 코스피 시장이 좋은 예시라 할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GME 사태도 하나의 예시입니다)
일련의 가치투자자들이 행동주의 투자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본인들이 적정가치를 잘 추정한다 해도, 세상을 설득하지 않는 이상 그 저평가된 기회에서 수익 실현을 할 수 없거나, 하더라도 시간 가치를 감안하면 평이한 수익률이 되어버립니다. 비효율성은 비효율성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부를 안겨주는 것이지, 비효율성 그 자체로 부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런 부분들을 감안하면, 소수가 AI/퀀트 역량으로 Capacity가 낮은 퀀트 영역에서 수익을 버는 것은 가능해도, 소수가 가치투자나 매크로 영역에서 부를 독점한다는 것은 성립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는 개인도 얼마든지 분석을 통해 엣지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틱 단위 영역에서는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지만, 중장기 투자에서는 저평가된 기업에 올라타는 등수가 1등이 아니라 10만등 쯤 되더라도 충분히 초과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다수가 AI를 통해 미래 이벤트를 더 잘 예측할 경우
첫번째보다는 두번째 시나리오가 더 가능성이 높다 생각하는데, 다수가 AI를 통해 미래 이벤트를 더 잘 예측할 경우, 지금보다 시장이 효율적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기업 A에 대해 새로운 이벤트가 등장하게 되면, 수많은 AI들이 그 이벤트의 발생에 따른 합리적인 적정가치 기댓값을 계산하여 매매를 하게 되므로, 순식간에 가격은 새로운 효율적 가격을 향해 움직일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은 수학 문제처럼 정해진 답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참여자 간의 역학에 따라 물고 물리듯 순환하는 곳입니다. 다수가 그렇게 '합리적 추론'을 하는 비슷한 모델을 활용할 경우, 그 AI가 매 순간 완벽하게 미래를 추론하는 것이 아닌 이상, 포지션 쏠림으로 인해 오버슈팅과 급격한 Flash Crash식 폭락을 매우 주기적으로 겪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면 누군가는 AI를 활용해 그러한 쏠림에 기반해 초과수익을 낼 것입니다.
이는 결은 다르지만 소로스의 재귀성 개념과도 연관됩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다수가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하면 그로 인해 미래가 변합니다. 금융 시장은 참여자들의 상호 작용이 즉각적으로 반영되는 곳인 만큼, 시장이 초과수익을 주지 않는 어떠한 Equilibrium에 고정되리라 상상하기는 힘듭니다.
결국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래의 금융시장은 AI를 활용한 각양각색의 알고리즘들이 각축적이 벌어지는 환경이 될 것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조용히 각자의 페이스로 좋은 타구가 들어올 시점만 기다렸다가 방망이를 휘두르면 될 것입니다. (이런 담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이 빠지는 함정은, "AI vs 인간" 처럼 무언가 이분법적인 구도로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실제 시장은 숱하게 많은 AI들과 숱하게 많은 인간들이 벌이는 Free For All 식 각축전임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미래 예측력을 더 높여줄 것임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리고 주식 가격이 매 이벤트마다 적정가치에 끊임없이 수렴하는 것과 같은 극단적인 미래가 아닐지라도, 꾸준히 AI로 더 나은 예측을 하려고 노력하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에 대해 확률적 우위를 가져가면서, 장기적으로는 초과수익을 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AI를 쓰는 인간이 AI를 쓰지 않는 인간을 대체하는 구도지,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구도는 아닐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러니 중장기 투자의 영역에서는 결국 연역적 추론과 사고력이 계속해서 열쇠가 될 것이고, 앞으로의 세계는 사고력에 의해 본인의 암묵적인 계급마저 정해지는 세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어 보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어폐가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재미로 봐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