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버블, 새로운 부의 지도





배경:
19세기 말·20세기 초 남북 전쟁이 끝나며 남부의 노예제가 폐지 되며 노예인구가 노동력을 창출하고,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있던 남부의 땅을 재건하며 미국에서는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특히 남북전쟁 이후 유럽이 전쟁과정을 거치며 퇴보하는 사이 미국은 자본축적·인프라 확충으로 부상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에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며 증시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며 불안정한 상태 유지했고, 재난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다량의 정책 자금이 흘러들어옴.
당시 국제 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기관은 영국에 있었으며, 보험금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대규모의 금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당시는 금 본위제 사회로 금 유출을 막기 위해 영국이 금리를 올리는 결정을 함.
사건 전개:
미국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오토 하인즈가 유나이티드 구리 회사 주가 조작을 진행 했으나 실패함. 시장에서 이 소식을 접하자 오토하인즈와 연관된 은행에서 뱅크런이 진행됐다. 금융 시장의 불신과 불안감이 증폭되며 시장 전체로 뱅크런이 가속화 됐다.
위기 대응: 당시 거대은행가인 J.P. Morgan 이 중심이 돼 금융기관들 간 협의를 이끌었고, 공적·사적 금융 협력 메커니즘이 작동해 시장 신뢰 회복에 기여했다.
시사점: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간 괴리, 그리고 금융시장의 레버리지 확대가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소수 금융기관의 위기가 전체 금융시스템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점.
제도적 신뢰·시장 규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
배경:
1990년대 동아시아(태국, 인도네시아, 한국 등)에서는 외환시장 개방, 자본자유화, 고정환율제 등이 동시에 도입되었다. 외국 자본이 유입되면서 부동산·금융시장 중심으로 급격히 자산가격이 상승했다.
사건 전개:
1997년 태국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기업실적이 악화되면서 외국자금이 빠져나갔지만, 태국 정부는 해외 자본 유입을 위해 금리를 높인채 바트화를 고평가했다. 그러자 외환시장에서 헤지펀드가 바트화를 공격했고, 태국 정부는 고정 환율제에서 변동 환율제로 전환하며 외환위기가 본격화 됐다. 이 외환 위기는 주변 인도네시아, 한국까지 퍼졌다.
위기 영향: 한국 뿐 아니라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금융·부동산·환율 등 복합 리스크의 영향을 받았다. 위기의 파급 속도가 매우 빨랐고, 한 나라의 위기가 지역 전체로 번지는 특징이 있었다.
시사점:
외국 자본 유입이 항상 순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유입된 자본이 실물경제와 결합되지 않을 때 거품화될 수 있다.
⚖️ 거시경제 정책 트릴레마. 즉, 한 나라의 경제정책이 다음 세 가지 중에서 동시에 가질 수 있는 것은 둘뿐이며, 셋 모두는 불가능하다는 원리
자본 이동의 자유 (Capital Mobility)
독립적인 통화정책 (Monetary Policy Independence)
환율 안정(고정환율제) (Exchange Rate Stability)
배경:
2000년대 초반 세계화 과정에서 성장한 신흥국들이 벌어들인 대규모 자금을 미국에 다시 빌려주며 미국엔 자금이 넘쳐났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를 겪고 저축의 미덕을 중시하는 경향이 생김.) 이렇게 흘러온 자금이 미국의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부동산 버블을 일으킴.
부시 정권 집권 시기 초당적인 합의로 "빈곤층도 집을 소유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