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m Hunter - Woman Reading a Possession Order)
들어가며..
안녕하세요. 2026년을 맞아 Valley Space에 '시 평론과 강독'이라는 주제로 시리즈를 연재하게 된 tolo라고 합니다. 지원하신 분들 중에 워낙 쟁쟁한 분들이 많으셔서 물 건너갔구나 싶었는데, 돌아보니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무심코 지나치듯 제 글을 아껴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그동안 미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저를 선택해 주신 분들과 뉴로퓨전의 모든 관계자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정확히는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고민하던 와중에 Tom Hunter라는 작가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군가 문학을 이 글로 시작한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어야 할까. 나에게 처음으로 문학을 알려준 어머니를 찾아갔습니다.
저는 기억도 못 하는 오래전 이야기로 여쭈니, 자신은 책을 좋아하지 않고 책 이름도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이에게 세상을 읽어주는 마음은 기억이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 그렇구나.
언젠가 고바야시 히데오의 저서<비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구절을 읽으며 비평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내려놓게 된 순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비평이라는 말을 들으면, 판단이라든가 이성이라든가 냉안이라든가 하는 단어를 떠올리지만, 그와 동시에 애정이라든가 감동을 비평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비평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훌륭한 비평의 자질이 제가 가질 마음은 허를 찌르듯 번뜩이는 사고력도, 냉정한 평론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시리즈를 연재하는 마음이 까마득한 어린 날 저에게 어머니가 문학을 선물하던 마음이길 빕니다.
시론, 시를 밀어내는 마음
사실 투자 커뮤니티에 시 평론을 올리기에 제가 가진 시에 대한 사유는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시를 전공한 전공자도 아니며, 그렇다고 오랫동안 글을 써온 시인이나 평론가도 아닙니다. 그리고 연재를 하며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본질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시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인 해체에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대신 인문학의 텍스트(Text)에서 어떻게 통찰을 뽑아내고 그것을 삶의 기반으로 삼는지를 논하고자 합니다.
말하자면 이 시리즈는 단순히 시를 평론하고 강독하며 '시'라는 한정된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시를 시작으로 삶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논쟁들을 시인과 문답하며 변증법적으로 대화하며 풀어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시인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은 통념(endoxa)인 사랑, 이별, 삶, 죽음, 신, 진리 등 삶에서 필요한 다양한 인문학적 사유들입니다. 즉 우리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며 그것을 옹호하고 때로는 반론하며 자신만의 사유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 시리즈의 목표입니다.
그러니 저희가 집중해야 할 요소는 단순히 시를 넘어, 세상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시인들이 세상에 뱉어 놓은 통념(endoxa)을 이해하는 일입니다. 더 정확히는 하이데거가 이야기하는 빈말, 사물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말하는 대로 옮기는 것을 뚫고나와 격발하는 일입니다.
때문에 가끔은 시를 작성한 시인의 의도와 결별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며, 해석을 위해 시의 모든 부분을 끌고 와야 할 때도 있고 시의 문장을 토막 내서 삶에 대한 통찰로 끌어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수영 시인의 <시여, 침을 뱉어라>의 문장을 인용하면 제가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마음을 엿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