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부국강병' 원툴이 아니다.
유달리 한국에서 성행하는 이야기 중에 강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담론이 있습니다. 한국의 과거를 생각했을 때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세상을 이해할 때 가장 자주 빠지는 오류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강한 나라'라기 보다는 '가치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첫 시간에는 이 이야기를 먼저 해볼까 합니다.
1. 왜 우리는 '체급'의 함정에 빠지는가?

독일이 약속을 깨고 벨기에를 공격했음을 규탄하고 입대할 것을 권유하는 당시의 영국 포스터
1914년 8월 4일 새벽, 독일군은 벨기에 국경을 넘었습니다. 작은 나라 벨기에는 독일군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독일군은 벨기에군의 10배가 넘었고, 군사력으로 비교하면 게임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가혹한 정글의 논리라면 여기서 끝입니다. 약육강식,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런던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국 의회가 긴급 소집되었고, 격론 끝에 영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영국이 참전한 명분 중 하나는 바로 "벨기에의 중립 침해"였습니다. 1839년 런던 조약으로 영국을 포함한 열강들이 벨기에의 영세중립을 보장했고, 독일이 그 약속을 깬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영국은 왜 벨기에를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을까요? 벨기에가 강해서? 아닙니다. 벨기에가 영국의 오랜 동맹이어서? 그것도 아닙니다. 벨기에가 영국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해서? 역시 아닙니다.
영국이 참전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벨기에의 중립이 무너지면 독일이 프랑스를 빠르게 제압할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유럽 대륙 전체가 독일의 손에 넘어갈 판이었습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1839년 조약을 지키지 않으면 영국의 약속 자체가 휴지 조각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벨기에는 단순한 약소국이 아니라, 열강의 보장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 있는 연결된 나라였습니다. 벨기에를 건드리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침공이 아니라 보장국 전체에 대한 도전이 되는 구조였습니다.
마피아 게임으로 치면 처형 비용이 너무 높았던 것입니다.
반대편의 이야기: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은 나라
이제 시간을 20년만 당겨 1894년으로 돌려봅시다. 그해 여름, 조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조선 조정은 무기력해 농민운동을 진압하지 못했고, 항상 하던대로 상국 청에 군대 파병을 요청했고, 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했습니다. 그러자 같은 날 일본도 군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두 달 후 청일전쟁이 터졌습니다. 전쟁터는 조선 땅이었습니다.
조선은 약했습니다. 그런데 벨기에도 약했습니다. 둘 다 강대국들의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벨기에가 침공당했을 때 영국이 달려왔지만, 조선이 전쟁터가 되었을 때 아무도 조선을 위해 싸우지 않았습니다. 1882년 조선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던 미국도, 조선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말했던 러시아도, 심지어 수백 년간 조선을 속국으로 여겼던 청조차도 조선의 생존 자체를 위해서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선이라는 땅을 두고 싸웠을 뿐, 조선이라는 국가를 위해 싸운 게 아니었습니다.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이준·이상설·이위종이 특사로 갔을 때, 그들은 회의장 출입조차 거부당했습니다. 국제사회는 조선의 호소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3년 후인 1910년, 조선은 지도에서 사라졌습니다.
벨기에와 조선, 무엇이 달랐을까요? 군사력? 둘 다 약했습니다. 경제력? 오히려 조선이 더 큰 나라였습니다. 차이는 연결이었습니다. 벨기에는 열강의 보장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 있었고, 조선은 밖에 있었습니다. 벨기에를 침공하면 여러 나라가 손해를 봤고, 조선이 사라져도 아무도 큰 손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체급의 역설: 가장 강한 제국의 몰락
이제 더 극적인 사례를 봅시다. 16세기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강한 나라였습니다.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스페인 보병은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를 생포했습니다. 당대 유럽 최고의 기사들이 스페인의 테르시오 방진 앞에서 형편없이 무너졌습니다. 신대륙에서는 금과 은이 쏟아져 들어왔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혼인 동맹으로 스페인·네덜란드·이탈리아·신성로마제국(지금의 독일)이 하나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643년 로크루아 전투에서 스페인군은 프랑스에게 참패했습니다. 150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테르시오가 무너진 순간이었습니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 전쟁이 끝났을 때, 스페인은 더 이상 유럽의 패권국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스페인군이 약해졌나요? 아닙니다. 1643년 로크루아 전투 때도 스페인 보병은 여전히 정예였습니다. 신대륙의 은도 여전히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무너졌을까요?
답은 고립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 추기경은 가톨릭 추기경이면서도 신교 세력을 지원해 스페인을 포위했습니다. 스페인이 가톨릭 정통성을 외치는 동안, 리슐리외는 "스페인을 고립시키는 연합"을 만들었습니다. 스페인은 금융에서 신용을 잃었고, 동맹에서 버림받았고, 해상로가 차단되었습니다. 가장 강했던 제국이 고립된 거인이 되어 무너진 것입니다.
체급이 크다고 안전한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체급이 클수록 더 많은 연결이 필요했고, 그 연결이 끊기는 순간 거대한 무게가 오히려 침몰을 앞당겼습니다.
악당의 생존술: 처형 비용을 올리는 방법
마지막으로 현재를 봅시다. 1990년대 북한은 무너질 것이 자명해 보였습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고, 1990년대 후반 대기근으로 수십만에서 수백만이 굶어 죽었습니다. 당시 전문가들 대부분은 북한 체제가 5년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2025년 현재, 북한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어떻게 버틴 걸까요?
북한은 조선이 하지 못한 것을 했습니다. "우리를 살려달라"가 아니라 "우리가 죽으면 너희도 다친다"를 증명한 것입니다. 핵과 미사일로 처형 비용을 올렸고, 회색 네트워크를 통해 '없으면 곤란한 역할'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군수품이 필요한 러시아에게 다시 '필요한 조각'이 되었습니다.
마피아 게임에서 소위 '빌런'은 시민들의 호감을 얻지 못합니다. 하지만 '없으면 곤란한 역할'을 맡으면 쉽게 처형되지 않습니다. 북한은 선량한 시민이 되려 하지 않고, '연결된 악당'이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도덕적으로 찬양할 수 없지만, 생존의 문법은 명확합니다.
정글이 아니라 마피아 게임
이런 이야기를 놓고 이번 시간에 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떤 패턴입니다.
벨기에는 약했지만 보장 네트워크 안에 있어서 살아남았습니다. 조선은 약했고 네트워크 밖에 있어서 사라졌습니다. 스페인은 강했지만 고립되어 무너졌습니다. 북한은 약하지만 처형 비용을 올려 버텼습니다.
국제정치를 정글로 상상하면 이 네 가지 사례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정글의 논리라면 벨기에는 살아남을 수 없었고, 스페인은 무너질 이유가 없었고, 북한은 진작 사라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국제세계는 단순히 힘자랑 차력쇼가 아니라 인싸와 아싸를 가르는 무도회에 가깝습니다.
(1) 평판 - 누가 믿을 만한가? 스페인은 채무불이행을 반복하며 평판을 잃었습니다.
(2) 연합 - 누가 누구 편인가? 조선은 청, 러시아, 일본 사이에서 줄을 바꾸며 불확실한 플레이어가 되었습니다.
(3) 투표권 - 누가 판을 움직일 지분이 있는가? 벨기에는 열강의 보장 네트워크에 들어가 있었고, 조선은 배제되었습니다.
(4) 처형 비용 - 쟤를 죽이면 우리도 다치는가? 북한은 핵으로 이 비용을 올렸고, 조선은 끝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정글에서는 힘이 곧 질서입니다. 하지만 마피아 게임에서는 힘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 그 연결이 얼마나 대체 불가능한지, 당신을 제거할 때 다른 플레이어들이 어떤 손해를 보는지입니다.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되는 세 가지 사례
이제 우리는 세 개의 극명한 사례를 들여다볼 것입니다. 조선의 쇠망사, 스페인의 몰락, 북한의 생존술. 이 세 이야기는 시대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생각해볼 여지는 충분합니다.
"누구는 누구와 친구이고 왜 친구인가?, 어떤 이해관계가 서로 겹치고 다른가?"
조선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해 버려졌습니다. 스페인은 이 질문을 잊고 고립되어 무너졌습니다. 북한은 이 질문에 가장 거칠고 불편한 방식으로 답해 버텼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사례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명확합니다. 국제정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 아닙니다. 마피아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게임에서 살아남는 법은, 근육을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연결을 설계하고, 처형 비용을 만들고, 판을 제대로 읽는 것입니다.
2. 조선의 쇠망사: "누가 우리 편인가"를 끝내 증명하지 못한 나라

운요호 사건을 그린 일본 우키요에
1876년, 강화도 앞바다에 일본 군함이 나타났을 때 조선 조정이 받아들인 건 단순한 조약 한 장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이후 조선은 더 이상 "중화의 질서"라는 오래된 우산 아래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비를 맞기 시작했다는 사실보다, 비가 내리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조선 조정은 여전히 세계를 "상전과 속국"의 언어로 읽었습니다. 누군가를 제대로 모시면 보호받을 수 있고, 의리를 지키면 위기가 닥쳤을 때 손을 내밀어줄 거라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바깥 세계는 이미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보호는 의리가 아니라 계약의 결과였고, 계약은 상대에게 주는 이익과 비용으로 평가되었습니다.
마피아 게임으로 치면 "저는 착한 시민입니다"라고 호소한다고 사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살려두는 편이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 서야 사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거중조정의 환상: 미국이라는 새 후견인
1882년 5월 22일, 조선은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습니다. 조약 제1관에는 "만약 타국이 불공평하게 혹은 억압적으로 행동한다면, 타방은 통지를 접수한 후 원만한 조치를 취하여 우호를 표한다"는 문구가 들어갔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거중조정(居中調停)' 조항입니다.
조선 조정은 이 문구에 상당한 기대를 걸었습니다. 청의 간섭이 심해지고 일본의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강대국이 "우리 편"이 되어줄 거라는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오늘날 한미상호방위조약과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습니다. 상호방위조약이 "무력 공격 시 각자 헌법절차에 따라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구체적이고 강제성 있는 약속이라면, 거중조정 조항은 "선의로 중재 노력을 해보겠다"는 정도의 느슨한 합의에 가까웠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법적 구속력 있는 조약이 아니라 양해각서(MOU) 수준이었던 것입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미국은 조선을 위해 청이나 일본과 충돌할 의사가 전혀 없었습니다. 미국의 시야에서 조선은 막대한 안보 비용을 감수할 정도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조선은 자신이 어떤 항로를 제공하는지, 어떤 시장을 열어주는지, 어떤 전략적 가치를 지니는지를 설계해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조약 체결 직후 미국 초대 공사 루시어스 푸트가 서울에 도착했지만, 그의 임무는 조선의 안보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통상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조선은 "구해줘야 할 친구"가 아니라, "얽히면 귀찮아지는 문제"로 서서히 분류되기 시작합니다.
플레이어가 아니라 말이 되다
그 불길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