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과 사색의 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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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과 사색
2026.03.28

AI시대에 이런 글은 너무 귀하고 아마 아무리 발전해도 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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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팬티
2026.03.28

사람이 병목이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대한민국3대진미홍진미채 대표님이 써주신 「AI 에이전트 단상들」이라는 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사람이 병목이다. AI가 코드를 순식간에 짜오는데, 그걸 리뷰하고 다시 지시하는 인간의 시간이 가장 느린 구간이라는 뜻입니다. 글은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은 도구가 아니라 경험과 책임을 내재화하는 관계의 주체, 즉 목적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존재이기 때문에 병목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역시 진미채는 구수하구나..) 깊이 공감했고, 여러 번 곱씹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문장을 조금 다른 맥락에서 체감한 적이 있습니다. AI가 등장하기 전이었고, 이 때의 병목은 인간과 기계 사이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했습니다. 1. 수십 개의 목소리, 하나의 영상 몇 년 전, 계열사가 수십 개가 넘는 대기업 그룹의 브랜드필름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룹 차원의 니즈는 명확했습니다. 신사업들을 중심으로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것. 그런데 막상 프로젝트가 시작되자 상황이 복잡해졌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계열사를 무시할 수는 없고, 모든 계열사를 담으면 영상이 끝없이 길어지고, 하나라도 빠뜨리면 빠진 계열사에서는 불만이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그 모든 목소리를 수용하면 전통 산업의 비중이 커져서 애초의 '미래지향'이라는 목적이 흐려졌고요.. 그리고 그 각각의 입장은 하나하나가 다 일리가 있었습니다. 틀린 의견은 없었습니다. 다만 전부 맞는 의견을 하나의 영상 안에 우겨넣는 것이 불가능했을 뿐입니다. 해결할 수 없는 고리처럼 보였습니다. 그룹 담당자도 곤란해했고,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처음에 저는 이걸 효율적으로 풀려고 했습니다. 각 계열사의 의견을 한꺼번에 모으고, 정리해서, 깔끔하게 정돈된 보고자료를 만들어서, 한 번에 컨펌을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사이클을 최대한 완결성 있게 만들면 뒤탈이 없을 거라는 판단이었죠. 좋은 의도였습니다. 모두의 시간을 아끼고 싶었고, 깔끔하게 전달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But, 결과는 의도와 달랐습니다. 공들여 올린 보고가 윗선의 한 마디에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이미 다 합의했다고 생각한 것들이 무색하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여러 번 찾아왔습니다. 이런 큰 조직에서는 당연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건 엎어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온도가 변해가는 것이었습니다. 담당자들은 점점 "우리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긴 한 건가?"라는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고, 회의에서는 열띤 토론이 사라지고, "네 알겠습니다."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분들도 의도적으로 등을 돌린 건 아니었을 겁니다. "우린 원래 그래왔다.", "어쩔 수 없는거다."는 무기력이 고개를 들었을 뿐입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제가 마주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저도, 계열사 담당자들도, 윗선도 각자의 위치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다만 소통의 구조가 서로를 어긋나게 만들고 있었던 겁니다. 2. 메시지의 주파수 그 경험을 계기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되었는데, 메시지에는 세 가지 변수가 있다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무게 — 가볍거나 무겁거나. 빈도 — 잦거나 드물거나. 초점 — 상대방의 입장에 가깝거나, 나의 입장에 가깝거나. 이 셋은 독립적이지 않습니다.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고, 하나가 움직이면 나머지도 따라 움직입니다. 빈도가 높으면 한 번에 담을 내용이 적어지니 메시지가 가벼워지고, 가벼우니까 상대의 맥락까지 살필 여유가 생깁니다. 반대로 빈도가 낮으면 한 번에 담아야 할 내용이 많아지니 무게가 올라가고, 무거우니까 내 정리를 전달하는 데 급급해져서 초점이 나에게로 쏠립니다. 저는 이걸 '주파수'라는 단어로 묶어봅니다. 가볍고, 잦고, 상대 중심인 소통 = 높은 주파수. 무겁고, 드물고, 내 중심인 소통 = 낮은 주파수. 그렇다면 높은 주파수가 더 효과적이라는 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왜 우리는 자꾸 낮은 주파수 쪽으로 기울게 될까요? 저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효율에 대한 착각입니다. 우리는 "한 번에 깔끔하게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느낍니다. 미완성 단계에서 공유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심지어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까지 생각하죠. 그래서 의견을 최대한 모으고, 논리를 다듬고, 빈틈없는 보고서를 만들어서 한 방에 끝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한 방'을 준비하는 사이에 상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고,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고, 불확실성은 불신이 되고, 불신은 거리가 됩니다. 효율을 추구했는데 비효율을 만든 겁니다. 둘째, 완벽주의의 함정입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됐으니까", "좀 더 다듬어서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이 소통의 타이밍을 계속 미루게 만듭니다. 완벽하게 정리한 다음에 말하겠다는 의도 자체는 좋지만, 상대방은 완벽한 결론을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자기 의견이 반영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을 뿐입니다. 완벽을 기다리는 동안 놓치는 건 정보가 아니라 신뢰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결국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압력'입니다. 중요한 건, 이 압력은 어느 한쪽에만 쌓이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전달하는 쪽에는 "이걸 어떻게 정리해서 한 번에 전달하지?"라는 부담이 쌓이고, 기다리는 쪽에는 불확실성이 쌓입니다. 양쪽 모두 선의로 행동하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전달하는 쪽은 더 잘 정리해서, 더 완성도 높게 전달하고 싶어서 빈도를 줄이고, 기다리는 쪽은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기다립니다. 그런데 바로 그 서로의 선의가 소통의 간격을 벌리고, 간격이 벌어진 만큼 양쪽 모두에게 압력이 쌓입니다. 그리고 이 압력이 임계점을 넘으면, 양쪽 모두 자신들도 모르는 채 멀어져 있는 상태가 됩니다. 어느 한쪽이 화가 나서 등을 돌린 게 아닙니다. 누가 잘못해서 관계가 틀어진 것도 아닙니다. 다만 주파수가 안 맞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느 순간 돌아보면 서로가 생각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겁니다. 이게 부딪히는 것보다 아쉬운 이유는, 부딪히면 적어도 서로가 같은 자리에 있다는 뜻이지만, 자신도 모르게 멀어진 뒤에는 다시 가까워지기 위해 처음보다 훨씬 큰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십 개의 계열사가 얽힌 프로젝트에서 제가 목격한 것이 정확히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효율을 위해 소통의 빈도를 줄였고, 줄인 만큼 한 번의 무게는 올라갔고, 내 관점에서 깔끔하게 정리하려 했으니 초점은 자연스레 나에게 맞춰졌습니다. 전형적인 낮은 주파수 상태. 각 담당자들도 나름의 판단으로 한 발 물러서 있었을 거고, 윗선도 주어진 정보 안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 했을 겁니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구조가 모두를 어긋나게 만들었습니다. 3. 주파수를 높인다는 것 전환점은 접근 방식을 바꾸면서 찾아왔습니다. 핵심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완성된 안을 들고 가는 대신, 전체 구조가 한눈에 보이는 시각자료를 먼저 만들었습니다. 그룹의 사업구조를 한 장으로 펼치고, 각 사업별로 미래지향적 목적에 부합하는 요소들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해서 영상에 노출할 건지를 표시했습니다. (자세히 말하긴 뭐함..) 이건 더 잘 만든 보고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소통의 환경을 바꾼 거였습니다. 담당자들이 전체 그림 안에서 자기 위치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가 빠졌나"라는 의문이 "전체 구조에서 우리 역할은 이거구나"라는 이해로 바뀌었습니다. 같은 그림을 함께 보고 있으니,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주는 것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당연히 훨씬 생산적인 피드백이 오갔습니다. 보고의 구조도 바뀌었습니다. 보고자료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들이던 리소스가 줄었고, 꽤 직관적인 계획이 윗선에 전달되니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횟수도 확연히 줄었습니다. 보고를 받는 사람도 맥락이 보이자 판단이 달라졌습니다. 주파수 프레임으로 다시 해석해보면, 빈도를 높였습니다. 완성된 보고서 한 방이 아니라, 미완성 단계의 구조를 먼저 공유하고 반응을 보는 방식으로 바꿨습니다. 무게를 낮췄습니다. 한 번의 소통에 모든 걸 담으려는 부담을 내려놓으니, 각 소통이 가벼워졌습니다. 초점을 상대에게 맞췄습니다. 내 관점에서 정리한 결론을 전달하는 대신, 상대가 스스로 전체 맥락 안에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낀 게 있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따로 실행한 게 아니었습니다. 사업구조도라는 하나의 시각자료가 빈도와 무게와 초점을 동시에 바꿔놓았습니다. 악순환의 고리가 연결되어 있듯이, 해법의 고리도 연결되어 있었던 거죠. 역설적으로, 커뮤니케이션에 시간을 더 쓰니 프로젝트 전체는 더 빨라졌습니다. 효율을 내려놓았더니 효율이 왔습니다. 4. 국밥과 햄버거 이 주파수라는 감각은 비단 보고와 기획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오히려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건 훨씬 일상적인 장면에서입니다. 이런 대규모 영상 제작 현장에서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00명 이상의 스텦이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렇게 대규모 인원을 관리해야 하다 보니, 제작 담당자들은 자연스럽게 '효율'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시간은 빠듯하고, 사람은 많고, 결정해야 할 건 산더미니까요. 한번은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촬영이 저녁 8시가 넘어 끝나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제작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촬영도 곧 끝나고 날씨도 쌀쌀하니까, 마친 다음에 다 같이 국밥 같은걸 제대로 먹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주변 식당도 좀 알아보고, 각 팀에도 여쭤봐서 괜찮으신지 의견을 들어봐." 그런데 제작부 친구들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촬영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뒷정리할 게 많으니 '식당 예약하고 각 팀에 물어보는 과정이 번거롭다, 예산도 더 소진할 수 있으니 햄버거를 시켜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먹도록 하자'는 거였습니다. 거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햄버거를 시킨 신입친구의 선택이 너무 재밌었습니다. 마실 물이 현장에 남아 있으니 콜라는 낭비고, 촬영하면서 들고 다니기 힘드니까 감자튀김도 뺐다는 겁니다. 주어진 프레임 안에서 끝까지 '효율'을 추구한, 나름 완벽하게 합리적인 결정이었습니다! 결과물은 콜라도 감자튀김도 없는 와퍼 한 개... ㅜ 역시나 모든 스텦들의 빈정이 상했습니다. 이른 새벽부터 온몸을 쓰며 일한 사람들에게, 하루의 마무리로 건네진 것이 콜라도 없는 햄버거 한 개였으니까요. 이후 비협조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계획보다 촬영은 오히려 더 길어졌습니다. 상한 감정이 사람과 사람 사이로 전달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훨씬 큰 비효율을 만들어낸 것이죠. 나중에 제작부 친구들은 이걸 "비싼 식사 대신 저렴한 햄버거를 시켜서 생긴 불만"이라고 회고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핵심이 그게 아니라 봤고, 신입친구의 센스를 탓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끝나고 조졌 잘 타일렀습니다..) 그 친구는 주어진 프레임 안에서 가장 논리적인 결정을 내린 거였습니다. 제작부 친구들도 촬영이 원활하게 마무리되기를 당연히 바랬을 테고요. 문제는 특정 누군가의 판단이 아니라, 사람을 변수에서 빼놓은 채 효율만 계산하는 프레임 그 자체에 있었습니다. 그 프레임 안에 들어가면 누구든 같은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고려했던 건 대단한 게 아니었습니다. "다들 고생했는데 어떤 게 좋을지 한번 물어봐"라는 한 마디.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주파수의 문제입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보는 것. 의견을 묻는 아주 가벼운 소통 한 번. 높은 주파수의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이건 촬영 현장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팀에서, 연인 사이에서, 친구 관계에서 — 우리가 '효율적'이라고 믿으며 생략하는 가벼운 한 마디가, 실은 관계의 주파수를 유지하고 있던 핵심이었던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런건 어때?", "이 방향 괜찮아?", "네 생각은?" 같은 질문들. 이 질문들이 비효율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것들이 사라지면 서로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멀어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처음의 목적으로부터 꽤 먼 곳에 와 있습니다. 5. 효율의 시대에 효율이 아닌 것 이전 글에서 저는 자기 일의 해상도를 높이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워크플로우를 쪼개고, 껍데기와 핵심을 분리하고, AI를 도구로 쓸 수 있는 영역의 경계를 냉정히 보자고 했었죠. 그리고 그 글의 끝에서 저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도구는 바뀌어도 이야기꾼은 남는다고.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고 싶습니다. 이야기꾼의 핵심 역량이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있다면, 그 바로 옆에 있는 역량은 '어떻게 전할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이 '어떻게'의 상당 부분은 주파수에 달려 있다고 느낍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드물고 무겁게 전달되면 상대에게 닿기 전에 거리가 생깁니다. 반대로, 아직 완벽하지 않은 이야기라도 가볍게, 자주, 상대의 맥락 위에서 나누면 함께 다듬어갈 수 있습니다. 좋은 의도도, 진심 어린 메시지도,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엉뚱한 곳에 도착합니다. AI가 제작 속도를 당겨줄수록, 일의 전체 과정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집니다. 생산은 빨라졌는데 합의는 빨라지지 않았으니까요. AI가 초안을 1분 만에 뽑아줘도, 그 초안을 두고 사람들의 방향을 맞추는 데는 여전히 며칠이 걸립니다. 병목이 제작에서 소통으로 옮겨간 겁니다. 사실 이건 AI 때문에 새로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예전부터 소통은 늘 병목이었습니다. 다만 제작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에 소통의 병목이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었을 뿐입니다. AI가 제작 시간을 극단적으로 압축하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소통의 병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병목이다"라는 문장을 읽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대한민국3대진미홍진미채 대표님이 말씀하신 맥락에서, 인간은 AI의 작업 루프에서 가장 느린 구간입니다. 저는 거기에 한 줄을 더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인간 사이에서도 가장 느린 구간이다. 그리고 그 느림을 효율로 해결하려 하면 할수록, 목표로부터 조금씩 멀어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효율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빨라지는 시대. 하지만 제가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씨름하고, 여러 현장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읽으며 배운 건 이겁니다. 효율의 진짜 열쇠는 생산 속도가 아니라 사람 사이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었습니다. 주파수를 높인다는 건 더 많이 말하자는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더 가볍게. 더 자주. 상대의 채널에 맞춰서. 그래야 압력이 쌓이기 전에 흐르고, 흘러야 함께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형태의 일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야말로 어떤 도구로도 자동화할 수 없는, 그래서 가장 값진 영역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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