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온건 제국주의자의 발작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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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아빠
2026.02.25조회수 48회
로도스의 거상 세실 로즈

페트로 달러

  1. 1971년 이전까지 세계 경제의 황금률은 '금본위제'였습니다. 35달러를 가져오면 금 1온스를 즉각 교환해 주겠다는 약속이 달러의 가치를 지탱했습니다.

  2. 하지만 베트남 전쟁이 모든 것을 바꿨습니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대기 위해 금 보유량과는 상관없이 달러를 마구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3. 시장은 금방 눈치를 챘습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우방국들이 대량의 달러를 싸 들고 미국으로 몰려와 "약속대로 금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달러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4. 1971년 8월 15일 정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금 태환 중지'를 선언했습니다. 이를 '닉슨 쇼크'라 부르며, 이 순간 달러 가치는 하루아침에 4분의 1토막이 났습니다.

  5. 종이 조각이 될 뻔한 달러를 구한 것은 1973년 11월, 헨리 키신저와 사우디 파이살 국왕의 밀약이었습니다.

  6. 미국은 사우디 왕권을 군사적으로 보호해 주는 대가로, 사우디가 OPEC을 주도하여 '석유 결제를 오직 달러로만'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7. 이때 탄생한 단어가 바로 '페트로 달러'입니다. 세상의 모든 원유를 사려면 반드시 달러가 필요하게 되면서, 달러는 금이 없어도 패권의 지위를 되찾았습니다.

  8. 산유국들이 석유를 팔아 번 달러로 다시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달러의 선순환'이 완성되었고, 미국은 이를 관리하기 위해 SWIFT(국제은행 간 통신협회)를 구축했습니다.

  9. 전 세계 1만 2,000개 금융기관이 가입된 이 망은 원유 결제를 달러로 강제하는 거대한 성벽이 되었으며, 여기서 배제되는 것은 현대 경제 체제에서의 사형 선고와 같았습니다.

  10. 이 견고한 시스템에 대한 저항은 1901년 이란에서부터 시작된 아주 오래된 비극이었습니다.

  11. 영국의 광산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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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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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낙관주의자를 꿈꾸는 주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