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장문장 권장도서





올해는 무려 38권이나 읽었다. 너무 많이 읽는 것 아닌가? 한 달에 세 권을 읽은 셈이다. 책을 좀 줄여야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생산자로서의 고민이 많은 한 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24 장문장 권장도서 에서는 35권을 읽었고 <최고>가 6권, <가치있는> 이 12권이었으니 비교적 풍작이라고 볼 수 있다. <최고>를 기준으로 봤을 때 24년에 비해서 25년은 많이 약하다. 사실 다시 읽은 이영도를 제외하면 6권이기도하다. 반면 <가치있는> 에서는 25년의 책들이 24년에 비해 훨씬 좋다. 전체적인 질로는 25년이 더 좋았다고 볼법도 하다. 참고로 <눈나경>은 눈이 나빠서 쓰는 안경의 줄임말로 그닥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올해는 아쉽게도 내 인생을, 가치관을, 세계관을 바꾼 엄청난 사건과도 같은 책은 없었다. 동시에 작년과 올해를 바꿔치기 하더라도 올해의 감상이 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하다. 즉 순서의 문제라는 말이다. <순교자>와 <스토너>는 <대성당>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21세기 자본>에, <국화와 칼>은 <1937 이쿠미나>에 대응할만하다. 결국 작년의 독서로 내가 확장되었고, 비슷한 것에 또다시 감동받기는 어려운 탓이다. 그래도 여전히 독서는 즐겁다.
특히 이번에 <최고>가 애매한 이유는 <가치있는> 책들중에 맛있는 녀석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어려웠지만 중요한 선정기준인, “내가 얼마나 많이 인용하고 추천했는가”를 중심으로 상대적인 절대평가를 진행했다.
마찬가지로 <최고>에 대해서만 코멘트를 남겨볼까 한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재독한 것이라 제외한다.
1937 이쿠미나, 헨미 요
가장 아름다운 책을 한 권만 뽑으라면 헨미 요의 에세이인 <먹는 인간>을 이야기할 것이다. 그에 대한 찬양은 2020 권장도서에 이미 읊은 바 있다. 동시에 그렇게 좋아하는 것 치고는 다시 읽은 적도, 헨미 요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적도 없다. 나는 같은 책을 거의 다시 읽지 않는다. (그래서 <눈물을 마시는 새>는 예외적이다)
문득 헨미 요의 이름을 검색했다가 그의 작품이 새로 출간된 것을 발견했다. 분명 꽤 옛날 사람인데, 하고 찾아보니 2016년 책이 나온 시점 그는 70대 할아버지다. 70살 할아버지가 무슨 기력으로 책을 썼을까 싶어서 읽어봤다.
책은 1937년 난징대학살을, 그곳에서 그저 연표와 숫자로서 기록된 것 이상의 학살 행위를, 학살에 참여했을 헨미 요의 아버지를, 그리고 돌아온 아버지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헨미 요를 그린다. 결국 이것은 일본을 제국주의로 이끈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민족적인 문제로부터 개인의 화해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다.
지하철에서 후기 부분을 보고서는 눈물이 날 뻔 했는데 수상해보일까봐 겨우 참아냈다. 얌전히 집에서 문장이나 반동거인 같이 따듯한 생명체를 옆구리에 끼고 보았다면 시원하게 울어버렸을 것이다. 민족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비로소 자신에 대한 해부로 이어 모든 것을 파해쳐버리는 여정을 한 개인이 견뎌내야했음이 슬퍼서 그랬다. 극복이라는 것은 이처럼 괴로운 것이다. 이토록 낱낱한 것이다.
그에게 말을 걸어 볼까. 둑에 둘이 앉아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만큼 고분고분하지는 않으니까 여러 가지 시늉을 할 수 있다. 이 어둠 속에서 장난치면서 군대식 경례를 하는 시늉도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그는 무서워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둑에 나란히 앉는다. 아버지 냄새가 난다. 인간의. 그립다. 담배 냄새 나는 양복.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얼굴이 둘, 어스름에 노출된다. 부끄러움.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책갈피에 넣어두겠습니다!

사과농장하시는 분이 신작냈다고 들었는데...... 드래곤라자부터 다시 읽어야할 판이네요

저도 투두리스트에 넣어두었습니다 ㅎㅎ 못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