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러날 퇴(退), 생각 사(思) — '비로소 나를 생각하는 시간'
"이 글은 지난 40년을 뒤로하고 삶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한 나, 여전히 놀이공원 이정표 앞에 선 어린아이처럼 서툰 나에게 바치는 기록이다. 또한 나와 닮은 모습으로 삶의 무게를 견디며 힘든 방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어떤 이들과 기꺼이 곁을 나누기 위해 작성한다."

"눈을 감으면 언제나 네가 있어. 하지만 눈을 뜨면 너는 어디에도 없지. 꿈에서 깨어난 아침은 항상 너무나 잔인해." -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아키의 대사 중에서
어린 시절의 가난은 불청객이 아니라 포식자였다. 그것은 매일 밤 단칸방의 문틈으로 스며들어 소년의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가난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었다. 숨통을 조여오는 생존의 폭력이었고, 거리를 걸을 때마다 목덜미를 후려치는 서늘한 수치심이었다. 낡은 운동화 주둥이 사이로 스며드는 빗물을 삼키며 소년은 맹세했다. 이 지옥을 건널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바치겠다고. 그 맹세가 스스로 목에 감은 올가미가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나는 돈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그것이 참사의 서막이었다.
청춘의 낭만이나 방황 따위는 배부른 자들의 사치였다. 내 나침반의 바늘은 오직 ‘황금 맥’만을 향해 얼어붙어 있었다. 남들이 절벽이라 부르는 곳에 나는 뛰어들었고, 밤낮을 갈아 넣는 혹독한 노동의 맷돌 속으로 기꺼이 온몸을 밀어 넣었다. 눈이 멀 것 같은 돈의 광채가 내 세상의 유일한 빛이었으니까.
스물두어살 무렵, 매년 십억 이상의 숫자를 거둬들이는 한 스승을 만났다. 그는 신의 계시처럼 나에게 속삭였다.
“행복은 돈으로 사는 것이다.”
그 파격적이고 잔인한 확신은 내 마음에 거대한 불을 질렀다. 젊음이라는 유일한 밑천을 화약 삼아, 나는 거친 세상이라는 전쟁터로 나를 투하했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나는 내가 세상의 정상을 향해 승리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내 20대는 국경과 활주로 사이의 어딘가에 있었다. 전국 팔도의 시멘트 바닥을 전전하다가, 때로는 아프리카의 메마른 오지에서 개밥 쉰내가 코를 찌르는 정체불명의 음식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집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 가는 간이역이었다. 가족들에게 건네는 말은 오직 “다녀올게”와 “다녀왔어”뿐인, 영혼 없는 이진법의 신호로 전락했다.
세월을 통째로 갈아 넣은 끝에, 20대의 나는 동년배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억대 연봉의 ‘전문가’라는 왕관을 썼다. 그러나 왕관의 무게는 나의 목을 꺾어놓기 충분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20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와 있었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거울 속에는, 내가 아는 소년은 없고 낯선 이방인 한 명에서 있었다.
거울 속 사내의 눈동자에는 지독한 독기만 주린 채 남아있었고, 눈 밑에는 영화 《암살》의 염석진이 재판장에서 울부짖을 때나 가졌을 법한 짙고 푸르스름한 다크서클과 눈 밑 지방이 훈장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척추 마디마디는 직립보행의 문명을 거부한 채, 사족보행을 하던 태초의 짐승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비명을 질렀다. 추간판과 디스크가 무너져 내릴 때마다 그것은 노동의 무게를 청구하는 영수증 같았다.
육체의 비명보다 더 잔인한 각성은 아주 사소한 틈을 타 찾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무심코 내게 물었다.
“너는 요즘 취미가 뭐야? 쉴 때 뭐해?”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주말에 내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놀이가 무엇이었는지 아무리 기억해 내려 해도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내가 내뱉은 대답은 고작 세 글자였다.
“……돈 벌기.”
농담처럼 뱉은 그 한마디가 내 심장에 차갑게 꽂혔다. 친구는 씁쓸하게 웃었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명징하게 깨달았다. 아, 나는 나를 통째로 잃어버렸구나. 가난을 이겨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폭주한 대가는 이토록 처참했다. 황금의 맥을 캐는 동안, 나는 정작 ‘나’라는 인간의 본질을 파내어 버린 상태였다. 내가 무엇을 볼 때 웃었는지, 어떤 공기 속에서 진심으로 행복해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빈 껍데기.
통장 잔고는 남부럽지 않게 채워졌을지언정, 치열했던 모험의 끝에 손에 쥔 것은 결국 차갑게 식어버린 잿더미였다. 나를 통째로 태워버린 20년의 세월, 그 장렬한 화재 뒤에 남은 것은 빛나는 황금이 아니라, '나'라는 주인을 영영 잃어버린 서글픈 침묵뿐이었다.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산악인들이 눈보라를 만나면, 사방이 온통 하얗게 변해 방향 감각을 잃는 순간이 온다. 그것을 '화이트아웃'이라고 한다. 길도, 절벽도, 하늘도 보이지 않는 공포. 지금 내 삶이 그렇다. 사방이 온통 하얗게 얼어붙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나레이션 중에서
내 인생의 화이트아웃은 소리 없이 찾아왔다. 20년 동안 쉬지 않고 돌아가던 거대한 엔진이 돌연 멈춰 선 날이었다. 모든 에너지를 바깥세상으로, 그놈의 황금 맥을 향해서만 쏟아붓고 정작 보일러실의 불씨를 돌보지 않은 대가였다. 무언가에 격렬하게 타오르다 남은 잔해는 고작 회색 재뿐이었다. 현대 심리학은 이를 ‘정서적 자원의 고갈’, 즉 번아웃(Burnout)이라 부르지만, 내게는 그저 온 세상의 불이 한꺼번에 꺼져버린 암흑이었다.
그동안 내 마음의 창고를 채우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만 스님의 가르침을 빌리자면, 내 창고에는 ...




진솔한 글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응원할게요! 그리고 사족에 멋진 책들이 많네요. 찾아보고 읽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긴긴밤은 사실 아동도서인데 감히 추천드립니다 ㅎㅎ

어디서 들은 건데 성취한 분들은 인생을 즐기지 못했던것을 후회하고 즐겼던 분들은 성취하지 못했던것을 후회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열심히 살아오셨다는 증거 같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아파트님 글들 잘보고 있습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저는 기간은 짧지만 비슷한 케이스로 퇴사했는데, 이렇게 술술 읽히게 풀어내시다니 멋지십니다. 이제는 가격 대신 가치로 채워나가실 인생 2막을 응원하겠습니다!

우고님 필사 하시는게 저에게도 동기부여가 되고 있답니다~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기도하고 응원합니다. 글 읽으면서 뭉클하기도 하고 많이 배운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간내어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 나아가고 싶으신 방향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걸어가셨던 길 위에 서있는 듯한 저에게 의미가 큰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의미를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