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요즘 나는 매주 일요일, 사진 강의를 듣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배움을 찾아 강의실을 찾는 이 열정이 스스로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아마 정말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과거의 흔적 속에서 더 잘 보인다. 꾸준히 해온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말이다.
주말의 서울 지하철은 나에게 늘 낯설게 다가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 화면에 몰두해 있다. 모두가 스몸비(Smombie)가 된 듯한 풍경. 이제 독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취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책 읽기’가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책을 꾸준히 읽는 편이다. 독서는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박사 후 연구과정(post-doc)을 마치고 다수의 논문을 써온 내 경력을 떠올리면, ‘가방끈이 길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은 아니다. 학문적으로 공부한 시간과 깊이에는 자부심이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엄청난 다독가였던 것도 아니다. 독서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건 중학교 시절, 순수한 재미로 읽기 시작한 판타지 소설들(40대들은 아실지도 모를 이영도의 드래곤라자가 입문작이다. 대학입시 때 감명깊게 읽은 책 목록에도 적었을 정도로 좋아했다.) 덕분이다. 즐겁게 읽는 과정 속에서 책 읽기는 습관이 되었고, 관심 있는 주제를 찾아 틈틈이 읽다 보니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었다. 내 서재에는 그렇게 쌓여온 관심의 흔적들이 켜켜이 담겨 있다.

병원 인테리어 하면서 가장 먼저 설계한 빌트인 책장. 스테인레스 스틸강판을 양쪽 벽에 박아서 사람이 매달려도 떨어지지 않도록 보강했다. 이런 부분은 요구하지 않으면 절대해주지 않는다. 하고 나니 가장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다. 개원초기에는 직원들 작은 도서관으로도 활용했었다. 지금은 다행이도(?) 직원들이 책볼시간은 없다......^^
오늘은 세계 책의 날이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날일지도 모르지만, 이 조용한 기념일을 빌려 ‘독서’와 ‘배움’에 대해 잠시 정리해보고자 한다.
배움에 대하여
배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한때 뇌과학자로 일했던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정의는 간단하다. 배움이란 결국 뇌의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을 활용한 변화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유연한 시기에 더 쉽게 일어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주입식 교육이나 언어 습득처럼, 어린 시절은 배움에 유리한 ‘창(窓)의 시기(window period)’이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누군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것”이라 했던가. 뇌의 신경가소성은 분명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약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이가 들면 배움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단지 방식이 달라질 뿐이다. 어린 시절에는 새로운 정보를 빠르게 흡수하지만, 나이가 들면 기존의 지식과 새로운 정보를 연결하는 능력이 더 강해진다. 젊은 시절에 양질의 지식을 많이 쌓아둔 사람은, 이후 그 기반 위에 더 깊이 있는 통찰을 덧붙일 수 있다. 현상의 맥락을 읽는 힘, 창의성이라는 것도 바로 이런 ‘지식 간 연결’에서 비롯된다. 한때 유행했던 ‘통섭’이라는 개념도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젊은 시절에 익힌 지식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비교적 잘 유지된다. 반면, 30대 후반 이후에 새롭게 습득한 지식은 생활 속 반복이나 의도적 복습이 없으면 금세 잊히는 걸 느낀다. 그래서 과거의 지식과 새 지식을 연결해두는 방식이, 기억을 붙잡아두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고착된 지식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편견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은 상당히 정확하다. 이미 자리 잡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젊은 시절 형성된 뇌의 신경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익숙한 음악을 떠올려보라. 10대 시절 자주 듣던 노래를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는 건 그 시절의 뇌가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방증이다. 대중 미디어 역시 이런 인간의 습성을 교묘히 활용한다. 소비력을 가진 세대가 편안함을 느끼는 ‘추억’—트로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