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스승의 날을 즈음해서 써놓았던 초고인데 이제서야 갈무리해본다.
교권이 흔들리는 시대다. 이제 뉴스에서 교사와 학생의 갈등은 흔한 장면이 되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교사의 권위는 천천히 낮아졌다. 교사의 말과 행동이 언제든 실시간으로 기록·공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은 대개 시야와 정보의 우위에서 시작된다. 펜트하우스가 비싸고 고층의 뷰에 프리미엄이 붙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업 시간에 벌어지는 일이 손안의 카메라를 통해 바깥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순간, 교사는 폐쇄적 공간이 주던 보호막을 잃는다. 권위는 노출과 동시에 투명해지고, 그만큼 약해진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학생에게 은밀한 폭력이 통용되던 때가 더 나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내 또래라면 학교에서 맞은 기억 한두 개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중학교 시절, 수학 숙제를 놓고 왔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아구지'를 맞은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름 우등생이던 내게도 그런 기억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그 시절의 분위기를 말해 준다. 참 어려운 시기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스승이란 어떤 의미일까. 과연 ’스승‘은 있을까? 기념일로 만들어서 선물을 주고 받으면 스승인걸까? 스승의 날을 전후로 해서 많은 생각이 든다.
내 인생경로를 뒤돌아보고 나름대로 구분을 만들어서 이런 존재들을 기억하곤 한다. 따로 연락을 드리진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그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감사한다.
오늘은 이에 관한 이야기다.
선생과 스승
‘선생’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먼저 난 사람’을 뜻한다. 나이와 세월에 가치를 두는 호칭이지만, 나이와 인성은 비례하지 않는다. 과거에는 시간이 곧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었고, 그 축적을 아래 세대에 전하는 일이 ‘선생’의 역할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AI 시대의 지식은 어떤 개인보다 빠르고 정돈된 형태로 손에 들어온다. 그래서 내게 ‘선생’이라는 호칭은 예전만큼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수많은 선생을 만났지만 배울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 나이에도 인식의 수준이 높고 삶의 과제에 세련되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먼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존칭을 요구하는 호칭은 점점 낡아졌다.
반면 스승은 다르다. 스승이라 불릴만한 사람은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과 ‘가르침’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주는 분들이라 생각한다. 관심만으로는 부족하고, 가르침만으로도 모자라다. 관심에 근거한 가르침이어야 한다. 인간은 공감하며 교류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에게 듣느냐에 따라 ‘가르침’이 되기도, ‘꼰대질’이 되기도 한다. 수사학의 언어로 말하면 메시지의 설득력은 화자의 에토스(ethos,어떤 화자이냐에 따라 논리적인 말도 설득력이 없는 것)에 기대는 부분이 크다.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말이 내 삶을 움직인다. 이런 관점에서 책이나 온라인을 통해 영감을 주는 이들도 넓게는 스승이라 부를 수 있다. 다만 일면식조차 없는 일방향의 관계라면, ‘스승’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다.
스승은 드물다. 나에게 관심을 가질 확률도, 내가 그를 존경할 확률도, 실제로 가르침을 건넬 확률도 모두 낮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나는 운 좋게도 세 분을 만났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운이 좋다면 머리속에 바로 떠오르는 분이 계실 것이다. 사실 이런 분들은 누가 물어보면 바로 머리속에 떠오르게 되어 있다.
돌이켜 보면 그분들이 왜 내게 그런 호의와 관심을 베풀었을까 자주 생각한다. 세 분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자신의 일을 뜨겁게 사랑했다. 그 열정이 말보다 먼저 전염됐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