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종말과 데이터의 지배: 유로달러에서 리보(LIBOR)를 거쳐 SOFR에 이르는 금융 지표 금리의 대서사시
서론: 보이지 않는 숫자가 지배하는 세계
현대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심장부에는 매일 아침 전 세계 자금의 흐름을 결정짓는 '숫자'들이 존재한다. 수십 년 동안 그 왕좌를 지켜온 것은 런던 은행 간 금리인 리보(LIBOR)였다. 그러나 이 숫자의 탄생과 번영, 그리고 충격적인 몰락은 냉전 시대의 지정학적 갈등, 미국의 내부 규제, 그리고 인간의 탐욕이 얽히고설킨 한 편의 대하소설과도 같다. 2023년 리보의 공식적인 종언과 함께 등장한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는 단순히 새로운 금리의 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은행가들의 신뢰'라는 모호한 개념이 지배하던 시대를 끝내고, '검증 가능한 실제 데이터'가 지배하는 새로운 금융 질서의 탄생을 의미한다.
제1장: 차가운 전쟁과 뜨거운 달러의 탄생
리보의 역사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1950년대의 런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연방의 공포와 유로달러의 기원
1950년대 중반, 구소련은 미국 내 은행에 예치된 자신들의 달러 자산이 동결될 것을 우려하여 자산을 파리의 유로뱅크와 런던의 모스크바 나로드니 은행으로 옮겼다. 이렇게 미국 국경 밖에 존재하게 된 '유로달러'는 리보 제국이 세워질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미국의 규제 Q: 리보로 향하는 고속도로
미국은 은행 간 과도한 경쟁을 막기 위해 예금 금리에 상한선을 두는 '규제 Q(Regulation Q)'를 시행하고 있었다. 자본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규제가 없는 런던으로 흘러 들어갔고, 영국의 은행들은 이 달러 예금을 바탕으로 국제 금융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제2장: 두 명의 '미노스'와 1969년의 혁신: 신뢰의 공식을 만들다
1960년대 말, 유로달러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거액의 장기 대출 앞에서는 은행과 차입자 모두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이 교착 상태를 깬 것이 런던의 은행가 미노스 좀바나키스(Minos Zombanakis)와 그리스의 선박왕 미노스 콜로코트로니스(Minos Colocotronis)였다.
선박왕의 걱정과 은행의 공포
1969년, 선박왕 콜로코트로니스는 대규모 선박 건조를 위해 매뉴팩처러 하노버(Manufacturers Hanover) 은행에 막대한 대출을 요청했다. 당시 이 금액은 단일 은행이 감당하기엔 너무 컸기에 여러 은행이 팀을 짜서 빌려주는 '신디케이트 론(Syndicated Loan)' 방식이 도입되어야 했다. 그러나 계약 성사 직전, 두 진영 사이에는 팽팽한 불신이 감돌았다.
은행의 공포 (금리 변동 리스크): 은행들은 고정 금리로 빌려줬다가 나중에 시장 금리가 폭등할 것을 두려워했다. 자신들의 조달 원가보다 대출 이자를 적게 받으면 파산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은행은 3개월마다 시장 원가에 맞춰 금리를 바꾸는 '변동 금리'를 제안했다.
선박왕의 걱정 (정보의 비대칭성): 선박왕은 은행의 제안에 의구심을 가졌다. "은행이 자기네 조달 원가를 속여서 금리를 마음대로 높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