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마스터'님께 드리는, 학생이 생각하는 '바른 지식'에 대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먼저 또마스터님, 글들 감사드려요.
글을 보면서 ai 로 저렇게 조사를 해서 글을 쓸 수 있구나 하는 것에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valley의 글들을 잘 보지 않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요즘 쓰시는 글은 최고이신거 같아요.
'근거 있는 글들은 참 귀하잖아요.' 그냥 valley 들어와서 그거만 보구 나갑니다. (근데 왜 필진 지원을 안하시구….)
저는 필진을 정하는 것에 투표를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닭고기요리님 등등 드리고 싶은 분들께서 있긴 한데, 제 취향은 좀 그로스테스한 느낌이 나서 괜히 좀 그렇잖아요. 커뮤니티에 어느 정도 기대를 내려놓은 감도 있습니다.
전 어리지만, ai 를 딱히 쓰지 않습니다….. 호기심이 부족해서 그런거 같아요.
어떤 목적이나 일이 있어서 뭔가를 조사하거나 설명을 해야한다면 이리저리 쓸거 같은데, 어차피 읽는 활자, 지금은 그거 조사해서 읽을 시간에 다양한 책이나 읽자 그런 느낌입니다. 생각 안하고 이미 작가님들이 열심히 갈고 닭은 짜여진 글을 읽는게 편하잖아요. 이것도 하나의 제 문제거리기도 합니다. 검색 능력을 배양해야 할텐데요…..
이리저리 호기심은 많은데, 하나의 예시로 “과학기술이 서양 문명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했을까?” 라는 주제를 ai를 이용해서 교수님들이나, 자료들, 논문들을 찾아보고 싶긴 합니다.
뭐 지금은 아무도 궁금하지 않을 거 같지만, 잘하면 주식시장에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제가 글을 쓸때 ai를 도구로써 사용한다면 이런 추상적인 문제들의 예시들을 찾아서 구체화 시키는데 사용할 듯 싶습니다.
저번 주에 글을 드리겠다고 했는데, 오늘 아니키즘 수업 종강회를 할때 교수님께 여쭌다음에 글을 쓰는게 더 좋을 듯해서 글을 안썼어요. 제 시야와 머리는 별로 안좋으니, 교수님 의견을 드리는게 더욱 좋으실테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제 주변에서 제일 지혜로운 분이시거든요. (ㅎㅎ)
근데 교수님은 ai를 다른 방식으로 쓰시는 거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sci space 도구는 안쓰시는 듯 했습니다. 아마 자료들이나 이런 저런 논문들을 찾는 건 그냥 손으로 하시는 듯해요. 교수님과 오늘 술자리에서 대화하면서 다른 면만 엿보았지, 명확한 답은 못 구했어요. 또 교수님은 자료의 수집 프로세스 자체가 다른 걸로 알고 있어요. 아마 기호학을 전공하셔서 근거를 추출하는 방식이 다를 겁니다.
저는 ai 쓰는 방식의 타당성이 궁금했었거든요. 그래서 그걸 교수님께 여쭙고 싶었어요.
그동안 쓰신 여러 글들이 있었는데, 파악하기에 시사에서는 그것보다 좋은 방식은 더 없는 듯합니다. 시사에 한해서는 교수님급 시야를 주는 듯 했어요. 그렇지만, 제가 질문드린 그 글은 좀 불편했습니다. 이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구체화가 안되어서, 대신 제 일화를 둘러둘러 소개시켜 드릴게요.
대학원을 자퇴했었습니다. (네 저는 탈주용사입니다.)
교수님이랑 다퉜거든요. 그 후엔 자꾸 질문을 던지는 저를 편하게 길들일려고(?) 제 월급인 장학금까지 건들면서 신경전을 하시길래, 모든 정나미가 다 떨어져서 그냥 나왔습니다.(다른 말로 '잡들이'라고 합니다.)
대학원에서 있었던 일
입학한 저는 재료를 다루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대학원생이였으며 지도교수님이 어떤 주제를 하나 물어다 주셨었습니다. 뭐 “이건 좋은 연구주제인데 너한테 준다.” 등등 미사여구가 굉장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박사님꺼 훔쳐온 것이더라구요. 그것도 어떻게 알게된건지 그 이유가 웃긴데요. 파견 나가서 훔쳐 깨달았습니다.(ㅋㅋ)
어느 날은 대학원 지도교수님과 차를 타고서 파견 실험을 하나 나가게 되었어요. 제가 타인과 대화하기를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서 이 기구는 어떻게 만들어진거에요? 하면서 거기 소장님께 이리저리 묻고 있는데, 제 대학원 지도교수님이 옆에서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 장소가 익숙하니까. 심심하셨나봅니다. 난 쉬러간다고 다른 층으로 이동하셨어요. 아마 휴대폰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교수님이 가신걸 확인하자마자, 소장님께서 갑자기 쌩뚱맞은 주제와 지금까지와는 다른 목소리톤으로 그러시더라구요.
“교수님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시는 듯하다….”
지금껏 나누신 모든 대화 맥락을 무시하고 갑자기 말씀하시는데에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는 분명히 다른 주제를 이야기 하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뒤늦게 곰곰히 생각해 보는데, “너 이런데서 시간썩히지 말고 탈주하라는 신호였습니다.”
아마 저를 판단하시기에 대화가 되는 애라는 판단을 하셨던 것 같고, 교수님이 나가자마자 하고 싶은 말이셨겠지요.
아마 이 신입생인 학부생은 처음이고, 아직 실험 보는 눈이 없는거 같으니 힌트를 주신 것 이였습니다.
뭐 공포영화는 항상 시작되기 전에 시그널을 하나씩 주잖아요. 눈치없고 멍청한 주인공이 그걸 무시해서 시작될 뿐이지요.그 후 저는 공포영화처럼 이리저리 많은 사건들을 겪었고, 가스라이팅이 명백해지고, 교수님은 저와 논문을 보시면서 대화할 생각이 없음을 깨달았고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까지 고통받다가 나왔습니다.
정말 끔찍한 경험이였어요.
그 줬다는 주제 또한 다른 박사님껄 훔쳐온 것이였는데, 그 박사님께서 제 지도교수를 바라보는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벌레보는 듯한 표정이였는데, 말 그대로 “난 저 새끼 경멸한다.”는 눈빛이였어요. 그 파견나간 연구소는 교수님의 전 직장이였는데, 아마 제가 모르는 사건들이 많으셨겠지요. 근데 지도교수는 눈치가 없는건지, 저는 무서웠는데, 그런 눈빛을 보고서도 아무렇지 않아하더라구요….... 또한 교수는 매 순간순간 마다 박사를 무시하면서 도구처럼 대하는데, 오히려 제가 더 불편했었던 기억입니다. 돌이켜 보면 소시오패스 느낌이 납니다. 제 지도교수는 정말 주변사람 겉치레와 체면만 신경쓰며 그 그릇은 간장종지만한 사람이였어요. 대체 어떻게 국립대 교수가 된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후로 교수님들을 저는 잘 믿지 않습니다. (ㅋㅋ) 암튼 이런 살벌한 일화들은 뒤로하고서
싸운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번째 : 과학 논문은 실험기구를 사용하는데, 그 실험기구도 논문에는 안나오는 함정과 절차들이 있습니다. 결국 구체적으로 세부사항을 다 파악하고서 써야하는데, 겉으로는 될거 같아도 불가능한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럼 다른 것을 찾아야 하지요.
두번째 ...

호기심에 대해서 좀 생각해보면..
제가 그동안 가졌던 호기심들과 그로 인해 진행했던 많은 일들은 누군가 호기심을 쥐어줘서 진행한 일은 아니였어요. 그 앞까진 데려가줄 수는 있어도 그걸 잡게 하는건 개인의 의지가 작용하는거죠.
말하자면 누군가가 문턱 앞까지 이끌어줄 누군가의 의지와 제구 그걸 잡겠다는 의지가 수 억개의 의지중에 그 두가지 힘이 허공에서 만나서 펼쳐지는거죠.
그 과정에서 석 나갈 일들도 좀 있죠.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진리로 보는걸 누군가는 별 생각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부분에서 교수님의 답변에는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셨을 수도 있고, 설득에 체념하셨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까요?

안녕하세요, 이우창 님. 보내주신 긴 글, 한 문장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읽었습니다. 저의 글을 좋게 봐주신 점, 그리고 무엇보다 우창님의 깊은 상처일 수도 있는 대학원 시절의 이야기와 현재의 고민을 이토록 솔직하게 털어놓아 주신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학원에서 겪으셨던 일들을 읽으며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론 안도했습니다. 지도교수님의 무책임한 '초록 짜깁기'와 맥락 없는 지시가 우창 님께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전체적인 문맥을 담지 못한 근거는 함부로 쓸 수 없다"는 단단한 기준을 세우게 되신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그 끔찍했던 경험이 우창 님을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을 가진 연구자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된 것이겠지요.
이어서..

부싯돌도 서로 부딪쳐야 불꽃이 일지 않습니까. ㅎㅎ '참고용 자극'으로 삼아보는 용도로 읽고 나서 "이건 내 생각과 다른데?"라며 반박하거나, "이 정보와 저 정보를 엮으면 새로운 게 나오겠는데?"라며 아이디어를 확장하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래 봅니다. 제 글을 읽는이의 관점으로 다시 편집(Re-editing) 할 때, 비로소 그 지식은 읽는이의 것이 됩니다. 남의 생각을 소비만 하는 사람은 영원히 손님이지만, 그것을 자기 맥락으로 다시 엮는 사람은 주인이 되죠.
신항식 교수님 같은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계시다니, 참으로 큰 복을 받으셨습니다. 책 속의 활자가 아니라, 술잔을 기울이며 배우는 그분의 숨결과 눈빛, 그 모든 것이 살아있는 교과서일 테니까요 "예시는 공부에서는 문맥이 되고, 실험에서는 현상이 된다"고 하신 우창 님의 통찰은 저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그 섬세한 관찰의 눈을 들어 이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질문을 던져 주셨으면 합니다. 우창 님이 저를 분석하셨듯, 이 사회의 복잡한 현상들 속에 숨겨진 맥락을 읽어낸다면 그 통찰은 분명 누군가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모두 함께 그 물음의 끈을 놓지 말고, 서로의 시야를 넓혀주는 존재가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