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증 불가능한 Prior는 신앙이다




— 베이지안 프레임의 빠진 조각
투자는 맞히는 게임이 아니다 | Valley AI(본편)
본편 글을 다 쓰고 나서, 한 발 떨어져 다시 읽어봤다. 예측은 홀짝이고, 승률은 착각이며, 시간은 구조를 바꾸고, prior가 전부이며, 손익비는 윤리이고, 복기는 디버깅이다. 논리의 흐름은 나름 단단해 보였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prior가 전부라고 했는데, 그 prior가 틀렸다는 걸 어떻게 아는가?
이전 글에서 우리는 좋은 prior의 조건으로 "틀려도 시스템이 붕괴하지 않는가", "업데이트 기회가 남아 있는가"를 제시했다. 이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한 단계가 빠져 있었다. 업데이트를 하려면, 먼저 "지금 가지고 있는 prior가 틀렸다"는 판정이 내려져야 한다. 그리고 그 판정의 기준이 사전에 존재하지 않으면, 업데이트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떤 결과가 나와도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환경이 특수했다", "장기적으로는 맞을 것이다"로 합리화할 수 있다면, 그건 업데이트가 아니라 방어다.
Posterior가 영원히 바뀌지 않는 시스템은 베이지안이 아니다. 겉모습만 베이지안인 신앙 체계다.
이건 글의 사소한 누락이 아니라 구조적 결함이었다. Prior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prior의 자격 요건을 완결하지 못한 것이다. 이 글로 그 구멍을 메우려 한다.
칼 포퍼는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기준으로 반증가능성을 제시했다. 어떤 명제가 과학적이려면, "어떤 관찰이 나오면 이 명제는 틀렸다고 인정하겠다"는 조건이 사전에 명시되어야 한다. 이 조건이 없는 명제는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으며, 반박할 수 없는 명제는 지식이 아니라 믿음이다.
"내일 해가 뜬다"는 반증 가능한 명제다. 내일 해가 뜨지 않으면 틀린 것이다. 판정이 명확하고, 시점이 특정되어 있으며, 관찰로 확인할 수 있다. "신은 존재한다"는 반증 불가능한 명제다. 어떤 관찰을 하더라도 이 명제를 기각할 수 없다. 좋은 일이 생기면 신의 은총이고, 나쁜 일이 생기면 신의 시험이다. 모든 결과가 명제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이 명제는 원리적으로 틀릴 수가 없다. 틀릴 수 없는 명제는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포퍼의 통찰이 투자에 주는 함의는 직접적이다. 투자에서의 prior도 의사결정의 근거가 되려면, "어떤 결과가 나오면 이 prior를 수정하겠다"는 조건이 사전에 존재해야 한다. 이 조건이 없으면, prior는 검증 대상이 아니라 보호 대상이 된다. 검증 대상인 prior는 새로운 정보 앞에서 수정되거나 폐기되지만, 보호 대상이 된 prior는 새로운 정보 앞에서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모든 정보가 prior를 지지하는 방향으로만 해석되고, 반박하는 정보는 자동으로 걸러진다. 이건 확증편향의 정의 그 자체다. 반증 불가능한 prior는 확증편향에게 무한한 작동 공간을 제공한다.
반증 불가능한 prior는 생각보다 훨씬 흔하다. 그리고 대부분 그럴듯하게 들린다. 비합리적으로 들리는 게 아니라 너무 합리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 기업은 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명제는 언제 틀렸다고 판정할 수 있는가. 1년 뒤에 성장하지 않으면? "아직 장기가 아니다." 3년 뒤에도? "장기는 5년이다." 5년 뒤에도? "환경이 특수했다,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 기준을 계속 뒤로 미룰 수 있다면, 이 명제는 원리적으로 반증이 불가능하다. 어떤 시점에서도 "아직 아니다"로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라는 단어가 이 명제의 방패이자 감옥이다. 방패인 이유는 어떤 반박도 막아내기 때문이고, 감옥인 이유는 이 명제를 영원히 검증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장은 결국 합리적이다." 주가가 펀더멘탈과 괴리되면? "아직 시장이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괴리가 몇 년간 지속되면? "비합리성은 일시적이고 합리성은 영구적이다." 이 명제는 어떤 관찰로도 기각할 수 없다. 언제든 "결국"이라는 단어 뒤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10년간 비합리적으로 움직여도 "그건 아직 결국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케인즈가 "시장은 당신이 지불 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보다 더 오래 비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한 건 이 맥락이다. "결국"이 올 때까지 살아남지 못하면, 그 명제가 맞든 틀리든 의미가 없다.
"이 산업은 구조적 성장 초기에 있다." 매출이 정체되면? "침투율이 아직 낮다." 경쟁이 격화되면? "성장 산업이니까 당연하다." 수익성이 악화되면? "초기에는 원래 그렇다." 이 prior 앞에서는 부정적인 모든 증거가 오히려 긍정적 해석의 재료가 된다. 명확한 기각 기준이 없으면, 이건 분석이 아니라 희망이다.
"이 CEO는 비전이 있으니까, 실적은 따라올 것이다." 경영자에 대한 신뢰가 투자 가설의 전부가 되는 경우다. 실적이 안 나오면? "아직 전략이 실행되는 중이다." 적자가 커지면? "투자 단계니까 당연하다." 주가가 빠지면? "시장이 이 사람의 비전을 이해 못 하는 것이다." 경영자에 대한 신뢰는 중요한 판단 요소지만, 그 신뢰를 수정할 조건이 없으면 팬심과 구별이 안 된다. "어떤 결과가 나오면 이 사람에 대한 판단을 재검토하겠다"가 없는 상태에서, 나쁜 결과가 나올 때마다 "비전이 있으니까"로 방어하는 건 분석이 아니라 충성이다.
이 예시들의 공통점은 명제 자체가 비합리적이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각각은 충분히 합리적인 가설일 수 있다. 실제로 장기 성장하는 기업이 있고, 시장은 장기적으로 효율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며, 성장 초기 산업은 존재하고, CEO가 비전을 완전히 실행시킬 수도 있다. 문제는 명제의 내용이 아니라 "틀렸다"를 판정할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기준 없는 가설은 영원히 유효하고, 영원히 유효한 가설은 업데이트가 불가능하며, 업데이트가 불가능한 가설은 베이지안 프레임 안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반증 불가능한 prior에는 공통된 언어적 패턴이 있다. 이 패턴을 ...

홍진채님의 주식하는 마음이 생각나네요!

해당 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역시 천진반이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