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9. 12. 24.
인간은 참 오랫동안 지혜라는 게 시간과 함께 쌓이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2029년 그해 겨울, 서진우가 화면으로 마주한 알렉산더 왕의 인터뷰는 그 믿음이 얼마나 순진한 오만이었는지를 조용히 꼬집고 있었다.
“아이를 갖는다는 건, 말이 전혀 안 통하는 외계 종족을 거실에 초대하는 거나 다름없어.”
그는 아주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기술이 인간의 신경망과 하나가 되는 순간, 인류는 두 갈래로 나뉠 것이라고. 정보를 ‘해석’하며 고군분투하는 이들과, 정보를 숨 쉬듯 ‘호흡’하는 이들. 이주민들에게 기술은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네이티브들에게 그것은 이미 자아의 일부였다.
그날 밤, 서진우는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을 보며 예감했다. 우리가 맞이할 미래는 단순히 빨라지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되리라는 것을.
#2039. 10. 15.
노먼 교수의 강의는 마치 장엄한 고대 유적을 구경하는 것처럼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에테르-9 엔진을 앞에 두고 인과율의 성벽을 하나씩 쌓아 올리고 있었다. 입력값 A가 결과 B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수만 개의 논리적 징검다리를, 그는 아주 정직하게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건 참 정교하고 우아한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치명적으로 느렸다. 사과가 왜 떨어지는지 증명하겠다고 떨어지는 매 순간을 초고속 카메라로 찍어 분석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강의실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의 세계는 달랐다. 그들에게 결과값은 ‘찾아가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이미 도착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굳이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았다. 그저 신경망을 타고 흐르는 데이터의 패턴을 직관적으로 느낄 뿐이었다. 그들에게 노먼 교수의 그 신중함은 지혜가 아니라, 시스템의 흐름을 뚝뚝 끊어놓는 ‘인지적 지연’에 불과했다. 학생들은 교수가 틀렸다고 말하진 않았다. 다만 그 과정이 너무나 뻔하고, 창의성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지독하게 구태의연하다고 느꼈을 뿐이다. 이미 그들에게 알고리즘은 도구가 아니라, 새로 장착된 감각기관이었으니까.
#2042. 05. 18.
서흔일곱이 된 서진우는 어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