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살아남는 투자법 : 누가 다극 질서를 시작했는가?





지난 강의의 복습
필자는 이전 아티클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혼란기를 지나고 있으며, 이러한 혼란기는 911 테러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오사마가 단순한 광신자가 아니라 명확한 목표를 지니고 테러를 수행한 냉혹한 전략가라는 점은 알겠다. 한데 그래도 테러 집단이 미국을 위기에 빠뜨렸다는 설명은 부족하지 않나? 911테러는 미국인들의 마음에 깊은 심리적 흉터를 남겼다는 설명은 이해한다. 그러나 국가가 심리적 흉터로 혼란에 빠졌단 설명은 이상하다. 그것도 2000년대의 미국처럼 압도적인 패권국이면 더욱 그렇다. 현대 국가는 물리적 공간을 점유하고 무력을 독점하고 이를 행사할 배타적인 권한을 보유한다. 국가는 국민에게 단단한 소속감과 물리적인 안전망을 동시에 제공하는 존재다. 행정 제도와 사법 제도가 없으면 시장도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치철학의 고전인 리바이어던. 현대 국가의 정치적 정당성을 이루는 이론서로 유명하다.)
그러니 팍스 아메리카나가 종말을 맞이한 결정적인 이유는 또다른 리바이어던들의 움직임에서 찾아야한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 국가적 역량을 낭비하는 사이에 반사이익을 누린 진정한 승자들은 이슬람 세계가 아니라 미국의 오랜 경쟁국들이었다. 오늘의 주제는 미국의 가장 오랜 라이벌이던 소련의 몰락, 러시아의 부활과 재몰락을 다룰 것이다.
소련 : 전세계 노동자의 고향이란 꿈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에겐(필자도 그렇다) 낯선 사실이지만, 오래전에 소련이라는 아주 강력한 제국이 있었다. 정식 국호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인데, 이를 풀어보면 서로 다른 민족의 노동자들이 건설한 공화국들이 연합한 사회주의 연방으로 말할 수 있다. 소련은 오늘날의 러시아같은 일반적인 민족국가가 아니라 미국이나 EU처럼 인공적으로 진행된 사회 실험이었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 김씨와 미츠비시 전기에서 일하는 마쯔다 상이 서로를 동지로 여기고 고용주들에게 맞서서 연대할 수 있는가? 다소 공상적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이러한 믿음에 기반해 세워진 나라였으며, 실제로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었던 국가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분배한다는 이상은 듣기엔 멋있지만 지속가능한 사회구조는 아니었다.
소련은 어째서 붕괴했을까?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 자식조차 자립할 시기가 되었는데 노동을 거부하면 짜증이 치솟는다. 그러니 얼굴도 모르는 남에게 필요에 따라서 재물을 나눠준다는 발상은 현실에서 성립하기 힘들다. 어쨌든 노동자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실험은 커다란 실패로 끝났다. 원인이 무엇이든 소련은 해체되었고 어떤 국가도 진지하게 소련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는다. 소련의 실패를 다루려면 또다른 시리즈가 필요한 일이기에 오늘의 게시글에선 깊게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것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소련은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던 초강대국이었다. 하드 파워는 물론이고 소프트 파워에서도 그러했다. 소련이 20 세기에 지녔던 위상을 이해해야 오늘날 러시아의 정책결정자들이 품은 분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냉전이 끝나자 소련은 15개의 공화국으로 쪼개졌다. 새로운 국경선은 민족들에게 할당된 자치공화국들의 행정경계를 따라 그어졌고 상임이사국의 지위는 영토와 인구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러시아가 승계했다. 그러나 여기서 명심할 사안은 러시아는 소련보다 역량이 훨씬 떨어진다는 점이다. 비록 러시아는 소련에서 76%에 달하는 영토를 계승했지만 인구에선 과반을 조금 넘게 물려받았을 뿐이고 또한 잃어버린 영토엔 우크라이나의 흑토나 코카서스의 유전, 중앙아시아의 광물지대같은 경제적/산업적 가치가 드높은 지역도 포함된다. 이는 러시아에에 사는 사람들에게 총체적인 재앙을 의미했다. 노동력의 절반이 경제에서 분리되자 국내의 공급망이 무너졌다. 소련 시절에 자랑하던 과학 기술에 대한 투자는 단절되었고 두뇌들은 서방으로 떠났다. 행정과 사법은 마비되거나 너무나 부패해 마비와 다름이 없어졌다. 인구와 경제력은 처참히 쪼그라들고 사회는 전면적인 혼란을 겪는 시기, 서방의 적성국들은 국경선을 향해 다가오고 이질적인 소수민족들은 무장 독립을 시도하는 대위기. 러시아는 그런 혼란의 한복판에서 21세기를 맞이했다.

소련 붕괴가 가져온 총체적 재앙 : 파괴된 존엄
총체적 재앙이란 표현은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니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해당 구절을 번역할 필요가 있다. 국내적 공급망이 붕괴했단 의미는 마트 진열대가 비었거나 터무니없이 비싸졌단 의미다. 정치 질서가 붕괴했다는 이야기는 대통령이 탱크에 올라타 국회를 포격한다는 의미다. 사회가 혼란스럽다는 의미는 마피아들이 대낮에 강도와 살인을 벌이고 젊은 여성과 아이를 납치한다는 이야기다. 사법 질서가 마비되었다는 이야기는 저런 마피아를 경찰이 묵인하거나 그들도 함께 시민을 약탈했다는 의미다. 당신의 계좌는 휴지가 되었고 부모님의 연금도 입금되지 않는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들은 헐값에 러시아의 자산을 사가거나 매춘 관광을 즐기며 몰락한 초강대국의 모습을 비웃는다. 과장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의 러시아는 실제로 그런 상태였다. 좋게 말해도 오늘날의 필리핀이나 콜롬비아 같은 상태였고 실제론 그보다 나빴다. 평범한 국가가 이런 모습이 되어도 국민들은 분노해마지 않을텐데, 하물며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던 초강대국의 구성원이라면 이런 현실을 더욱 굴욕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혼란을 종식한 실로비키들 : 레닌그라드의 KGB 형제회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 정치인이 있었다. 푸틴은 거동도 힘들던 과거의 할아버지 지도자들과 달리 매우 활동적인 모습을 과시했고 항상 술에 취해있던 전임자와 달리 명료한 논리와 정제된 언어로 대중에게 연설했다. 무엇보다 푸틴은 강력한 지도자였다. 푸틴과 푸틴의 친구들이 정권을 장악하자 혼란은 급속히 진압되었다. 사자 무리가 나타나면 하이에나들이 도망치는 것처럼 KGB에서 훈련받고 평생동안 결속을 다져온 실로비키(силовики́)들이 러시아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자 경쟁 집단들은 단숨에 굴복하거나 잔혹하게 진압되었다. 어떤 러시아인도 푸틴이 이끄는 KGB 형제단이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라고 믿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경찰이...

잘 읽었습니다!

첫 댓글 특별히 감사합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러우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줄 몰랐네요

그러게요. 그런데 이제라도 끝날것같지도 않습니다. 양측다 물리적 여력이 남았고 정치적 의지도 남아서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변곡점을 짚어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