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글에서 우리는 왜 투자자가 원유 시장을 알아야 하는지 살펴봤습니다. 유가가 인플레이션과 금리, 그리고 주식 시장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에너지 섹터가 인플레이션 헤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까지 다뤘죠.
이번 글에서는 한 발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원유의 역사, 그 시작점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원유란 정확히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그리고 원유라고 해서 다 같은 원유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 살펴볼 예정입니다.
석유와 인류의 역사
고대부터 알려진 석유

이미지 설명: 노아의 방주에 사용된 역청(Bitumen). 천연 아스팔트로 방수 기능이 뛰어나 성경 시대부터 배의 방수재와 건축 접착제로 활용 (출처: 굿뉴스데일리)
석유는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해왔습니다. 성경에도 석유가 등장합니다.
창세기 6장 14절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 때 "안팎으로 역청을 칠하라"고 명합니다. 역청(瀝青, bitumen)은 천연 아스팔트로, 석유가 오랜 시간에 걸쳐 휘발성 성분이 날아가고 남은 점성 물질입니다. 방수 기능이 뛰어나 고대부터 배를 만들 때 사용되었죠.
성경 밖에서도 기록은 풍부합니다. 기원전 4000년경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역청을 배 방수와 건축 접착제로 사용했습니다. 기원전 1000년경 중국에서는 소규모로 등유를 정제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근대 석유 산업의 탄생
하지만 석유가 '산업'으로 발전한 것은 19세기 중반입니다.
당시 조명용 연료로 고래기름이 널리 쓰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고래 개체수가 급감하면서 고래기름 가격이 치솟았다는 것이죠. 대체 연료에 대한 수요가 절실해졌습니다. 여기서도 네이버 블로거 메르님이 강조하시는 "흔싸귀비"(흔하면 싸지고, 귀하면 비싸진다) 논리가 적용됩니다.
여기서 1854년, 예일대학교의 벤저민 실리만(Benjamin Silliman) 교수는 중요한 발견을 합니다. 원유를 정제하면 등유(kerosene)를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입니다. 등유는 고래기름보다 저렴하면서도 밝은 불빛을 제공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1859년 8월 27일, 에드윈 드레이크(Edwin Drake)는 펜실베이니아주 타이터스빌(Titusville)에서 역사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깊이 69피트(약 21미터)에서 하루 15배럴의 원유가 솟아오른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상업적 유정(油井)이었습니다.
드레이크의 성공은 "검은 황금(Black Gold)" 러시를 촉발했습니다. 사람들은 금을 찾아 서부로 달려갔던 것처럼, 이번에는 석유를 찾아 펜실베이니아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미지 설명: "Colonel" Edwin Drake(오른쪽)와 그의 친구 Peter Wilson이 세계 최초의 상업 유정 앞에서 찍은 사진 (출처: Morgan Downey의 Oil 101)
배럴(Barrel)의 유래: 왜 42갤런인가?
드레이크의 발견 당시 펜실베이니아 유전 근처에는 파이프라인도 철도도 없었습니다. 원유를 정유소까지 운반할 방법이 필요했죠. 당시 액체를 운반하는 가장 흔한 용기는 위스키와 와인을 담던 나무 배럴이었습니다.
초기 석유업자들은 이 배럴들을 급히 징발하여 원유를 담아 운반했습니다. 1870년대가 되어서야 철도 탱크차와 파이프라인이 배럴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하필 42갤런일까요?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것은 당시 에너지 대기업인 스탠다드 오일(Standard Oil)이 "Blue Barrel"이라는 42갤런 배럴을 표준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표준이 업계 전체에 퍼지면서 오늘날까지 '석유 1배럴(bbl) = 42 US 갤런 = 약 159리터'라는 단위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원유는 온도와 압력에 따라 부피가 변하고 쉽게 증발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대규모 거래에서는 부피 오차 1-5%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세기 초, 내연기관이 발명되고 포드 모델 T가 대중화되면서 석유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등유 대신 휘발유와 디젤이 주력 제품이 되었고, 석유는 현대 문명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이미지 설명: 1901년 텍사스 스핀들탑(Spindletop) 유전. 하루 10만 배럴 이상을 분출하며 미국 석유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촉발 (출처: Morgan Downey의 Oil 101)
원유란 무엇인가
원유의 정의
원유의 역사를 살펴봤지만, 그래서 원유가 뭔데?라고 질문하실 수 있습니다.
석유(petroleum)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로 암석을 뜻하는 'petro'와 라틴어로 기름을 뜻하는 'oleum'의 합성어입니다. 문자 그대로 "암석에서 나온 기름"입니다.
세계석유공학자협회(SPE)는 석유를 "자연발생적으로 존재하는 탄화수소의 혼합물"로 정의합니다.
탄화수소(Hydrocarbon)란 탄소(C)와 수소(H) 원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분자를 말합니다. 가장 단순한 탄화수소는 메탄(CH4)으로, 탄소 1개에 수소 4개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여기서 탄소가 늘어날수록 분자는 복잡해지고 무거워집니다.

이미지 설명: 탄화수소 분자 구조. 탄소(C)와 수소(H)의 결합으로 구성된 다양한 분자들이 혼합되어 있음 (출처: GS칼텍스 에너지학개론)
원유는 이런 다양한 크기의 탄화수소 분자들이 섞여 있는 혼합물입니다. 분자 크기가 비슷하면 물리적 성질도 유사하기 때문에, 끓는점 차이를 이용해 휘발유, 경유, 등유 같은 제품으로 분리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다음 3편 다운스트림 섹터에 대해 다룰 때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넓은 의미의 석유는 액체인 원유(crude oil)뿐만 아니라, 기체인 천연가스(natural gas), 반고체 상태인 역청(bitumen), 그리고 생산 과정에서 액체로 변환된 응축물(condensate)까지 포함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석유' 또는 '원유'라고 하면 액체 상태의 원유를 지칭합니다.
참고: "Crude" vs "Total Liquids"
통계 자료를 볼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Crude Oil(원유)'과 'Total Liquids(총 액체 연료)'는 다른 개념입니다.
Total Liquids는 원유 + 콘덴세이트 + NGL + 바이오연료 + 정제 과정 체적 증가분(Processing Gain)을 합한 것입니다. 수급 분석 시 어떤 정의를 사용하는지 확인해야 정확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수급(S/D) 모델을 만들 때, 원유 하나만 보지 않고, 총 액체 연료를 기준으로 계산합니다. 원유만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정제품이 존재하기는 하나, 일부 정제품들은 콘덴세이트, NGL 등을 통해서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이오연료는 아예 대체재죠).
석유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유전 형성
유기 기원설: 현재 주류 이론
그렇다면 이 수천 미터 땅속에 있는 석유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현재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지는 주류 이론은 유기 기원설입니다.
약 5억 년 전, 지구 표면의 상당 부분은 얕은 바다였습니다. 이 바다에는 플랑크톤, 해조류, 원생동물 등 다양한 유기물이 번성했습니다. 이들이 죽으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진흙, 모래와 함께 퇴적되었습니다.
수백만 년에 걸쳐 퇴적물이 계속 쌓이면서, 아래층은 점점 더 깊이 묻혔습니다. 깊이가 깊어질수록 온도와 압력이 올라갔죠. 이 과정에서 유기물은 케로겐(kerogen)이라는 중간 물질로 변하고, 이것이 다시 열과 압력을 받으면 원유와 천연가스로 변성됩니다.
이 변성이 일어나는 온도 범위(약 60-120°C)를 "석유창(oil window)"이라고 부릅니다. 너무 낮으면 변성이 안 되고, 너무 높으면 액체 원유 대신 기체 천연가스만 생성됩니다.

이미지 설명: 석유 형성에 관한 두 가지 이론 — 유기 기원설과 무기 기원설. 현재는 유기 기원설이 주류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 (출처: GS칼텍스 에너지학개론)
유기 기원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많습니다. 석유가 발견되는 곳이 대부분 과거 얕은 바다나 호수 밑의 퇴적암이라는 점, 그리고 석유 성분 속에 질소, 황 등 단백질 분해 시 발생하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 등입니다.
이 과정이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학자들은 대략 수십만 년에서 수백만 년으로 추정합니다. 석유는 문자 그대로 "화석 연료"인 것이죠.
그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석유 = "공룡 썩은물", 천연가스 = "공룡방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ㅎㅎ
유전 성립의 4가지 필수 조건
유기물이 석유로 변했다고 해서 바로 유전(油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석유가 한 곳에 모여 있어야 경제적으로 생산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네 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합니다.
1. 근원암(Source rock)
유기물이 풍부한 암석으로, 석유 생성의 모태가 됩니다. 근원암 내에서 유기물이 열과 압력을 받아 석유로 변환됩니다.
2. 저류암(Reservoir rock)
석유가 모이는 다공성 암석입니다. 사암, 석회암처럼 작은 구멍(공극)이 많은 암석이 해당합니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머금듯, 저류암의 공극에 석유가 저장됩니다.
3. 덮개암(Cap rock)
석유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불투과성 암석입니다. 셰일, 이암(泥岩) 등이 대표적입니다. 덮개암이 없으면 석유는 위로 계속 이동하다가 결국 지표로 새어나가 버립니다. 이렇게 새어나간 석유가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시대나 고대 시대에 발견된 것이죠.
4. 트랩/집유구조(Trap)
석유가 집적되는 구조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배사구조(anticline)입니다.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위로 올라오려는 석유가 이 구조에 갇히게 됩니다.

이미지 설명: 유전의 트랩(집유구조). 근원암에서 생성된 석유가 저류암으로 이동한 뒤, 덮개암에 의해 빠져나가지 못하고 배사구조에 집적되는 모습. (출처: GS칼텍스 에너지학개론)
석유는 물보다 가볍기 때문에 부력에 의해 위로 올라오려고 합니다. 저류암 공극 내에서 아래부터 물, 원유, 가스 순서로 층을 이루게 됩니다. 가스가 가장 가볍고, 원유가 그 다음, 물이 가장 무겁기 때문입니다.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지역은 지구상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석유 매장량이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죠. 자세한 내용은 4편(원유 생산)에서 다룰 예정입니다.
원유의 품질 기준
근데 이렇게 땅속에서 나오는 모든 원유가 같은 것은 아닙니다. 품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죠. 원유 품질을 결정하는 두 가지 핵심 지표가 있습니다.
API 밀도 (API gravity)


![[시리즈 연재] 1-1: 왜 원유 시장을 알아야 하는가](https://raw.githubusercontent.com/sleep2117/Images/master/Pasted%20image%2020260112221007.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