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그레이엄은 천재다. 이전에 홍진채님의 《거인의 어깨》를 읽으면서 왜 그를 천재라고 표현했는지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이번에 자서전을 직접 읽고 나서야 그 말이 가슴으로 와닿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그의 기억력이다. 어린 시절 읽었던 문학작품의 내용, 성장기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 투자에서의 성공과 실패 — 이 모든 것을 마치 어제 일처럼 디테일하게 서술한다. 본인도 자서전 중간에 자신의 기억이 선택적일 수 있다고 솔직하게 인정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범인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단순히 보수적인 가치투자자라고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 인식이 바뀔 수밖에 없다. 100년 전 사람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레이엄은 합성 포지션을 활용해 무위험 수익을 추구하는 방법을 직접 발굴해냈고, 주주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기업에 공격적으로 개입하는 투자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투자의 언어와 프레임워크를 아무것도 없던 시대에 처음으로 만들어낸 사람이다. 보수적이 아니라 선구적이라는 표현이 맞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도덕성이다. 당시 투자 시장은 지금보다 훨씬 불투명했다. 정보 비대칭이 극심한 환경에서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공평하고 투명하게 배분하며 함께 성공하는 길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자서전 전체를 관통하는 건 그의 솔직함이다. 남들이라면 감추고 싶어할 이야기들 — 결혼 생활의 실패, 첫째 아이를 잃은 슬픔 — 을 꾸밈없이 담담하게 꺼내놓는다.
이 책은 투자 기법을 가르쳐주는 책이 아니다. 《증권분석》이나 《현명한 투자자》를 기대하고 펼치면 다소 의외일 수 있다. 이 자서전은 벤저민 그레이엄이라는 한 인간의 삶 전체를 돌아보며, 그 안의 성찰과 감정을 솔직하게 담아낸 기록이다. 투자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싶은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