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 -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한국 격동의 현대사를 일생을 거쳐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 김동조 트레이더의 책을 보고 절판된 책을 중고로 구매해서 얼른 읽었다.
구태여 책을 찾아 읽은 이유를 기억해보자면 교육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농번기에는 농사를 지으러 내려왔고, 친구 노트를 빌려 시험치러만 잠깐 올라가는 변칙 공부를 이어가며 공부를 놓지 않았다. 성공한 이후 고향에 내려왔더니, 나와 함께 농사를 짓던 옆집 친구는 가난한 소작농으로 남아있더라는 이야기. 한국 현대사 격동의 시기, 여러 우연이 스쳐갔겠지만 출발선에서 잠깐 어긋났던 선택이 끝에 가서 서로의 완전히 다른 인생을 만들었던 부분이 너무도 강렬했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책을 찾아봤던 기억이 있었다.
읽은지는 꽤 됐는데, 독후감으로는 차마 남길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복합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을 도저히 글로 풀어낼 자신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번에 읽게된 현대 정주영 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를 계기로 비슷한 시기를 지낸 박승 총재의 책도 정리해보자 싶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일제시대에 깡촌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은행과 미국을 거쳐 중앙은행 경제학과의 탄생을 함께했으며, 보수/진보 정부를 가리지 않고 한국 경제개발 정책에 깊숙하게 관여한 한국 경제발전사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다.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업적은 노태우 정부 시절 경제수석-건설부 장관을 거치면서 계획부터 집행까지 도맡은 1기 신도시 개발과 한국은행 총재 시절 한은법 개정과 현재의 신권화폐를 탄생시킨 화폐개혁이다.
나는 경제발전론을 전공했으며 특히 영국 산업혁명 이후 지난 250년간 각국의 경제근대화 과정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전개되었는가를 비교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은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과정은 다른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울 만큼 역동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국에서 250년 미국에서 200년 그리고 일본에서 150년 걸린 산업화 과정을 우리나라에서는 나의 한 세대동안에 해낼 수 있었다. 우리는 이 기간에 선발자들로부터 모방이익을 극대화하고 이들이 밟아간 중간과정들을 생락함으로써 압축적 발전에 성공한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 변혁기에 나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 한은 총재를 그만둘 때까지 대학교수로 25년간, 한국은행에서 19년간, 그리고 정부에서 2년간 사회에 봉직했다. 나의 사회활동은 대학교수직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셈 인데 이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정치적 대결과 혼란을 지켜보면서 정치에는 절대 관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이것을 내 평생 일관되게 지켰다. 그 대신 나는 우리의 가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으며 그래서 경제학을 공부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개발과정에 필요한 두뇌집단이 대학교수 외에는 거의 없어서 나는 우리나라 경제발전 과정에 깊이 참여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대학 강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면서도 정부의 다양한 정책자문기구나 위원회에 참여해왔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에서는 <서울신문> 논설위원, 전두환 정부에서는 금융통화위원, 노태우 정부에서는 대통령 경제수석 비서관과 건설부 장관, 김영삼 정부에서는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그리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한국은행 총재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자문 국민원로회의 위원으로서 국정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행운을 누렸다.
그러한 격동의 변화를 나는 가난과 고난의 환경에서 맞았다. 나는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모 심는 일, 벼 베는일, 솔가리 긁어 땔감 마련하는 일 등 농사일을 하면서 자랐다. 중고등 학교는 기차통학을 위해 매일 14km를 걸어 다녔다. 그때 내가 입은 옷은 집에서 목화를 심어 그것으로 어머니가 실을 뽑고 베를 짜 만든 옷감에 검정 물을 들여 면 소재지의 재봉틀 집에 맡겨 만든 것이었다. 신발은 검정 고무신이었는데 헤어지면 깁고 땜질을 해서 신었다. 대학 입학시험을 치기 위해 난생 처음 서울에 올라올 때에는 점심으로 고구마를 싸들고 기차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장리나 곱빼기 빚을 얻어 등록을 해놓고는 집에 내려가 농사일을 하다가 시험 때면 올라와 친구의 노트를 빌려 시험을 보는 일이 많았다.
책에서 기억에 정말 많이 남는 부분은 박승 총재가 한국 현대사의 변곡점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현재 대한민국에 어떤 의견을 냈는지보다, 한 개인의 삶이 격동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휩쓸렸는가였다.
내가 자랄 때 우리 집 가족은 할머니와 부모, 형 (1924~50)과 누나 (그리고 밑으로 여동생) 등 모두 일곱 식구였으며 두 누나는 이미 출가한 상태였다. 형은 나보다 열두 살 위였는데 침착하고 마음이 깊은 성품이었다. 초등학교를 나와 일제 치하에서 중학교 진학을 열망했으나 형편이 어려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농사일을 하게 되자 조상의 묘에 가서 지게를 부셔버린 일이 있었다. 그 뒤 일본군에 징집되었다가 2차 대전 종전으로 집에 돌아오셨는데 1950년 7월 불의의 사고로 26세 미혼으로 타계하였다.
내가 열네 살, 중학교 3학년 되던 해인 1950년에 한국전쟁이 일어나 학교가 문을 닫은 뒤로는 거의 1년 동안 학교에 가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피난민 대열도 보고 공산군 통치와 유엔군에 의한 ...

정리해주신 내용을 보면서 많은 걸 느끼네요. 그리고 한 인물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간접적으로 그때 그 시대가 얼마나 열악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간중간 개인의 생각을 남기는 문장을 보면서 공감 됐는데, 그 중 가장 공감됐던 문장은 "좋아하는 것에 인생을 투신하며, 노력할 여지가 있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자각하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시기인가 싶다."입니다. 오늘 하루를 다시 곱씹어보며 감사로 마무리 할 수 있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글 쓰신 것 보고 달려왔습니다. 좋은 내용으로 영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류의 책은 늘 읽고 싶지만 재미가 없어 못읽편인데 글로리아님을 통해 보게되니 재밌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