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오케스트라: 베를린 필하모닉 1933-1945>




살면서 처음 읽게된 종류의 책인데, 나름 흥미로운 부분도 많고 재미있게 읽었다.
책은 논문을 대중서적으로 포장을 해서 출판한 느낌이고, 나름의 함의가 있다기보다는 1차 문헌을 잘 엮어둔 역사책에 의의가 있다. (일단 책의 서문 자체가 논문의 introduction, preface의 format이다) 단일 오케스트라에 이토록 많은 사료가 남아있다는 부분이 참 놀라웠는데,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기록되고 알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신기했다. 아무튼 책이 두껍지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고, 특히나 예체능과는 담을 쌓고 살았던지라 나만의 시각으로 이 책을 보는 내가 나름 재미있기도 했다.
글을 쓰면서 간단하게 찾아보다 알았는데, 역시나가 역시나 역사 페이지가 매우 상세하게 잘 되어 있다.

내가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 (Berliner Philharmoniker)에 대한 정보는 오케스트라 중에 처음으로 구독제를 도입한 곳이라는 것. 너희가 우리를 찾아와서 구독해야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할 정도의 명성은 갖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중에 하나라는 정도. 대중에게 알려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이먼 래틀이 이런 변화를 주도했다고 알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공연장이 굉장히 특이하다. 무대를 중앙에 두고 관객이 이를 둘러싸고 있는데, 듣기론 모든 객석에서 소리가 동일하게 들린다 카더라.
1882년 봄, 빌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은 바르샤바 연주 여행을 앞두고 4등석 기차표만 받았다는 사실에 격분했다. 그들은 이미 지휘자이자 악단장인 벤야민 빌제의 혹독한 통제 아래 오래도록 고통받아 왔다. 이번 일은 말 그대로 마지막 한 방울이었다. 결국 단원들은 반기를 들고 빌제와 결별했다. 이탈한 54명의 단원은 스스로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옛 빌제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지만,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 새로운 오케스트라는 독립적이고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음악 단체, 즉 단원들이 지분을 가진 일종의 협동조합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반세기 만에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유럽 전역을 순회했다. 베를린의 콘서트 에이전트 헤르만 볼프가 합류하면서 최고의 지휘자와 솔리스트들이 필하모니에 모여들었다. 한스 폰 뷜로,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 파블로 데 사라사테, 구스타프 말러, 요제프 요아힘, 페루초 부소니,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야샤 하이페츠, 아르투어 니키슈 등 당대의 거장들이었다. 니키슈의 사망으로 젊은 빌헬름 푸르트뱅글러가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반란에서 탄생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882년 창립 이후, 처음에는 느슨한 연합체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되었다. 이를테면 베를린의 콘서트 기획사들을 통해 공연을 진행하고, 수익을 나누어 갖는 식이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882년 단원들의 자치를 기치로 설립됐다. 파트너쉽 (협동조합)의 지분을 가지고 합의제로 의사결정을 하는 이상적인 형태였다. 그러던 중 세계 1차대전의 결과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고 독일은 초인플레이션을 겪는다. 먹고 살기 힘든데 오케스트라에 재정난이 찾아오지 않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조직적·재정적 부담은 세월이 흐르며 이상적이기만 했던 ‘자유의 기쁨’을 점차 냉정한 현실로 바꾸어 놓았다. 제1 차 세계대전의 결과로서 전후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재정난을 불러왔다. 192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상황은 악화되었다. 자립을 선언하며 출발했던 음악가들은 오케스트라의 생존을 위해 재정 지원을 받아야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그래도 해외 순회공연도 다니고, ‘베를린’이라는 이름과 위대한 작곡가의 산실이었던 독일이라는 출신 덕분에 오케스트라는 정부에 자신의 생존을 deal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예술적 성취가 현실적인 권력도 만들어준 셈이다. 여기에 상황도 기묘하게 잘 맞아떨어져서, 오케스트라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받아낸 지원이 1929년 대공황으로 말짱 도루묵이 된다.
격렬한 협상과 편지 왕복, 그리고 세부 조정의 시간이 흐른 뒤, 1929 년 가을 무렵에는 마침내 일이 정리된 듯 보였다. 그러나 갑작스럽게전 세계 주식시장이 붕괴했고, 정부는 약속을 철회했다. 불안정한 상황과 더불어 새로운 법적 논쟁, 그리고 정치적 우려가 겹치면서, 이후 몇 달-그리고 몇 년-동안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 사이 베를린 필하모닉의 재정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다. 오케스트라 대표 로렌츠 회버는 모든 행정기관을 상대로 지원을 구걸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베를린 시 당국 또한 절박한 편지를 프로이센과 정부의 여러 부처에 보냈다.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시가 마련한 자금과, 몇몇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을 통해 가까스로 버틸 수 있었다. 때때로 국가의 보조금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불규칙했고, ‘실무위원회’ 계획에서 예상했던 금액에는 한참 못 미쳤다.

Paul Joseph Goebbels, 파울 요제프 괴벨스
여기서 오케스트라가 살아남는 방법은 해외 순외공연을 미친듯이 다니는 것 뿐이었다. 국내 마르크가 휴지조각이니 외화를 벌어다 오는 것 말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독일에는 나치 정권이 들어선다. 나치 정권은 선전 도구로써의 베를린 필하모닉의 가치를 알아봤다. 정확히는 괴벨스가.
나치 정권은 오케스트라가 자신들의 ‘국가적 중요성’을 주장하며 내세워 왔던 논거들을 프로파간다로서 활용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급격히 재편되고 있던 문화정책 안에서 국가적 상징에 해당하는 다른 음악 기관들과 나란히 놓였다.
히틀러가 집권 이후 나치의 초기 문화 정책 가운데 하나는 ‘선전부’의 창설이었다. 히틀러의 최측근인 요제프 괴벨스가 이끄는 부서였다. 이 새로운 부처는 학교부터 스포츠, 라디오 편성, 미술 보조금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바이마르 시대에 종종 필요성이 제기되곤 했던 사실상의 문화부 역할을 수행했다. 괴벨스의 부처는 곧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괴벨스에게 문화란 민족적 특성이 드러나는 영역일 뿐 아니라, 그 특성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이기도 했다. 게다가 필하모닉은 독일 음악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1933년 정권 교체 당시 오케스트라는 내무부 관할이었으나, 괴벨스는 지휘권을 자신의 부처가 행사하도록 만들고자 했다.
나치 정권은 문화생활을 장악하려 했고, 음악을 사회적 가치의 핵심 요소로 규정했다. 이는 개인적 신념과 이념적 확신이 혼재된 결과였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당 지도자의 높은 평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정권이 제공하는 홍보 및 독일 경제 회복의 영향으로 전례 없이 폭넓고 다양한 청중에 도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오케스트라는 정치적•프로그램적•전문적 차원에서 엘리트 이미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나치 정권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외부 조직자와의 관계도 재검토되었다. 국가 오케스트라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오케스트라를 대여’하는 관행은 유지될 수 없었으며, 오케스트라 활동은 명확히 선전 임무와 연결되어야 했다. 특히 자체 제작 인프라 구축과 예술감독이 선전부에 직접 책임을 지는 체제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제국 재무 위원회는 선전부를 독점 후원자로 두고 오케스트라를 유일한 제작자로 만드는 방안을 추진했다.

Wilhelm Furtwängler, 빌헬름 ...

재밌어요 시간이 순삭됐습니다.
생소한 주제인데 한번에 쭉 읽었습니다ㅎㅎ

저도 단편적인 정보만 알고 있었는데, 시대의 흐름과 같이 결부시켜보니 흥미로운 지점이 많네요. 뭐든 부담없이 봐야한다는 마지막 말에 무지 격하게 공감합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앞으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을 때마다 이 이야기가 생각날 것 같아요. 참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처음엔 오 처음먹어보는 맛이네 하고 들어갔다가 나치얘기에서 흥미진진해지다가 카라얀에서 소름돋네요. 글 정말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마전에 뮌헨 필 연주회에 다녀 온적이 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거든요.
같이 간 친구랑 "도대체 베를린 필은 어떨까?" 궁금해 했는데, 마침 Gloria님이 베를린 필 글을 올리셨네요ㅎㅎ
잘 모르던 내용이었는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역사적 맥락을 잘 알면 예술을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흥미로운 글이었습니다. 푸르트뱅글러라는 인물을 처음 접했는데 여러모로 입체적인 인물인 것 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