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곡
나는 매일 모든 것의 끝자락에 가까이 다가간다. 물론 우리 모두는 그쪽을 향해 움직인다. 비록 우리가 젊을 때도, 중요한 문제들에 매달리고 있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사유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중략)
이 책이 출간될 때면 내 나이는 여든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니 내가 때로 이곳에서 그 끝자락을 볼 수 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놀랍다. 더 놀라운 것은 내가 나이듦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중략)
나이듦이 좋은 것은 무엇보다 끝자락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놀랍기 때문이다. 내 생애가 완전한 파노라마로 들어오는 것이다. 상쾌한 산들바람과 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깨워준다.
(중략)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 그 고통과 가능성을 둘러보면, 인간의 가능성을 위해서 살아간 수많은 사람의 용기를 목도한다. 노년이란 신체장애가 있는게 아니라면 쭈그리고 앉아 보낼 시간이 아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단지 더 이상 잃을 게 남아 있지 않음을 의미할 뿐이다. 인생에서 공공선을 위해 더 큰 위험부담을 감수할 시간이다.
가장자리를 넘어 레너드 코언이 '불굴의 패배(invincible defeat)'라고 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날들을 내다보건데,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그 길이 기나긴 내리막길이라는 사실이다. 날개를 펴고 날아갈 것인가? 바위처럼 말없이 떨어질 것인가? 아니면 밴시(울음소리로 가족에게 죽을 사람이 있음을 알린다는 여자 유령)의 비명으로 불타오를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안다. 이렇게 멀리까지 온 게 커다란 행운이라는 것을.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볼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이 많다.
...
1장 - 가장자리의 시선 (여기서 내가 볼 수 있는 것)
케임브리지 온라인 사전에서 'on the brink'를 검색하면 "절벽이나 높은 지대의 끝자락, 또는 뭔가 좋거나 나쁜 일이 벌어지려는 시점"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예문이 딸려있다. "그 회사는 몰락 직전에 있었다"
거의 모든 용례가 '포기하기 직전' '넋을 잃기 직전' 또는 '전쟁 발발 직전' 등인데, 왜 이렇게 부정적인 것들뿐인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얼마든지 긍정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