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기관(Genocidal Organ)

학살 기관(Genocidal Or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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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기계
2024.07.17조회수 5회

베다어 문헌에서 볼 수 있는 기묘한 계산에 의하면, 신들의 언어에 비해 인간의 언어가 표현하고 있는 것은 언어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한다.




소리도 없이 등 뒤로 접근해서는, 숨통을 가르고 무기를 든 두 팔의 힘줄을 끊은 뒤, 그대로 허벅지 안쪽의 대동맥을 자른 다음, 마지막으로 심장에 칼을 박아 넣는 데까지 3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전장은 그 어떤 것도 사전 정보대로 풀리지 않았다. 불확실성은 제거될 수 없었다. 그렇게 때문에 그런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는 것과 동시에, 그 불확실성이 실제로 발동됐을 때의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각 대원들에게는 대상의 인물상을 조립하는 일이 요구되었다. 한마디로 죽일 상대의 모습과 인생을 생생하게 상상하라는 것이었다.


상대에게 애정을 품을 정도로 리얼하게 상상한 뒤에 죽인다는, 최악의 사디즘적 취미였다.




새하얀 병원의 새하얀 정적 속에서, 연명 치료 중단에 동의하는 파일이 내게 내밀어졌다. 연명 치료를 종료하겠냐는 질문에, 예라고 하는 나 자신의 말과 지장에 의한 인증이 뒤따랐다. 그러자 의식이 없는, 다시는 그것이 깃들 일이 없는 육체에서 분자 기계들이 철수했고 어머니는 바로 죽음을 얻었다.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제일이다. 윤리의 벼랑에 서게 되면 의문 따위는 집어던져라.


내면의 무신경을 계발하라.

세계에서 가장 둔한 남자가 되어라.

옳으니까 옳다는 동어 반복을 받아들여라.




인간의 정신은 너무나 취약해서, 자신이 죽이려는 대상의 인생을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는 개인이라면, 살인 행위가 불러오는 정신적 후유증을 앓을 위험은 보다 심각해진다.




나는 이 세상에 목숨의 가격이 말도 안 되게 싸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무가치 이하인 곳들이 잔뜩 남아 있다는 것을 안다.




구소련 영토였지만 공산당이 정권을 잃은 뒤에 독립하여 자원 문제로 러시아와 대립하다는, 소련 붕괴 이후 흔히 있었던 노선을 걸어온 나라였지만, 종교와 관련된 문제는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 몇 년 전까지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대립이 심각해진 것일까?

어째서 학살이 일어날 정도로 증오가 급속히 팽창한 것일까?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인 기세였지만 거기에 대해 제대로 된 가설을 제기한 학자는 아직까지 없었다.




"한자가 멋있더라고요."


"의미 정보가 소실된 글자는 정보가 아니라 의장이자, 하나의 패턴이나 그림에 가까운 법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 문화가 배척당하기 쉬운 것만큼이나 숭배나 미화의 대상이 되기도 쉬운 법이야. 이그조틱이나 오리엔탈 같은 말이 지닌 쿨한 느낌은,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코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나에게는 말이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여겨지지 않는다. 말을 리얼한 촉감과 실체를 지닌 존재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말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떠다니는 관계성의 그물이 아니라 사람이 지정하고 구속하는 실체로 보였다. 수학자가 수식을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끼고 허수를 리얼하게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물리학자는 말로 사고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말이나 수식을 통해서 발견하지 않았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그 천재는 말이나 이론적인 구성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 순수한 정경으로서, 이미지로서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것이다.




소년들은 '국민이 아닌 누군가'에서, 슈퍼마켓 진열대에 있는 상품으로 승격하기를 바라며 병사가 된다. 소년들에게 자유는 없었다. 자기 부모를 죽이고 좋아했던 소녀를 능욕한 사내들과 같은 패거리가 되든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죽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불에 탄 시체를 본 적이 있었다. 잘 구워 껍질이 바삭해진 치킨 같았다. 불에 타면 근육이 수축하고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뼈가 부러지는 것을 보면, 인간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물리적인 존재, 즉 소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옥은 여기 있습니다. 머릿속, 뇌 안에. 대뇌피질의 주름 패턴에. 눈앞의 풍경 따위는 지옥이 아니죠. 도망칠 수 있으니까요. 눈을 감기만 하면 사라지고, 우리는 미국으로 돌아가서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옥에서는 도망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건 이 머리 안에 있으니까요.




모스크의 바닥을 기어가는 사이에 클래식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과대망상을 지닌 이들이 흔히 듣는 바그너였다면 만화 같아서 재밌었겠지만 아쉽게도 다른 곡이었다. 베토벤의 <월광>. 달도 뜨지 않은, 죽은 자의 기름이 타오르면서 구름 밑바닥을 붉게 비추는 지옥 같은 밤에 듣기에는, 비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곡이다.




비관용을 어미로 삼아 태어난 테러리스트 놈들 때문인가? 아니, 아니야. 그딴 것들은 군을 수도에 들이지 않아도 경찰력만으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는데 ... 왜, 어쩌다 이렇게 됐지?




총은 자유를 가져다 준다. 간단히 죽을 자유조차도. 성인 자살자 중 70%가 이 방법을 이용한다는 것이 이 방법이 얼마나 간단한지를 증명할 것이다. 노숙자부터 기업 CEO까지 총은 미합중국 시민에게 평등하게 자살할 기회를 준다. 헤밍웨이도, 헌트 톰슨도, 커트 코베인도 총으로 쏘았고, 별로 준비할 것도 없기 때문에 주머니에서 슥 꺼내서는 갑자기 죽어버릴 수 있다. 버드 드와이어가 기자 회견 도중 갑자기 자기 머리를 쏴버린 영상은 아직까지도 인터넷 곳곳에 남아있다. (커트코베인은 자살하기 직전 드와이어의 자살 비디오를 몇 번이나 되돌려가며 감상했다.)




아무래도 전 세계가 미치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아프리카에서, 아시아에서, 유럽에서, 한마디로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내전과 민족 분쟁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그 대부분의 경우에서 UN 결의에서 언급한 '간과할 수 없는 비인도적 범죄'가 행해졌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학살이 내전이라는 소프트웨어의 기본 사양이 되어버린 것처럼.



언론으로부터 외면당한 학살의 비명 소리는 인터넷의 바다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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