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준비, 무엇을 어떻게?

노후 준비, 무엇을 어떻게?

avatar
마론백
2025.07.18조회수 79회

시작하면서

지난 글에서는 우리가 왜 노후준비라는 과제를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의 뇌가 본능적으로 먼 미래보다 현재의 만족을 좇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현재 편향’의 함정, 그리고 수명증가와 핵가족화라는 거대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우리는 노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되었다는 현실을 짚어봤다. 또한 ‘은퇴’로 인한 소득 단절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내 자산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월급이라는 첫 번째 엔진이 힘차게 돌아갈 때 ‘자본소득’이라는 두 번째 엔진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제 ‘왜(Why)’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면, 다음은 ‘무엇을(What)’ 그리고 ‘어떻게(How)’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찾아 나설 차례다.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무작정 투자를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노후의 재무적 안정성을 위협하는 명확한 적들의 정체부터 알아야 한다. 우리가 마주할 가장 큰 리스크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생각보다 오래 사는 장수 리스크, 화폐가치의 하락을 부르는 인플레이션 리스크, 그리고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로 목돈이 필요한 이벤트 리스크다.


이 세 가지 리스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우리가 그 발생 시점이나 규모를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가 얼마나 더 살지,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 언제 아프거나 다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리고 바로 그 불확실성 때문에, 은퇴를 앞둔 이들은 막연하면서도 깊은 불안에 휩싸인다. 안타깝게도 매번 비슷한 금융사고가 반복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무적 불안감에 쫓기다 결국 자신의 통제력을 완전히 벗어난 위험한 상품에 손을 대고, 소중한 노후 자금을 한순간에 잃고 마는 것이다.

image.png

그렇다면 이 거대한 불안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려야만 할까? 나는 그 해법의 실마리 중 하나를 현대 심리학 이론에서 제안해본다. 바로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ACT)'라는 이론이다. ACT의 창시자인 스티븐 헤이즈 박사는 '고통'을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보고, 그것과 싸우기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행동'에 집중하자고 제안한다.

ACT의 지혜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불안이나 걱정 같은 고통스러운 감정의 파도와 싸우려 하지 말고, 오히려 그 파도 위에 올라타는 서퍼처럼 유연하게 받아들이라는 것(수용)이다. 그리고 그렇게 아낀 에너지를,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향해 꾸준히 노를 저어 나가는 데 집중하라는 것(전념)이다. 이 '수용'과 '전념'이야말로 불안이라는 파도를 다스리는 가장 성숙한 감정 조절 방식이다.


이 지혜는 노후 준비라는 불안을 줄여주는 하나의 태도를 제시해준다. 장수, 인플레이션, 질병이라는 위기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음을 담담히 '수용'해야 한다. 그것들과 싸우느라 힘을 빼는 대신, 우리가 온전히 '전념'해야 할 단단한 땅은 어디일까? 바로 이 세 가지 영역이다.

첫째, 세금과 비용처럼 새어나가는 돈을 막는 것. 둘째, 현재의 씀씀이를 관리해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것. 셋째, 위험을 분산하는 자산배분 원칙을 지키는 것. 이것들만이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자, 노후 준비의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가장 명쾌한 해답이다. 정리하자면,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은 담담히 받아들이되,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오늘의 행동에 온전히 전념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성숙한 태도다.

이제부터 각각의 리스크를 관리 하기 위해 자산을 어떤 형식으로 배분 해둬야할지, 그 구체적인 방법들을 하나씩 짚어보겠다.


장수 리스크

노후의 3대 리스크 중 첫 번째는 바로 ‘장수 리스크’다. 나는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뭔가 어울리지 않는 말의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장수(長壽)’는 보통 축복의 의미로 쓰이지 않던가. 어릴 적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면 ‘오래오래 건강하게 장수하세요’라고 인사했던 기억이 선명한데, 그 좋은 말에 ‘리스크’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붙어 있으니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오래 사는 것이 위협이라니, 대체 무슨 의미일까?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재무적 관점에서 본다면 오래 사는 것은 분명한 위험이 맞다. 우리의 노년은 생산 활동은 멈춘 채 오직 소비만으로 남은 생을 보내야 하는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차가운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재무적 안정만을 위해서는 차라리 일찍 죽는 편이 낫다는 끔찍한 결론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수많은 삶의 층위 중 오직 ‘재무적 관점’이라는 좁은 렌즈로만 노후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중요한 전제를 마음에 새기고, 다시 재무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재무적 관점에서 오래 사는 것은 위험이 맞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오래 살 것이라고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금방 죽을 것이라 여기는 경우가 훨씬 많다. 사무실에서 상담하다 보면 "내가 언제 죽을 줄 알고!" "내 연금 내놔!"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이러한 심리적 부인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내 고등학교 시절, 힙합에 푹 빠져 살던 한 친구가 떠오른다. 그는 늘 헐렁한 옷에 커다란 헤드폰을 목에 걸고 다녔고, 리듬을 타는 듯 건들거리며 걷곤 했다. 술담배는 안 하는 건실한 친구였지만, 가끔은 냉소적으로 이상한 말을 내뱉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이것이었다.


"나는 스물일곱 살이 되면 죽을 거야."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친구가 서른도 되기 전에 삶을 마감하겠다니. 게이트 키퍼 교육을 들었던 지금의 나라면 그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었겠다. 하지만 평범한 남고생이었던 나는 이렇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만으로 스물일곱? 아니면 그냥 스물일곱?" (물론 걸쭉한 욕이 추임새로 섞여 있었음은 생략한다.)


내 반응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서른은 너무 늦고, 스물다섯은 너무 빨라. 스물일곱이 딱 좋겠어."


그로부터 10년도 훌쩍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 힙합 소년은 만으로든, 부르는 나이로든, 스물일곱을 무사히 넘기고 지금은 127살까지 살 기세로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헬스클럽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는 말한다. "나이가 드니 살려고 운동하게 되더라."


그 친구의 우스꽝스러운 변화는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지금 당장은 먼 미래의 삶이 와닿지 않아도, 막상 그 나이에 다다르면 생각은 바뀌게 마련이다. 70세 어르신은 80세까지는 살고 싶다 하고, 80세 어르신은 90세를 바라본다. 현재의 ‘나’에게 80대의 ‘나’는 낯선 타인처럼 느껴지겠지만, 그 시간은 반드시 찾아오고 생각보다 훨씬 더 길고 중요하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시기에 우리의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나는 다르겠지’라고 생각하지만, 통계는 우리가 높은 확률로 그 현실에 속하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 ‘나는 금방 죽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통계는 우리가 높은 확률로 아주 오래 살게 될 것임을 보여준다. 2023년 기준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5세를 넘었고,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연령인 최빈사망연령은 90세에 육박한다. 지금보다 의료 및 위생 수준이 낮았던 시대에 태어난 분들이 이미 90세를 살고 있다는 의미다.

기대수명 추이(2011~2021년)

우리는 이 냉정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마음은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지만, 우리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버틴다는 사실 말이다. 이 명백한 확률을 인정하고, 오래 살게 될 미래의 '나' 역시 존중받고 소중히 여겨져야 할 바로 '나' 자신임을 인정해야한다.

연금자산의 필요성

오래 살게될 위험은 받아 들였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은 바로 연금을 준비하는 것이다. 굳이 목돈이나 투자성 자산이 아니라, 연금을 준비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 ‘마르지 않는 월급’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

먼저...

회원가입만 해도
이 글을 무료로 읽을 수 있어요.

이미 계정이 있으신가요?로그인하기
댓글 6
avatar
마론백
구독자 374명구독중 34명
영문학자이자 금융강사. 단순히 재무적 안정이나 부자되기를 넘어, 물질과 정신 모두 풍요로운 삶을 지향한다. 이를 '멋지게 나이들기'라는 철학으로 삼고, 이곳 <멋나들 연구소>에서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