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해진 욕망
나는 ‘죄악’을 파는 기업에 투자하길 좋아한다. 이건 단순히 술, 담배, 도박 같은 주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대로 대중이 원하는 것을 파악한 기업을 의미한다. 기업의 본질은 누군가의 필요를 대신하고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필요(Needs)’는 재미가 없다. 인간의 생물학적 위장은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부자라도 하루에 다섯 끼를 먹을 수는 없다. 1,000만 원짜리 식사가 1만 원짜리 식사보다 1,000배 더 배부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욕망(Desires)’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000만 원짜리 식사는 허영심을 채워주거나, 미식이라는 탐닉을 충족시킨다. 이것은 배고픔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투자자의 관점에서 볼 때, 필요는 닫힌 구간이지만 욕망은 열린 구간이다. 무한대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이 지점을 정확히 꿰뚫었다. 그는 욕망을 ‘결핍’으로 정의했다. 인간은 대상을 원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 대상이 채워줄 것이라 믿는 ‘환상’을 욕망한다. 하지만 그 환상은 대상을 손에 넣는 순간 증발한다. 충족되지 않은 결핍은 즉시 또 다른 대상으로 옮겨간다. 밑 빠진 독. 이것이 라캉이 말한 욕망의 구조다.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⑦ 지옥의 지형도](https://www.catholictimes.org/-/raw/srv-catholictimes/data2/content/image/2021/03/30/.cache/512/202103300076345.jpg)
단테는 <신곡>에서 이 끝없는 갈증을 ‘지옥’이라 불렀다. 7가지 죄악-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식탐, 정욕-은 모두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와 같다. 자신을 파괴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 ‘지옥의 속성’을 기가 막히게 상품화했다. 기업들은 7대 죄악을 비즈니스 모델로 삼아 우리를 유혹한다. ‘나태’하고 싶은 마음은 ‘편리함’이라는 구독 서비스가 되고, 타인에 대한 ‘질투’는 SNS 속 명품 광고가 된다. ‘정욕’이 돈이 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기업은 우리의 결핍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지옥의 불구덩이 대신 결제 창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 상상력을 조금 더 밀어붙여 본다. 영화 <매트릭스> 속 인간 배터리가 떠오른다. 기계가 주입하는 전기 신호만으로 뇌는 완벽한 쾌락을 느낀다. 혹은 영화 <인셉션>의 꿈속 세상. 그곳은 물리적 한계가 없는 궁극의 도파민 천국이다.
누군가는 가상보다 현실의 육체가 중요하다고, 지적인 성취가 중요하다고 반박할지 모른다. 하지만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느끼는 현실 또한 감각 기관이 보내온 신호를 뇌가 재구성한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우리는 절대로 ‘현실’을 마주할 수 없다. 그저 주어진 신호로 상상할 뿐이다. 그러니 정교하게 속일 수만 있다면, 가짜와 진짜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어쩌면 인류의 종착지는 매트릭스 속 배터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50억 년 뒤 태양이 폭발해 지구가 멸망한다는 예언처럼 너무 먼 이야기다. 투자자인 내가 주목하는 것은 그 종말의 풍경이 아니다. 그곳으로 향해가는 ‘과정’이다.
태양이 식기 전에, 우리가 먼저 마주할 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욕망 충족 비용의 하락’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혁신한다. 경쟁자를 이기기 위해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자극적으로 욕망을 공급한다. 그 결과, 과거에는 귀족이나 왕족만 누릴 수 있었던 쾌락들이 헐값이 되었다. 옛날에는 ‘미식(Gourmet)’이 상위 1%의 전유물이었으나, 지금은 설탕과 지방으로 범벅된 가공식품이 편의점에 넘쳐난다. 뇌가 느끼는 쾌락의 강도는 비슷하지만, 비용은 수백 분의 일로 줄었다.
이것이 현대인이 점점 내향적으로 변해가는 진짜 이유다. 굳이 밖으로 나가 비싼 돈을 쓰고 정서적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 배달 음식을 시켜 놓고 넷플릭스를 켜는 것. 단돈 몇 만 원이면 황제 부럽지 않은 도파민 샤워가 가능하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저렴하게 욕망을 소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바로 여기서 거대한 모순이 발생한다. 욕망을 채우는 비용이 0에 수렴해 간다면, 남는 돈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적은 돈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그런데 소득은, 자본은 계속 쌓인다. 매트릭스의 배터리가 되기 전, 우리는 먼저 ‘돈이 갈 곳을 잃어버린 시대’를 통과해야 한다.
세상에 돈이 많다. 나 빼고.
‘돈이 갈 곳을 잃었다’는 말에 코웃음 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당장 스마트폰을 켜면 SNS 속 세상은 욕망의 용광로처럼 보인다. 1억 원짜리 스포츠카를 타고, 하룻밤에 수백만 원짜리 호텔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내가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는 건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돈만 있다면 언제든 도파민의 파도 위에서 서핑을 탈 것이다."
개인적 관점에서 이 믿음은 유효하다. 그러나 거시적 현실은 조금 다르다. 나라는 개인의 욕망은 무한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