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아재 멘토링] Week 1 - 실전 투자를 위한 경제사상사 (feat. 베센트와 워시)















세이의 법칙(Say's Law)은 "공급이 스스로의 수요를 창출한다"는 낙관론인 반면, 케인즈주의(Keynesianism)는 "수요가 부족하면 대공황 같은 경제 위기가 오므로 정부가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부 개입론입니다.
대공황(1929년) 이전까지 서구 경제학을 지배하던 고전파 경제학의 핵심이 세이의 법칙이었으나, 대공황으로 이 법칙이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케인즈주의라는 현대 거시경제학이 탄생했습니다.

장바티스트 세이(Jean-Baptiste Say)가 주장한 이 법칙은 경제 전체를 거시적으로 보면 공급 과잉으로 인한 만성 불황은 절대 일어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논리: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노동자에게 임금이 지급되고, 땅주인에게 임대료가 지급됩니다. 즉, 무언가를 생산(공급)한다는 행위 자체가 타인에게 소득을 제공하는 행위이며, 이 소득이 다시 다른 물건을 사는 돈(수요)이 된다는 뜻입니다.
시장에 대한 신뢰: 설령 일시적으로 어떤 물건이 안 팔리더라도,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격과 임금이 알아서 내려가므로 결국 다시 모든 물건이 팔리고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얻는 완전고용 상태로 돌아간다고 믿었습니다.
이 낙관론은 1929년 대공황으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공장은 넘쳐나는데 물건은 팔리지 않았고, 실업자는 길거리에 쏟아졌습니다. 고전파 학자들의 말대로 가격과 임금이 떨어져도 시장은 살아나지 않았고, 불황은 수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세이의 법칙이 틀린 이유는 '돈을 쓰지 않고 저축(유출)하는 현상'과 '한 번 올라간 임금과 가격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 하방경직성'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미래가 불안해 돈을 움켜쥐자 시장의 순환이 멈춰버린 것입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는 1936년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을 통해 고전파 경제학을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유효수요 이론: 케인즈는 단순히 사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실제로 물건을 살 수 있는 돈을 가지고 구매하는 '유효수요(Effective Demand)'가 경제의 크기를 결정한다고 보았습니다. 대공황의 원인은 공급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유효수요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개입(재정 정책): 민간(기업과 가계)이 돈을 쓰지 않아 수요가 얼어붙었다면, 정부가 빚을 져서라도 돈을 써서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체적 사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New Deal)이 대표적입니다. 정부가 거대한 댐(후버댐 등)을 짓는 공공사업을 벌여 실업자들을 고용했고, 월급을 받은 노동자들이 다시 소비를 시작하면서 경제의 엔진이 다시 돌기 시작했습니다.
세이의 법칙이 지배하던 시기를 '미시경제학(개별 시장과 공급 중심)'의 시대라고 한다면, 케인즈의 등장은 국가 전체의 총수요를 관리하는 '현대 거시경제학'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후 자본주의는 시장에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정부가 세금과 재정지출로 경기를 조절하는 '혼합경제' 체제로 나아가게 됩니다.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과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의 등장으로 인해 케인즈주의는 경제학의 중심 왕좌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대공황을 극복하며 승승장구하던 케인즈주의는 1970년대에 치명적인 한계에 부딪혔고, 이를 틈타 시장의 자유를 다시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케인즈주의자들은 물가와 실업률이 반대로 움직인다고 믿었습니다. 즉, 정부가 돈을 풀면 물가는 조금 오르지만 실업률은 떨어진다는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석유 파동)가 터지면서 이 공식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현상: 경기 침체(Stagnation) 속에서 물가 상승(Inflation)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발생했습니다.
케인즈주의의 무능: 케인즈주의 처방대로 불황을 해결하려고 정부가 돈을 풀면 물가가 미친 듯이 치솟았고, 반대로 물가를 잡으려고 돈을 줄이면 실업률이 폭등했습니다. 정부가 손을 쓸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입니다.
정부의 실패: 국가가 시장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다 보니 정부 관료주의의 비효율성, 과도한 규제, 복지 확대로 인한 재정 적자 등의 부작용인 '정부의 실패'가 드러났습니다.
케인즈주의가 무너지자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을 필두로 한 '통화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 학자들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케인즈를 비판하며 "정부는 시장에서 손을 떼고, 돈의 양(통화량)만 안정적으로 관리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대표적인 정치적 인물이 영국의 대처 총리(대처리즘)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레이거노믹스)입니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경제를 이끌며 글로벌화와 성장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율성만 주어졌던 금융시장의 탐욕과 양극화라는 약점을 드러냈습니다.
결국 현대 경제는 세이의 법칙(신자유주의)과 케인즈주의 사이에서 어느 한쪽만 고집하지 않습니다. 평소에는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되, 위기 상황이 오면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시장을 구출하는 등 두 이론을 상호보완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통화주의는 19세기 영국의 '통화학파(Currency School)'와 '은행학파(Banking School)' 간의 논쟁에서 통화학파의 주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조입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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