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협'이 공동체의 이익에 기반한 윤리로 확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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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능성은 단 하나,
협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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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것을 보장할 수 있는가?
목적을 이룬 후 어떤 것도 취하지 않고 물러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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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한 성과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목적은 사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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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윤리에 따르면, 협은 의(義俠)로써 행동하고
나그네(俠客)로 물러나야 한다.
- 춘추전국 이야기 9권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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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은 일종의 행동철학이다.
시스템에 의한 '법'이나 윤리에 의한 '덕'이 아닌
오롯한 방향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의'를 행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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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협'은 항상 '객'일 수 밖에 없고
사회의 중심에서 벗어나 외로운 자리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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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인의 방향성이 '대의'를 따르는 순간이 오는데
이 때의 협은 더이상 변두리의 행동 철학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거대한 흐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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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름에 응하는 협객을 영웅이라고 부르고
세상을 바꾼 영웅들은 모두 협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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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작은 협을 보았지만 아쉬움이 더 큰 하루이다.

그때 본 협행은 모기업인의 무주상보시와 같은 유형이었습니다.

와,,,아직 강호에는 도의가 죽지 않았군요. 이렇게 또 협과 객을 배우고 갑니다~

한구레 양아치들도 극도를 걷는 협객을 자칭하는 것을 보면 협행을 더럽히는 것도 지극히 간단합니다. 행하고 사사로이 취했다고 사익을 거둔 것을 의심하면 의혹을 제기하기에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없으나 의혹을 해소하는데에는 열배는 힘든 것이 현생의 이치입니다. 매체가 발전할수록 협의를 행하는게 어려워지는 세태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