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성이란 남들이 묻지 않아도, 니 스스로 능동적으로 사고를 해내는 것이다.
2가지 이유로 힘들다.
1. 인간은 대개 피동적이다.
2. 인간은 주변환경의 요구사항을 충족하는것에만 만족하려 한다.
달리 말해, 주변환경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아들러가 제시한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
즉, 패배자의 느낌을 받게 되고, 박탈당한다는 느낌,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이 강해지면 자살 충동, 무기력증, 등을 느낄 수 있다.
반대의 경우 극복의지가 생기는데, 이 때 권력을 추구하는 경향, 지식을 추구하는 경향이 생겨난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그것이 도덕적 기준에서 악으로 가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만.
학생들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1. 학습방법을 모른다.
2. 갑과 을 관계에서 언제나 을의 위치에 있다. 갑의 눈치를 본다. (부모/선생/)
이것은 사회학적 용어로 '상황정의'가 갑에게서 비롯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은 상황정의뿐 아니라, 상대방의 '프레임/학습방식'마저도 통제하기도 한다.
따라서
학생은 생각하는 방법, 학습하는 방법 마저도 주변환경이 요구되는대로 통제되게 된다.
이는
니네들이 부모한테서 "무조건 문제풀어라. 외워라." 라는 강요를 당해본적이 있다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어떤 선생이 "외우는 게 장땡이야."라고 했다고 하자. 이 선생이 그래서 매번 잘 외우고 있는지 테스트하고 있다고 해보자.
여기엔 논쟁의 여지가 생긴다. 그런데 여기엔 권력이 개입된다. 다름 아니라 그 상황을 좌지우지 하는 선생이 권력을 잡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 때 쓸데없는 사건이 생기는데 다음과 같다.
1. 선생이 자신이 정의한 학습방식대로, 학생들의 학습방식을 컨트롤한다.
따라서 이 선생과 갑과 을의 관계에 있는 학생은 이렇게 무식하게 외우는 것이 기준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2. 그 상황 정의 내에서, 학생이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학생은 '따'가 된다.
학생은 선생과 이 문제로 논쟁하게 된다.
그러나 자존심이 개입되는 순간, 학생은 선생에게 문제아로 찍히고, 두들겨맞을 단서만 제공하게 된다. (통하지 않음1)
주변 학생들은 이를 판단할 기준도 없지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