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적 주체의 투자에서 벗어나는 경험





나르시시즘이라는 정신분석학적 단어는 오늘날에 남용되는 측면이 조금 있다.
본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인문학적인 주석을 몇가지 달자면 나르시시즘의 어원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라는 인물에서 따왔다. 나르키소스는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우물에 빠져죽었으니 나르시시즘도 이와 비슷하다.
심리학자인 프로이트가 이 나르시시즘을 설명한 것이 기억에 남는데 우리는 흔히 "~~에 신경을 쓴다" 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서 신경 에너지(리비도)는 어쨌든 한계선이 있고 그 에너지는 필요에 따라 적정하게 분배된다.
이 에너지를 자신에게 온전히 사용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나르시스트의 완전한 정의다.
그런 사람은 단순히 자신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빠져죽고 주변의 타자를 수단화 시킨다.
최근에 카페에서 시끄럽게 욕하면서 떠드는 중학생을 본 적이 있는데 점원이 그 중학생에게 주변 분들이 듣기 거북하시니 조용히 좀 부탁드릴 수 있겠냐고 정중하게 이야기하더라 근데 돌아오는 답변이 재밌었다. "아..들으라고 한 건 아닌데요"
이걸 우리는 흔하게 뉴스에서나 미디어에서 보기도 한다. 이게 전형적인 나르시스트다.
나르시스트에 대해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인 이게 단순한 자기애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르시스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타자를 자신의 그림자처럼 만들고, 타자의 타자성을 인식하는 능력이 없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경우에만 의미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리비도가 자신을 향한다)
성공 우울증이라는 기괴한 단어가 나온 맥락도 이와 비슷하다. 그에게 성공은 타자를 통한 자기 확인을 가져다준다. 나르시스즘적 주체는 타자의 주체성을 빼앗고 주체의 에고를 확인해주는 거울로 전락시킨다.
성공한 사람은 끊임없이 타자가 자신의 에고를 확인해주길 원하며 끝도 없이 올라가지만, 그것의 본질은 자신이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기 보다는 결국 나르시시즘적 퇴행으로 나르키소스처럼 우물에 빠져죽는 일이다.
문제는 현대인의 99% 이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나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다고 여기기까지 한다.
이를 무시한 대가는 어마무시하다. 모두가 모두에게 소외되고 ...

나이가 현명함의 징표는 아닐지라도, 일반적으로 경험의 깊이와 비례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처음 tolo님의 글을 접했을 때에는 저보다 연륜이 훨씬 깊은 분이 아닐까 짐작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tolo님께서 재수생이심을 알게 된 후에는 그 사실에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네요. 매번 작성하시는 글에서 드러나는 깊은 지식과 그 지식을 분석적으로 탐구하는 태도에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tolo님의 좋은 글을 기대하며 응원하겠습니다.

먼저 사유 하신 분들을 열심히 따라가는 중인거죠..ㅎㅎ 저도 을오징어님 글이 좋아요. 응원 감사합니다.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점에서 투자로 연결되는 지점이 매력적이네요. 어찌보면 지금 사회는 나는 특별해야만 한다라는 집단강박적 나르시시즘에 빠진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존재 그 자체로서 특별하기보다는 사회에서 이래야 특별하다라는 집단 무의식적 가치를 따라가는 특별함 추구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라고 느껴집니다. 말씀대로 투자에서도 내가 가지고 있는 종목을 사랑한다라는 것은 존재 그 자체로 그냥 그 모습 그대로 바라보아야하는데 개인들은 가치중립적 사물 혹은 종목에 투자하면서 자신의 에고를 투영하는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돈을 버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 자신의 자아라는 것을 모른 채 나르시시즘적 투자(사)를 하고 있죠. 그런데 사랑이란 프롬이 이야기했듯이 존재 그 자체로 바라보고 수용하기위해 노력하는 것인데 개인들은 그저 자신에게서 멀어진 채 에고에 빠져 사랑이 아닌 집착을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저의 문제점이라고도 생각되는데 이러한 부분의 맥을 짚어주셔서 저의 투자방식에 대한 성찰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역시 저의 무의식적 문제점들은 투자에서도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추가적으로 궁금한 것이 이러한 나르시시즘적 투자방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가격의 변동과 별개로 나의 종목을 나의 투자를 그 자체로서 수용하고 발전시키며 동시에 유지하도록 노력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바라보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투자방법론에 대해서는 많이 무지한지라 적절한 질문이었는지 염려가 되지만 질문 드려봅니다.

저도 잘은 모르지만.. 게이치로의 <나란 무엇인가>를 인용해보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 사람과 관계 맺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기도 해요. 우리는 개개인마다 그 사람 앞에서 발현되는 일종의 패턴들이 있고, 그 "패턴을 구사하는 나"가 본인의 추구미에 부합하면 그 관계에서 자기애를 느끼죠. 투자는 보통 독립적이고 고요한 순간인데 누군가바라보지 않아도, 혼자 끙끙되는 내 모습이 아름 답다면 사랑한다고 할 수는 있겠죠.

그렇군요. 누군가 바라보지 않아도, 혼자 끙끙되는 내 모습이 아름답다면 투자를 사랑한다라고 볼 수 있겠네요. 결과가 아닌 과정의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전 스무살때 서든어택만 했는데.. 대단하심

저도 옵치중독자라서 며칠전에 잠도 안자고 해서 6년만에 마스터 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