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덤 스미스로 보는 관세 전쟁과 기업 독점




나는 어렸을때부터 통념에 의문을 던지는 것을 좋아했다. 시작은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의 '왜 공부를 해야해?' , '왜 돈을 벌어야해?' 식의 질문이였고 우리 부모님은 그런 내 호기심에 대답하는데 시간을 많이 쓰셨다.
살면서 어떤 단순한 선택이 인생을 바꾸듯이 우리 부모님은 '원래 그런거야' 식의 대답보다는 책을 손에 쥐어주셨고 덕분에 나는 오늘까지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책에서 찾곤한다.
사춘기때 이런 질문들은 조금 도발적이고 어려워졌다. 가령 '신은 존재하나' , '왜 살인은 안되나' , '왜 성욕은 상품화 할 수 없는가' 등에 대한 대답이 궁금했고 자연스럽게 철학에 빠져 고3의 직업란에는 철학자라고 쓰기도 했다.
이런 습관들은 투자에서도 똑같이 들어나는데 가령 트럼프의 관세 정책을 보고 그것이 왜 인류에게 위협적인지 의문을 품기도 했고 구글에 대한 투자를 고민할때 독점이 왜 문제가 되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내 어린 시절 질문이라는 아이의 유모가 오래된 고전들이였으니 오늘 날의 질문도 오래된 책에 답이 있지 않을까해서 오래된 경제학자를 꺼내들었다. 그 이름은 Adam Smith(1723~1790)이다.

오늘날 자본주의를 살아가면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는 애덤 스미스일 것이다. 아마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그의 철학이나 생애를 아는 사람은 그것보다는 적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1723년 스코틀랜드의 작은 항구 도시 커콜디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시기에 집중해보자, 그는 1723년생이다.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뉴턴은 1726년에 서거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애덤 스미스가 태어난 시점은 교회에서 과학으로 인간의 사고가 전환되는 어수선한 시기였다.
애덤 스미스는 다행하게도 이 사이에서 과학적 사고관을 좋아했나보다, 그의 유년기는 뉴턴의 인과율에 대해 이해했고 코페루니쿠스에 대해 강의할 정도로 천문학을 좋아했다.
오늘날 많은 보수주의 정치학자들이 애덤 스미스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자유시장을 강조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애덤 스미스의 지적 뿌리는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진보적인 사람이였다.
그가 대학생활을 보낸 옥스퍼드 대학교에서는 엄격한 검열 규제가 있었는데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본인의 스승인 흄의 명저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를 압수당하기도 했고, 아일랜드 계몽주의 철학자 프랜시스 허치슨의 사상을 본인의 초기 철학으로 많이 반영했다.
흄과 허치슨은 당시 지배적인 종교 교리에 맞서는 인물이였던 것을 고려 했을때, 오늘날 보수주의자들과 애덤 스미스의 사이가 가깝다는 것은 꽤 놀랍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들이 애덤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실 그는 경제학을 가르친 적도 없고, 에초에 경제학의 개념이 없을 때이니 경제학을 배운 적도 없다. 경제학이라고 따로 이름이 붙여진 시점은 20세기에 들어와서이다.
그런데 스미스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은 오해는 아니다. 오히려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그가 쓴 불멸의 명작 <국부론> 때문이지 않을까?
성경의 도입부라고 할 수 있는 창세기 1장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렇게 세상은 만들어졌다. 과연 애덤 스미스도 그렇게 경제학을 만들어내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이전에는 프랑스의 중농주의자들이 있었다.그들의 주장은 단순하다.
부는 금과 은을 궁궐에 박아두는 것에 비롯하는 것은 아니라, 생산력에 비례한다.
그렇기 때문에 농민만이 부를 생산할 수 있으며 다른 노동자들이나 계급은 그러지 못한다
중농주의자들 덕분에 더 이상 궁궐의 창고에 금과 은을 박아 넣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에 주목했고 곧바로 토지 임대료를 낮추거나 무역 규제를 철폐하는등의 정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애덤 스미스는 중농주의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였지만, '농민들만이 부를 생산할 수 있다' 라는 논지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서비스업과 상업, 제조업들이 중농주의자들의 논의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애덤 스미스는 이후 프랑스에 조금 더 머물렀고, 무료한 시기 쓰고 있던 책의 집필을 끝내 1776년 3월 <국부론>을 출간했다. 900페이지가 넘는 이 대작은 무슨 내용을 담았을까?
내 마음대로 요약해보자면 아마 3가지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
노동 분업
교역과 무역
어떤 지식적인 감동들은 오늘 날 우리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도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조금은 재밌다.
애덤 스미스는 사실 국부론을 써서 유명해지기 이전에 이미 철학자 스미스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또 다른 명서 <도덕 감정론> 덕분인데
과거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서술했다면 반대로 애덤 스미스는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을 위하는 도덕적 판단이 존재하느냐로 반문하기 위해 <도덕 감정론>은 작성되었다.
그는 사람들이 도덕적 선택을 맞닥뜨렸을 때, 마음속의 공평한 관찰자를 제 3자로서 떠올리고, 그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구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프로이트의 '초자아' 이론이 만들어진 시점이나 월가 아재의 절제의 우위중 세부항목인 '메타인지와 관조' 를 생각해보면 공평한 관찰자라는 개념은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덤 스미스가 인간의 이기심을 무시하고, 인간을 신이나 완전한 이타성의 영역에 올려놓은...

독후감을 이렇게 고급스럽게 작성할 수도 있군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놀랍게도 700쪽중에 100쪽 읽었다는 것..

tolo님은 대성할 것임..

저도 닭고기님이 valley에 그림 작가로 데뷔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슴니돠..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