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연재] 2. 몰락의 사랑과 그로테스크한 연애시 (김혜순)

[시리즈 연재] 2. 몰락의 사랑과 그로테스크한 연애시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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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o
2026.01.11조회수 1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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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Hunter - After The Par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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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시와 작가를 중심으로 이야기할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주제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게 더 어려운 길이지만, 시리즈의 목적 자체가 시인들의 통념을 이해하는 데 있기에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첫 주제로 무엇을 이야기할까? 사랑, 죽음, 믿음, 배신… 나는 기독교는 아니지만 예수의 탄생 이후 인류가 가장 소중하게 다뤄 온 그것, 하지만 현대에서 멸종됐다는 소문이 들려오는 그것, 사랑을 빼놓고 그 어떤 이야기도 진행할 수 없을 듯하다.


앞으로 몇 주간 우리는 '사랑(에로스)'을 주제로 그들이 생각하는 사랑이 뭔지에 대해서 알아본다. 그리고 그 시작은 김혜순 시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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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인)


김혜순 시인은 지금까지 16권의 시집을 냈고, 나는 그녀의 시를 전부 알지는 못한다. 다만 그녀를 떠올리면 정갈한 단발머리와 장난기 어린 안경, 그리고 그에 어울리는 천진한 표정이 먼저 기억에 남는다. 2000년대 초반에 발표된 그녀의 연애시들은 미학적으로 워낙 완벽했기에, 한동안 그녀의 시가 아니면 갈증을 느끼던 시절도 있었다. 내게 그녀는 한강 작가가 수상하기 전, 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했던 작가로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면 연애시는 뭘까. 그 이전에 시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앞서 말했듯이 시에 대한 나의 사유가 완벽하지 않으니 나의 영원한 스승인 신형철 평론가의 말을 빌리고 싶다. 그가 나를 제자로 받은 적은 없지만 앞으로 연재를 하며 그와 그의 책을 수도 없이 언급할 것이다. 내 말은 곧 그의 말에 불과하므로.

시는 우선 '나' 혹은 '너'에 대해서 말한다. 이 둘이 시의 X축과 Y축을 만든다. 이 2차원의 공간에 '자연' 혹은 사회가 제 3의 축으로 가세한다. 이렇게 시라는 3차원 입체의 공간을 만든다. 좋은 시인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나와 너라는 관계를 천착할 때 거기에서는 자연 혹은 사회가 함께 움직인다.

- 신형철 저 <몰락의 에티카> 중..

*천착 : 학문이나 어떤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연구함


훌륭한 시는 X축과 Y축으로 대변되는 '너와 나'의 역학 관계를 선명히 드러내는 동시에, Z축이라는 '상황'을 입체적으로 끌어들인다. 나 역시 이 관점에 동의한다. 좋은 작품들은 두 등장인물의 미학적인 관계만으로 찬사를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Z축(상황)이 이 둘을 흔들며 입체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가령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남녀가 보여주는 사랑의 미학(X, Y축)은 눈부시지만, 정작 우리를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가문 간의 혈투라는 비극적 상황(Z축)이다. <타이타닉>은 재난 영화가 아니라 로맨스 영화지만 결국 타이타닉이 침몰(Z축)했다는 사실이 이 작품의 매력을 높여준다.


반대로 탄탄한 Z축을 구축하지 못한 작품은 X축과 Y축만이 평면적으로 나열된 2차원의 세계에 갇히고 만다. 이러한 '평면적인 사랑'에 대해 평론가와 시인들이 보내는 시선은 여전히 냉담할 수밖에 없다.

연애시, 연애시라는 걸 쓰는 사람들이 있지 그런 건 뭘까 없어지지 않는데, 없어지지 않는데 이 더러운 자식 이 더럽고 지겨운 자식 - 황병승, <조금만 더>

짐작건대 아마 황병승 시인이 말한 연애시는 2차원적인 시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2차원적인 시는 없어져야 할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황병승 시인과 생각이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어떤 시들은 그렇기 때문에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정확하게 서술해야 오해가 없을 것 같다. 나는 시는 어려워야 한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시가 현학적인 단어로 나의 지적 허영심을 만족시키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시가 관습에 젖어 있거나 타성적이고 타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 용서되지 않는다는 반사적인 작용이다.


그러니 내가 매력을 느끼는 2차원적인 시들(연애시)은 시인이 태만하여 세계관에 두 인물만 덩그러니 놓는 것이 아니라, 시인이 고뇌하고 공을 들여 세계관(Z축)을 만들고 이 뼈대가 되는 축을 너와 나 둘(X축과 Y축)이 무참하게 몰락시켰을 때 탄생한다.


이 형식만으로 통찰되는 게 있다. 사랑은 상황을 뛰어넘는다. 사랑은 곧 몰락이다. 구체적으로 무엇의 몰락인가. 바로 우리를 둘러싼 '상황'의 몰락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논의하기에 앞서 '몰락'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좋은 예시일지는 모르겠지만 재밌는 예시로 힙합 신의 인디 래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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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서울 - 너


음악은 창조의 산물이기에 대개 현실보다 이상적이고 순수하기 마련이다. (음악이 현실과 같다면 들을 이유가 없다.)그렇다면 뮤지션들이 쓴 가사 속에서 사랑과 몰락에 관한 철학적 통찰을 발견하겠다는 나의 주장이 그리 무리일까? 아나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실제로 이 트랙의 가사 곳곳에는 '너(Y축)'라는 존재가 발산하는 사랑의 정서가 '나(X축)'와 나를 둘러싼 '상황(Z축)'을 단숨에 몰락시켜 버리는 순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절대 못하지 너 없이 난 none I feel like dyin' because ur gone


하날 못하지 i can't like u 딴 여잘 만나지 she looks like u


둘만 아는 place, 그럼 난 어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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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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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그렇다는 걸 나는 몰랐다. 나는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지만 어쩌자고 이런 것까지 모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