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는 왜 썩어버리고 말았는가, 그 역사를 찾아서

한국 증시는 왜 썩어버리고 말았는가, 그 역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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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man
2024.07.15조회수 24회

항상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교양이야기를 써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본문은 일전에 작성한 글과 이어지는 결의 이야기입니다. 아직 보지 못하신 분은 보고 오시면 이해가 훨씬 쉬우실 것입니다.


다만 들어가기에 앞서서 이러한 글을 쓰는 요지가

'에잇 개같은 나라! 카악 퉤' 가 아니고 (그래서도 안되고), 오히려 중력처럼 작용하는 그 시장의 특성을 알고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보자는 차원에서 알아보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겠습니다. 또한 개선의 기회가 왔을 때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말입니다.


천안문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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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이렇게나 발전했는데에도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인 풍토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아직도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작동하는 것을 보고 많은 정치 문화 전문가들은 그 포인트로 천안문 사태를 꼽습니다. 한국의 민주항쟁과 같은 분위기가 무르익던 중국 현대사에서 그 흐름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진압의 역사로 말이지요. 김지윤 박사님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천안문사태로 당시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인민들에게 명확한 메세지를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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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경제발전, 이루겠다. 그 성장의 과실 또한 인민들에게 나누어주겠다. 하지만 절대 정치권력은 나눠줄 수 없다!


몇 번의 저항 끝에 중국의 인민들은 뼈저리게 깨닫고 이내 그 사실에 순응합니다. 바로 중국이 앞으로 잘살게 될 것이며, 마오쩌둥 시기처럼 굶고 지친 시절은 이제 뒤로 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찬 확신, 그리고 동시에, 소수 엘리트가 순환통치하는 정치 체계는 일반 대중이 절대 넘볼 수 없다는 냉혹한 거래였습니다. 마치 우리가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 고도성장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중국은 세상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했고, 공산권의 절대 맹주였던 소련을 가볍게 넘고, 당시 G2였던 일본을 넘어 경제규모가 그 이전 어떤 나라보다도 미국에 가까이 붙는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아직도 일당이, 더 나아가 이젠 일인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전근대적인 정치체제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최첨단 안면인식 시스템과 QR코드를 통한 디지털경제를 이루어낸 나라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하루아침에 사람이 사라져버리는 인체의 신비 마법을 부리는 나라가 된 것이지요.


저는 감히 우리의 증시가 이런 지경에 와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세히 보시죠.


뭐가 문제길래 돈을 못번다고 난리인가?

한국에도 꽤 많은 수퍼개미가 있고, 최준철 대표와 같이 한국시장을 대상으로 가치투자를 시행해 큰 성공을 거둔 분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보면 사실 한국에서 주주가치가 어쩌고를 외치며 돈을 못번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저 실력부족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정말 그럴까요? 저는 이런 실태를 식당운영과 무전취식범에 빗대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중국집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무전취식범이 들끓습니다. 어느 날, 하루 종일 식당을 전세낸 어느 손님 일행이 밥값을 모두 내지 않고 도주하는 일이 생겼고, 덕분에 식당이 거의 문을 닫을 뻔 할 정도로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알게된 옆집 일식집 사장님이 와서 한마디 합니다.


"어이 김씨! 그리 어리숙해서 장사 하겠어?"


무엇이 문제일까요? 어쩌면 옆 일식집은 아직 운좋게 무전취식에 호되게 털린 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저렇게 당당하게 뻐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아니면 일식집 사장님은 무전취식범을 보면 바로 알아보는 매의 눈을 가진 실력자(관상가?)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통찰력이 없어서 허망하게 털리고 망한 것일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역시 사람 보는 눈이 없는 제 잘못일까요? 시민의식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마 무전취식이 들끓는 동네를 탓할 것입니다.


바로 우리 시장이 이렇습니다. 운이 좋아 안털린 투자자, 시야가 좋아 잘 피해다니는 투자자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장이 더럽고 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서는 우리 시장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지난 글에서 한국 시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전염병은 분할상장이라고 꼽은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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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다른 뉴런분이 댓글로 질문을 남겨주셨는데, 그 답변을 본문으로 자세히 말해볼까 합니다.

질문주신 부분은 보다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왜 우리 시장은 저런 행위를 용납하도록 진화했는가?


핵심은 바로 상법개정이다?

우리의 자본시장 역사를 되돌아보면, (코스닥말고) 점진적이나마 우상향하여 최고점을 갱신해왔으며, 중화학공업부터 현재의 AI에 이르기까지 한국 시장이 따라갈 수 있는 부분을 따라붙으며 꽤 괜찮은 성과를 보여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 편에는 경영권 프리미엄과 분할상장(쪼개기상장)과 메자닌을 이용한 배임횡령 서커스 등 멋지고 선진적인 금융공학을 선보이는 시장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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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는 이야기가 상법 개정 이야기지요? 혹시 기억이 잘 안나실 수 있으니 설명드리면, 현재 상법은 이사가 충실해야할 대상으로 '회사'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충실해야할 대상에 '주주'는 없으니 주주말고 회사에게 득되는 행동만 하면 된다는 것이지요. 이게 우리 증시의 폐단을 불러온 원칙이니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최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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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를 중심으로 (당연히) 반발 세력이 결집하고 있습니다. 저번 글에서도 보셨듯, 한국에서 '회사'는 곧 경영자이고 경영자를 보통 최대주주가 겸하는 한국 시장에서는 그 자체로 경영자=대주주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아직도 저렇게 시장의 변동에 반대하는 세력이 강합니다. 그런데 저런 원론적인 법조문 하나를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길래 이렇게 열심일까요? 민법에는 신의성실의 원칙도 있는데 아무도 이런 원칙이 사람을 신의성실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지 않습니까?


이는 그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소송과 같은 상황이지요. 민법을 기반으로 한 송사에서도 신의성실 원칙은 이럴 때 빛을 발합니다.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가 법에 원칙으로 명기된다면, 주주에 반하는 행동은, 그것이 회사를 위하는 행동이었다 할 지라도 그 자체로 배임으로 간주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분할상장으로 억울하게 피해를 본 피해 주주들이 모여 집단 소송을 제기하면 그 손해배상의 근거로 사용될 수도 있는 위험한(?) 조항이 되는 것이지요.


아마 여기까지가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고, 자주 생각하셨던 내용일 것입니다. 하지만..


주식회사 체제의 구조적 결함

조금 더 생각해봅시다. 이사와 이사회는 회사에게 충실해야 한다.. 그러니 주주에게는 충실하지 않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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