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7년 영국 리버풀 울턴의 교회 축제에서 존 레논은 자신의 밴드 Quarrymen을 이끌고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멤버 중 한 명이 축제 구경을 온 폴 매카트니를 자신의 밴드 멤버들에 소개했다.
폴 매카트니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은 1957년 7월 6일이었다. 나는 열다섯 살이었다. 그 축제에 갔던 일이 지금도 기억난다. 코코넛 던지기, 고리 던지기 게임이 벌어졌고, 몇 사람의 청중을 앞에 두고 무대에서 공연하는 밴드가 하나 있었다.
음악에 관심이 많은 10대였던 우리는 우선 무대로 갔다. 무대에는 갈색 곱슬머리에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 꽤 멋있고 패션 감각이 있어 보이는 - 한 남자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 델 바이킹스의 Come Go With Me를 부르고 있었다.
존이 쿼리뱅크 중등학교를 다녔기에 밴드 이름은 쿼리멘이었고, 나는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주위를 어슬렁거리다가 아이반과 나는 무대 뒤로 갔다. 쿼리멘은 저녁 공연을 준비하려고 교회 홀에 들어오려는 참이었다. 맥주를 좀 마시고들 있었다. 사실 나는 맥주 마시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좋아, 한 잔 빨지"라고 말하며 그들과 어울렸다. 나는 선술집 이전 단계를 겪고 있었던 열여섯 살 선배들과 어울리려고 애썼던 거다.
존은 좀 취해서 술 냄새를 풍기며 내 어깨에 기대었다. 모두들 꽤 취해 있었다. 쿼리멘 멤버들은 내가 기타로 Twenty Flight Rock을 연주하며 정확한 가사로 노래를 부르자 다들 감탄했다. 이렇게 해서 비틀즈에 들어갔던 것이다.
둘은 곧 친구가 되었고 함께 밴드 활동을 했다. 폴 매카트니는 존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별 볼 일 없었다고 회상한다. 밴드는 개선이 필요했다. 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지 해리슨을 초대한다.
나는 조지를 버스에서 알게 되었다. 조지는 우리 집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살았다. 내가 학교에 가려고 버스에 타면 조지는 다음 정거장에서 버스를 탔다. 비슷한 나이이기에 친해졌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조지가 나보다 한 살 더 어려 내가 깔보는 투로 말을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학교 친구인 조지를 존과 다른 쿼리멘 멤버들에게 이야기했다. "걔는 진짜 멋지게 기타를 연주해. 그러니 만약 기타리스트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 녀석이 제격이야"
조지는 Raunchy를 마치 음반으로 듣는 것처럼 연주를 잘했다. 어느 날 밤 우리가 텅 빈 버스 2층에 모였을 때 나는 조지에게 "조지, 해봐"라고 했고 그는 기타를 꺼내 진짜 연주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모두들 "너는 이제 우리 밴드 멤버야. 잘했다"며 동의했다
1960년 들어 밴드는 이름을 The Beatles로 변경했다. 당시 영국은 밴드를 만드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리버풀에만 300개가 넘는 밴드가 존재했다. 하지만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그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눈치챘고, 매니저가 되는 것을 제안한다. 엡스타인은 음반사와 계약을 맺기 위해 노력했지만 런던의 거의 모든 음반사에서 거절을 당했다. EMI 산하의 팔로폰은 계약에 흥미를 보였지만 좀 더 실력있는 드러머를 원했다. 그들은 리버풀에서 가장 드럼을 잘 연주하는 사람, 링고 스타를 영입했다. 이렇게 1962년 비틀즈의 멤버가 모두 갖춰지게 되었다.

1963년 발매한 데뷔 앨범 Please Please Me는 크게 히트했다. 영국 전역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광적인 팬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영국에 밴드 붐이 일었던 것은 2차 대전 이후의 문화적 공백기에 미국 음악이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포크나 블루스는 영국 대중 음악계에 충격을 주었고, 십 대들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싼 악기를 가지고 너도나도 밴드를 만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비틀즈는 미국으로 진출하며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끌었다. 이제 영국 음악이 미국에 진출할 차례가 된 것이었다.
그들이 제작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