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슈크림빵입니다.🧁
잘하다가 한 번씩 다른 주제를 물고 오는 저인데요☺️ 절 구독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요즘 소설을 읽다 보면 자꾸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어느 작품이든 한 번은 누군가 죽는다는 거예요.
조연이든 주연이든, 한 권이 끝나기 전에 누군가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가 남은 인물들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요.
읽는 사람의 자리에서는 이게 왜 그런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가요.
죽음만큼 인물의 마음과 이야기의 방향을 한꺼번에 흔드는 사건이 잘 없으니까요.
그런데 같은 일을 쓰는 사람의 자리에서 보면 이상하게 망설여져요.
인물을 죽이고 시작하거나 중간에 죽이거나 등 그러면 편해지긴 하는데, 정말 꼭 보내야 하나, 다른 길은 없나, 이게 정말 필요한 죽음인가. 뭐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읽은 에세이를 주고, 클로드에게 자료 수집을 맡겨서 그 이유를 탐색해 봤어요.
1936년에 쓴 글에서 벤야민은 짧고 단단한 한 줄을 남겼어요.
Death is the sanction of everything the storyteller has to tell.
이야기꾼이 말하는 모든 것은 죽음으로부터 권위를 빌려 온다는 뜻이에요. 벤야민의 논리는 이런 식이에요.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그 인생이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형태를 갖춰요.
살아 있는 동안에는 어떤 일이 어떤 의미였는지 계속 다시 쓸 수 있지만, 끝이 정해진 인생은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로 단단히 묶여요.
그래서 이야기꾼은 죽음에서 권위를 빌려 온다는 거예요.
비평가 피터 브룩스는 이 통찰을 한 발 더 밀어요.
탐정소설은 시체에서 시작해 그 죽음에 이르는 사건들을 거꾸로 재구성하는 형식이라고요.
벤야민이 말한 원리가 가장 순수한 표본으로 드러나 있는 장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