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가볍게 시황 글을 쓰려 했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구석에 박힌 조지 소로스의 "금융의 연금술사" 스캔본을 펼쳐보고 있네요. 유명한 책이지만 워낙 옛날 책이라 구하기도 힘들고 인터넷에도 자료가 없죠.
그래도 급진적 통화이론이 상세히 설명된 "레이건의 제국적 순환" 부분은 개인적으로 특히 요즘에 꼭 알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누가 급진적 통화이론이라고 이름붙였는지는 모르는데 아마 무역적자가 경기와 환율을 모두 하락(경기침체/화폐약세)시킨다는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에 반대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라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급진적 통화이론의 핵심은 긴축적 통화정책과 완화적 재정정책의 조합입니다. 이렇게 하면 재정적자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자극받고 무역적자가 발생해도 강한 화폐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환율이 상승해 수입물가를 억제하고, 환차익을 노린 해외 투자자금을 유치하여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을 억제합니다. 타국보다 높은 금리와 환율상승 모멘텀, 경기 호황은 더 많은 투기적 자본을 유인하는 재귀적 순환을 가동합니다.
이 시나리오가 어딘가 익숙하시다고요? 맞습니다. 멕시코 경제위기 이후 레이건 정부의 정책 흐름은 코로나-19 이후 미국 정책과 거의 비슷합니다.
금리 인하 -> 대규모 무역적자 + 인플레이션 -> 금리 인상 & 재정 완화 -> 화폐가치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안정과 꾸준한 자본 유입
문제는 이 고리에서 두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첫번째는 강달러라는 흡성대법으로 끌어들인 해외 자본이 결국 증가하는 이자부담으로 회수될 수 있습니다.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처지의 주변국이 사정이 힘들어져서 투자를 회수하는 것이죠.(동아시아의 어느 섬나라가 생각나지 않나요?) 두번째는 재정정책으로 인위적으로 부양된 경제는 경제의 자본배분 구조를 왜곡시켜 금리를 상승시킵니다. 이는 해외 투기자본 유출과 경기침체로 이어집니다. 이 모든 문제는 먼 미래에 미국 정부가 부채상환을 못할 정도로 부채문제가 커지기 전에 먼저 터질 수 있습니다.
레이건의 제국적 순환
국제 채무 위기 당시 저는 주식시장의 붐/버스트 시퀀스와 유사한 신용 확장 및 수축에 대한 다소 조잡하고 불분명한 모델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1982년을 전세계적인 신용 확장의 종식으로 생각하고 미국이 '최후의 대출자'로 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커지고 있는 미국의 재정적자는 상충되는 두가지 정책 목표의 예기치 않은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한편으로는 레이건 대통령이 세금을 줄여 경제에서 연방 정부의 역할을 줄이려고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 강력한 군사적 입장을 취하고자 했습니다. 이 두가지 목표는 균형 예산의 제약 내에서 추구될 수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재정 및 통화정책은 두 가지 상충되는 학파의 생각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재정정책은 공급 측면 경제학의 영향을 받았고, 통화정책은 통화주의의 원칙을 따랐습니다.
공급 측면론자들은 세금 감면이 경제 산출과 세금 납부 의사 모두에 큰 부양적인 효과를 가져와 경제가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지 않고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으며, 예산은 더 많은 세금 수입으로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는 철저히 재귀적인 추론이었으며, 그러한 추론이 대개 그렇듯이 심각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공급측면 경제학 이론의 타당성은 모두가 순순히 따라주는지 여부에 달려 있었으므로, 그것은 모 아니면 도 방식의 제안이었습니다. 타협에 의해 작동하는 민주주의에서는 그러한 제안이 거의 성공하지 못합니다. 이 경우에는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주요 학파가 있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특히 낮았습니다.
통화주의자들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믿었으며, 이를 위해 통화공급을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전처럼 단기 금리를 통제하는 대신 연방준비제도는 통화공급 목표치를 고정하고 연방기금금리가 자유롭게 변동하도록 허용했습니다. 연방준비제도의 새로운 정책은 1979년 10월에 도입되었고,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금리는 이미 기록적인 수준에 있었습니다. 그가 첫 번째로 의회에서 승인받은 예산에서 그는 세금을 삭감하고 군사 지출을 동시에 늘렸습니다. 국내 지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절약액은 세입 감소분과 군사 지출을 상쇄하기에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인 큰 재정적자로 이어졌습니다.
재정적자가 엄격한 통화 공급 목표치 내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했기 때문에 금리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상승했습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간의 갈등은 경기 확장 대신 심각한 경기 침체를 초래했습니다. 예기치 않게 높은 금리는 경기 침체와 결합하여 1982년 국제 채무 위기를 촉발했습니다. 헨리 카우프만은 오랫동안 정부 적자가 다른 차입자들을 시장에서 몰아낼 것이라고 경고해 왔습니다. 그는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지만, 먼저 쫓겨난 것은 국내 신용 ...




